기후재난은 영화처럼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홈스, 잘 있었나? 당신과 이 작은 섬나라의 보잘것없는 클럽에서 춤을 추던 옛날이 생각나는군. 나는 10년 넘게 운영한 노천 디스코장을 접으려고 하네. 마지막 춤을 추고 싶군. 보고 싶어.” -태평양에서 ‘불타는 투발루’가
“반장님, 한 달 전에 온 제보가 스팸 메일함에 들어 있었네요?”
컴퓨터를 보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왓슨 요원의 물음에 홈스 반장이 다가가 말했어요.
“불타는 투발루… 투발루에서 만난 옛날 친구지. 제보가 아니야. 10년 만에 웬일이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왓슨이 물었죠.
“그런데, 옛날에 투발루도 가셨나 봐요? 해수면이 상승해서 가라앉는다는 그 나라?”
“한참 투발루가 언론의 조명을 받을 때였어. 우리 조사반의 첫 사건이었지. 투발루 가서 일은 않고 춤만 췄지만.”
“투발루에 클럽이 있나 보네요?”
‘불타’와의 추억
“나도 인구 1만 명의 조그마한 섬나라에 무슨 클럽이 있을까 싶었는데, 금요일 밤이면 이 조금만 섬나라도 미쳐 돌아간다고 하더군. 거기서 친해진 친구가 바로 불타는 투발루(불타)이야. 그놈은 춤을 아주 좋아했어. 여자한테 인기도 많았지.”
홈스는 옛날을 회상했어요.
투발루의 클럽은 세 곳이었어요. 가장 물이 좋다는 마타기갈리 클럽은, 말하자면 1980년대 대천해수욕장의 노천 디스코장 정도 됐죠. 투발루에 단 하나뿐인 공항 활주로 옆에 그물을 얽어 담장을 둘러치고, 그 안의 시멘트 바닥에서 춤을 췄죠. 입장료 2달러를 내고 그물을 통과한 뒤, 2달러짜리 병맥주를 시켜놓고 아무 데나 앉아서 시시덕거리는 게 투발루에서 노는 방식이었어요. 여자들은 등이 깊게 팬 원피스를 입고 왔고, 남자들은 깔끔한 청바지와 폴로 티 차림으로 나타났죠. 불투가 한 말이 생각나서 홈스는 웃었어요.
“원 나이트 스탠드도 하는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고.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친구여서, 소문날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제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그럴 땐 덤불에 가서 하지.”
홈스와 불투는 키득키득 웃었어요. 하늘이 클럽의 천장이었고, 바람은 춤추는 사람들의 에어컨이었어요. 태평양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사이키 조명으로 흘렀고, 대양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은 끈적한 땀을 말렸어요.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외로이 울리던 가난한 섬나라 청년들의 춤.
몇 년 뒤, 불투는 마타기갈리 클럽을 인수해 운영을 시작했다고 소식을 전해왔어요. 꼭 한 번 놀러 오라, 알았어! 꼭 가마, 하곤 했는데, 클럽을 접는다니 홈스는 약간 울적해졌죠.
“왓슨, 우리 투발루로 휴가나 갈까? 아주 길고 아름다운 섬으로 말이야.”
뱀처럼 긴 나라, 투발라
“저기 뱀이, 아니 섬이 있어요!”
피지 수바 공항을 출발한 소형 제트기가 파란 바다 위를 두 시간 날자, 뱀처럼 긴 섬이 나타났어요. 섬은 정말로 얇고 길었죠. 칠레처럼 생긴 섬이라고나 할까요?
섬에서 가장 폭이 넓은 지역에 위치한 공항 활주로를 향해 비행기는 고도를 낮췄어요. 덜컹하고 착륙해 짧은 활주로의 끝에서 가까스로 멈췄죠. 인구 1만1810명, 바티칸을 빼고는 가장 사람이 적게 사는 나라. 면적 26㎢,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
몽골 사람들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면, 투발루 사람들은 산과 강을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 나라의 최고 해발고도가 4.6m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나마 대부분 사람이 모여 사는 수도 푸나푸티 섬의 대부분 지역은 1m조차 되지 않아요. 홈스 반장이 말했어요.
