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무도 없는, 쓸쓸한 아파트

백소아 기자 2024. 9. 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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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은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뒤 미분양에 놓인 대구의 다른 신축 아파트의 경우는 '1억원 할인 분양'을 내걸었지만 여전히 빈집이 남아 있다.

이런 미분양 사태는 대구뿐만이 아닌 비수도권 대부분 지역에 해당한다.

강남 아파트가 평당 1.6억원을 돌파했다느니, 경기도 한 아파트의 미계약 1가구에 대한 무순위 공급에 200만명이 몰려 '로또 청약'이 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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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비수도권 악성 미분양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저녁 7시즈음 해가 넘어가자 어둠이 내려앉으며 하나둘 불이 켜진 아파트들 가운데 홀로 적막하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땅거미가 내려앉은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하나둘 불이 켜지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어둠만 짙어져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량도, 하루의 일상을 나누는 가족의 두런거림도 찾아볼 수 없다. 아파트 입구에는 ‘안전제일’ 울타리가 쳐져 있고 텅 빈 놀이터에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4월 말 준공 승인 뒤에도 분양 일정에 들어가지 않아 5개월째 불이 꺼진 ‘유령 아파트’가 됐다. 일반적으로 후분양 아파트의 경우 준공에 앞서 분양을 시작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분양 시기와 분양가를 고려하다 보니 이번 달에야 분양대행사 모집 절차에 들어갔다.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뒤 미분양에 놓인 대구의 다른 신축 아파트의 경우는 ‘1억원 할인 분양’을 내걸었지만 여전히 빈집이 남아 있다. 이런 미분양 사태는 대구뿐만이 아닌 비수도권 대부분 지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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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아파트 창문에 옆 동의 모습이 반사되고있다. 텅 빈 속을 위로하듯, 누군가 닫힌 창문을 활짝 열고 이사 올 날을 기다리 듯, 아파트 단지 주변은 고요하다. 백소아 기자

국토교통부가 8월30일 발표한 ‘7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7만1822가구로 8개월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 중에 준공 뒤 미분양 주택은 1만6038가구로, 2020년 10월(1만6084가구) 이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이고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다. 비수도권 지역은 대구 1778가구, 부산 1352가구, 전남 2502가구 등 1만3138가구로 준공 뒤 미분양 주택 전체의 약 82%다. 강남 아파트가 평당 1.6억원을 돌파했다느니, 경기도 한 아파트의 미계약 1가구에 대한 무순위 공급에 200만명이 몰려 ‘로또 청약’이 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미분양은 대구만의 문제가 아닌 비수도권 지역 전체의 문제다. 정부가 비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구입 때 세제 혜택 등 지방 부동산 살리기 정책을 내놓아도 여전히 시장은 냉랭하다. 백소아 기자

정부의 수도권 위주 부동산 정책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동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8월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8만호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비수도권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의 자원을 이미 활황인 수도권 부동산에 집중할 뿐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지방 미분양 증가와 지역 건설사 도산을 막기 위해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임대로 운영하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매각하는 ‘기업구조조정(CR) 리츠’를 출시한다고 밝혔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정부·지방자치단체·시행사 등을 조율해 미분양 물량을 해결하고 인구 변화 등에 따른 공급 적정량을 조절할 ‘컨트롤 타워’가 시급해 보인다.

‘여러분’을 기다리는 놀이터의 펼침막은 어느새 빛바래지고 있다. 불이 꺼져있던 해당 아파트는 이번 가을 드디어 분양을 시작한다. 다가오는 봄날, 놀이터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바라본다. 백소아 기자

텅 빈 놀이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여러분의 신나는 놀이터가 곧 개장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얼어붙은 경기 침체가 지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따뜻한 봄날을 기다린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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