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천년고도, 협곡을 만나다... 신라의 수도에서 끝난 LCK 결승

박상진 2024. 9. 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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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LCK

새롭게 쓰여질 기록으로 기대됐던 2024년 LCK 서머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항상 경기력으로는 인정받는 한화생명e스포츠는 번번히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이번 봄에 열린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자전에서 젠지 e스포츠에게,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 T1에게 패하며 결승 주간에 참가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한화생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의 한화생명은 달랐다. 승자전에서 젠지에게 봄과 마찬가지로 패했지만, 다시 한 번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 만난 T1을 잡아낸 한화생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결승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다. 결국 5회 연속 우승과 골든 로드를 노리던 젠지를 격파한 한화생명은 2018년 인수 창단 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마치 한국의 삼국시대 신라와 같은 이야기였다. 삼국시대 초기 신라는 고구려에게 눌리고 백제에게 치이던 신세였다. 삼국시대는 지금의 서울 지역을 둔 국가가 중흥했다. 한반도의 중심을 두고 초창기에는 백제가 득세한 이후 고구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지역을 차지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 처럼 한화생명의 중심을 잡은 미드 '제카' 김건우는 협곡의 정중앙에서 활약하며 2022년 월드 챔피언십 이후 특정 챔피언에게만 능하다는 평가를 보란듯이 깨며 팀의 우승을 견인하고 MVP까지 차지했다. 경주 근방인 포항이 고향인 '제카' 김건우가 그간 한 수 위라고 평가받던 '페이커' 이상혁과 '쵸비' 정지훈을 상대로 이룬 결과기에 이번 경주 결승이 더 재미있던 이유다.
 
사진제공=LCK

느닷없이 한국의 삼국시대 이야기에 올해 LCK를 투영하면 누가 봐도 억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한화생명이 인수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한 이번 결승 무대는 천년고도 신라의 수도 경주였다. 2022년부터 시작된 LCK 서머 투어는 강릉과 대전, 그리고 세 번째로 경주를 찾았고 한화생명의 우승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이틀 동안 진행된 본 경기는 매 경기 매진되며 총 1만 2천여 명의 e스포츠팬과 경주 시민이 현장을 찾았다.

마찬가지로 2022년 서머 강릉 결승 주간부터 시작된 팬 페스타 역시 올해 3일 동안 총 2만 명의 관람객이 현장을 방문해 각종 이벤트를 즐겼다. 결승전 장소인 경주실내체육관 앞에서 진행된 이번 팬페스타는 결승에 진출한 팀의 부스와 라이엇 스토어 뿐만 아니라 이번 결승이 진행된 경주시, 그리고 LCK 후원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팬들과 가까이에서 만나 다양한 부대행사를 즐겼다. 표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 관람객은 팬페스타 현장에서 뷰잉 파티를 즐겼고, 경기 분석 데스크가 팬페스타 현장에 설치되어 현장감을 더했다.

경기장 구성 역시 현장 관람객에게만 전할 수 있는 특별한 관전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 T1 홈 그라운드에 설치됐던 대형 맵 스크린이 이번에도 스크린에 진행되며 현장에서 더욱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3 서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이후 높아진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였다.
 

LCK 서머 투어는 첫 시도인 강릉 이후 지자체에서 눈독들이는 대형 여름 문화 이벤트가 됐다. 젊은층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LCK에서 월드 챔피언십 직행 티켓이 걸린 서머 결승은 주목받기에 충분한 장소다. 강릉에서 시도된 첫 LCK 서머 투어는 막바지로 접어들던 여행 성수기를 한 주 늘렸고, 작년 대전 투어는 그동안 '노잼의 도시'로 불리던 대전이 그동안 갈고닦은 도시 콘텐츠를 소개하는 무대가 됐다.