“국토가 얇고 긴데, 해발고도는 극단적으로 낮은 섬. 투발루가 해수면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야.”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IPCC)의 6차 보고서만 해도 투발루 같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 관한 장을 따로 할애하고 있어요. 몰디브, 키리바시, 솔로몬제도 등도 투발루처럼 기후변화에 취약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해수면이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이죠. 바로 빙하가 녹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 북극해의 바다 얼음이 녹는다고 해수면이 상승하진 않아요. 마치 얼음이 녹아도 얼음 잔의 물이 넘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린란드와 남극, 히말라야, 안데스산맥 등의 내륙 빙하가 녹을 때는 상황이 달라져요. 이 물이 바다로 흘러내려 바닷물 자체의 부피를 키우니까요.
일반적으로 지구에는 해수면 65m를 상승시킬 만큼의 내륙 빙하가 존재한다고 해요. 20층 정도 되는 건물 높이에요. 이론적으로 그린란드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이 7m 상승하고, 그보다 훨씬 더 큰 남극 빙하가 다 녹으면 57m 상승하죠.
물론 이 모든 빙하가 다 녹을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남극이나 그린란드에 있는 일부 빙하는 붕괴해서 한꺼번에 녹아 사라질 현실적인 위험이 있어요. 이를테면, ‘운명의 날 빙하’라는 별칭이 붙은 남극의 스웨이츠빙하가 그중 하나인데, 붕괴해 녹는 것만으로 해수면이 0.65m 상승하죠.
해수면을 높이는 둘째 이유는 해양 열팽창이에요. 온도가 오르면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부풀어 오르는 경향이 있어요. 이 또한 무시하지 못할 만큼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쳐요. 보통 빙하의 융해와 해양 열팽창은 6대4의 비율로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죠.
이렇게 해서 1901년부터 2018년까지 지구 해수면이 0.15~0.25m 올랐어요. 연간 해수면 상승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요. 1901년에서 1990년까지 연간 1.4㎜ 올랐던 것이, 1970년에서 2015년까지는 2.1㎜, 1993년에서 2015년까지는 3.2㎜, 2006년에서 2015년까지는 3.6㎜가 올랐어요. IPCC는 1970년 이후 해수면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을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 때문이라고 보고 있죠.
천천히 스며드는 기후위기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공항에서 나와 시내를 구경했어요. 수도 푸나푸티는 우리나라의 조그마한 읍내 같은 분위기였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년, 옥빛 바다에 들어가 낚시하는 노인, 사방이 트인 전통 가옥에서 낮잠을 자는 가족… 영락없는 평화로운 섬나라였어요. 왓슨이 약간 놀란 듯 말했어요.
“저는 투발루를 상상할 때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바닷물이 막 차오르고, 국민들이 줄을 서서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을 떠올렸거든요. 그런데, 그런 긴장감과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네요?”
“10년 전에 왔을 때 나도 그런 그림을 상상하며 왔지. 제1세계 국민들의 편견이야. 나는 그때 기후변화는 SF영화의 스펙터클처럼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대개는 사회경제적 삶을 느리게 투과하면서 고통을 배가하고 절망을 일상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재난에 잠기게 해.”
침수로 대변되는 투발루의 이미지가 오해라는 것은 과학이 제시한 숫자를 봐도 알 수 있어요. 세계의 연간 해수면 상승 속도는 2.3㎜, 투발루는 이보다 두 배 더 많은 5㎜(1993년 이후)예요. 하지만 섬이 물에 잠기는 건 아니에요. 당장 섬을 버리고 비행기를 타고 떠날 정도의 긴급 재난은 아니라는 거죠.
홈스가 말을 이었어요.
“투발루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닷물에 섬이 서서히 잠기는 것 같은 서구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재난이 아니야. 오히려 미래가 없는 경제적 삶과 기후변화가 얽히면서 생기는 문제에 가깝지. 그들이 걱정하는 자연 재난이 있다면, 그건 사이클론이야. 매달 백중사리가 되면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지. 그런데, 그보다 훨씬 높아지는 킹 타이드(King Tide)가 올 때도 있어. 이때 사이클론이라도 불라치면, 주거지나 농경지가 궤멸적인 손상을 입는 거지. 실제로 투발루 앞의 무인도가 날아간 적이 있어.”