이번 경주 결승도 마찬가지다. 이동 중 만난 한 택시 기사는 "평소라면 주말이라도 운행을 나갈지 말지 고민하는 시기다. 대학생의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오기까지는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경주역에 택시가 없었다. KTX가 한 대 들어오면 역에서 대기중인 택시가 없을 정도였다"며 들뜬 목소리를 전했다. LCK 결승 투어 한 번으로 지역이 얻는 경제적 효과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지방 인구 감소 추세에도 LCK는 젊은이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행사였다. 팬페스타를 방문한 경주 지역 시민은 "경주에서 살면서 이번에 코스프레 쇼를 처음 봤고, 멀리서나마 '페이커' 이상혁을 볼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 그만큼 주목받는 LCK의 문화적힘이 이번 결승이 진행된 경주시의 젊은 층에게 크게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결승전이 진행 중인 8일 만나 인터뷰에 응한 주낙영 경주시장 역시 이러한 경주시의 이야기를 전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이스포츠 최대 강국인 한국이기에 경주에서도 이스포츠를 사랑하는 젊은 층이 많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이러한 콘텐츠가 수도권에서만 열렸다는 점이 아쉬웠고, 한국 고대 문화를 대표하는 경주시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인 이스포츠 산업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관광 비수기에 방문객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 되기에 적극적으로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올해 대회를 열 수 있었다"고 유치 배경을 밝혔다.

그리고 결승 주간 경주실내체육관을 직접 둘러본 주낙영 경주시장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은 젊은층이 경주를 동시에 방문할 거로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사흘 동안 수만명의 방문객이 경주시를 방문했고, 경주시 숙소 전체가 만원이 될 정도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 휴가철이 끝난 비수기에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경주를 찾아와 오히려 경주시장인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것이 주낙영 경주시장의 소감이다.

LCK 서머 투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방문객들이 단순히 경기만 보는 것이 아닌 지역의 콘텐츠를 함께 즐긴다는 점이다. LCK 경기는 오후 3시에 시작하고, 이전까지 시간에는 지역의 관광지를 방문하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숙소나 번화가를 찾아 식사를 즐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황리단길을 비롯한 경주 전체가 때아닌 성수기를 맞았다고 들었다. 경주실내체육관 주위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유적지에도 많은 이스포츠 팬이 방문해 경주시를 알리게 되어 정말 기쁘고 좋다"며 지역 사회에 미치는 LCK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도 전했다.
 

수도권 외 한국의 지역을 방문하는 LCK 서머 투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개최지를 알리기에도 좋은 기회다. 특히 경주는 2025년 21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2025년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최종 선정됐다. 이를 앞두고 경주시는 미리 지차체 홍보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경주시의 필요성은 글로벌 콘텐츠인 LCK가 활용되기에 최적의 플랫폼이었다. 동시최고시청자 160만명에 달하는 이번 LCK 결승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했고, AR 기술로 구현된 신라의 하늘 뿐만 아니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결승 오프닝은 경주가 가지고 있는 신라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 관심을 끌게 하기에 최적의 기회였다. 주낙영 경주시장 역시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번 결승이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결승에 이어 내년 행사까지 계속 경주를 소개해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도 경주시의 매력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글로벌 콘텐츠로서 LCK의 가치를 인정했다.

지방 소멸의 시대에 지자체와 LCK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이번 경주 결승이 보여준 바가 크다. 수도권에 집중된 이스포츠 콘텐츠는 지방의 청년층이 즐기기 쉽지 않다. 즐기더라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접해야 하는만큼 이스포츠 현장 경험이 쉽지 않은 일이다. 주낙영 경주시강은 "결승 주간 경기 뿐만 아니라 팬페스티벌까지 이스포츠와 게임을 연계한 이벤트와 함께 지역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푸드트럭 거리까지, 평소라면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볼거리로 지역 주민이 방문하기 좋은 행사가 됐다"며 이번 결승 주간에 관해 전했다.
 

이어 주낙영 경주시장은 "지금까지는 수도권 위주로 이스포츠가 진행됐다면, 이번을 계기로 이스포츠의 문화적 가치를 실제로 체험한 경주시에서도 이스포츠 전용경기장 건설을 추진해볼 생각이다. LCK 결승을 계기로 경주시에서 이스포츠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유치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번 결승 이후로도 경주시에서 지속적으로 이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지역 청년을 위한 문화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금까지 이스포츠를 평가하는 주된 잣대는 '경제적 효과'였다. 하지만 이제 이스포츠는 경제적 효과를 넘어 문화적 효과를 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한때 게임과 이스포츠는 부정적 이미지로 자리잡았지만 이후 경제적 효과를 중요시하는 이스포츠 산업이,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 효과를 넘는 문화적 효과로 인정받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이 중심에는 LCK가 있다.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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