만조와 폭풍 그리고 해수면 상승이 결합해 투발루에 수시로 홍수를 일으키는 거예요. 홈스는 낮은 건물 사이로 우뚝 선 건물을 가리켰어요.
“저 건물 옥상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야.”
2004년에 지어진 높이 15m의 3층짜리 정부종합청사 건물이었어요.
“저곳에서 총리와 각 부 장관들이 일하지. 저 작은 건물이 투발루 건물을 움직여. 세계 기후변화 외교무대에서는 태평양의 섬나라를 대변하고.”
정부종합청사에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어요.
‘투발루-호주 팔레필리 연합 조약 체결: 내년부터 지속 가능한 곳으로 이주, 건강보험도 적용!’
최초의 기후이주협약
“팔레필리 조약이 뭐지?”
홈스의 물음에 왓슨이 바로 인터넷을 찾아 기사를 읽기 시작했죠.
“팔레필리는 ‘좋은 이웃’이라는 투발루 말이다. 범죄와 노숙자가 없을 정도로 서로 돕는 투발루 문화를 보여주는 팔레필리가 최초의 기후이주협약의 이름으로 쓰였다. 투발루와 호주는 2023년 11월 팔레필리 조약을 체결했다. 호주 정부는 투발루 해안 복원 프로젝트에 1100만달러를 지원하고, 매년 투발루 국민 280명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비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홈스가 알겠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군. 지금까지 단순히 비자 쿼터를 늘리는 것이었는데도, 언론이 기후 이민을 받는다며 과장 보도를 하곤 했거든. 이번이야말로 기후 이민을 허용한 첫 사례인 거 같은데.”
왓슨도 계산을 해보더니, 놀란 듯 말했어요.
“1년에 280명이면, 2050년이면 7000명이 호주로 이민간다는 거네요. 고령자를 제외하면 2050년쯤이면 전 국민 이주 완료! 투발루라는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겠군요. 호주라는 나라, 참 좋은 일을 했군요!”
둘은 기다란 섬을 따라 걸었어요. 북쪽으로 갈수록 섬의 폭은 얇아졌어요. 결국 가장 얇은 부분에 도달했어요. 동서로 10m가 되지 않아 보였죠. 홈스가 말했어요.
“이쪽이 서해안, 이쪽이 동해안이야.”
서해안에선 환초 안의 잔잔한 바다가 부드럽게 넘실댔고, 동해안에선 짐승 같은 파도가 들이닥쳤어요. 홈스가 읊조리듯 말했어요.
“10년 전에 없던 둑을 만들어놨군. 그나마 섬이 안 끊기길 다행이야.”
그날 밤에는 불타를 만나기 위해 푸나푸티 도심의 노천 클럽을 찾아갔죠. 그런데, 남태평양의 흥겨운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조잡한 사이키 조명도 보이질 않았어요. 젊은 청년 하나만 시멘트 바닥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힙합 춤을 추고 있었죠.
“클럽 영업을 안 하나요?”
“주인이 호주로 떠났어요. 이제 우리나라엔 클럽이 없어요. 기후변화가 우리 섬사람들의 모든 일상에 내려앉았죠.”
클럽은 텅 비어 있었어요. 습기 머금은 바람이 버려진 클럽에 흙먼지를 일으켰어요.
*9월23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한동훈 쪽은 쏙 빼고 관저 만찬…앙금 여전
- [단독] 골든타임 놓친 응급환자 8000명…1년 새 40% 늘었다
- 북 오물풍선 기폭장치 터져 또 화재…제약회사 창고 불타
- 코로나 새 변이 백신 500만회분 이번주 도입…다음달 접종
- “차관님 정도는 스스로”…오세훈, 박민수 복지차관 사퇴 촉구
- 문 전 대통령 만난 이재명 “지지자 참칭한 평산시위, 도움 안 돼”
- 강남대로 뒤덮은 거대 황새들…“미래가 아닌 지금, 변해야 할 때”
- 수심위 ‘김건희 명품백’ 무혐의, 여론의 ‘수심’까지 덮진 못한다 [9월9일 뉴스뷰리핑]
- [단독] 안마원 운영 5년 만에 ‘부정수급’ 낙인…시각장애인 결국 숨져
- 수시 접수 시작하는데 “25·26년 증원 백지화”...의-정 협의 ‘막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