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잇슈]'전국민 투기' 조장한 무순위청약 앞날은?
규제 풀었던 정부도 뒤늦게 개편 검토
전문가 "차익 환수하거나 아예 시장에 맡겨야"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에 대한 관심이 꺼질 줄 모른다. 분양가는 오르고 대출 문턱은 높아진 상황에서 최초 공급 가격으로 나오는 물량인 만큼 '로또 청약'이 돼버려서다.
무순위 청약 요건 완화로 '전국민 로또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관심이 커지자 주택 청약이 투기의 장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이에 정부가 제도 개편 검토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무순위청약의 앞날에 관심이 쏠린다.
가점 인플레에도 '줍줍' 기대?
주택 청약 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노린 '로또 청약'이 그야말로 '광풍' 수준이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등으로 시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단지에 청약자들이 몰리면서 '가점 인플레이션' 현상까지 나타나는 추세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8월 서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140.66 대 1이었다. 강남권 상한제 적용 단지에선 청약 가점 만점 통장도 속속 나왔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는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이 527 대 1로 청약 가점 만점자가 3명 이상 나왔다. 서초구 '디에이치 방배' 역시 만점 통장이 1개 이상 나왔다.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90 대 1을 기록했다.
이들 모두 상한제 적용 단지라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위장 전입 등 부정 청약을 하거나 자금이 부족한 데다 무리하게 청약한 '묻지마 청약' 등의 움직임도 포착했다.
원펜타스의 경우 청약 가점 당첨 커트라인이 대부분 70점 중후반대로 나타나자 부정 청약 의심이 제기됐고, 결국 국토부가 전수조사를 예고하면서 일반공급 전체 292가구 가운데 17%(50가구)가 잔여 물량으로 나왔다. ▷관련 기사:'부정청약' 논란 래미안 원펜타스, 잔여 세대 '50가구' 떴다(8월22일)
부적격·계약 포기 물량은 예비 입주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러나 일각에선 향후 '계약취소주택 재공급' 무순위청약까지 기대하는 눈치다. 이는 계약자가 위장 전입, 불법 전매 등 공급 질서를 교란시키는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 계약 해제된 물량이다.
지난 7월 실시한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도 계약취소주택을 무순위청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 아파트는 상한제가 적용된 데다 7년 전 최초 분양가로 공급해 당첨 시 10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이 기대됐다. 이에 1가구 모집에 294만4780명이 몰리면서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가 상한제로 나온 로또 청약이 또 다른 로또 청약(무순위 청약)을 낳는 셈이다. 시장에선 청약 열기가 과열될수록 부적격·계약포기·계약해제로 인한 무순위청약이 속속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가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무순위청약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며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일단 청약해서 당첨됐지만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위장 전입 등이 적발돼 또 다른 '로또 줍줍'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국민 청약' 개편 어떻게?
이에 국토교통부는 무순위청약 제도 개편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무순위청약은 '무주택자 주거 안정'이라는 청약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고, 특정 단지 쏠림 현상으로 인해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무순위청약은 △임의공급 △무순위 사후접수 △계약취소주택 재공급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중 무순위 사후접수는 예비입주자까지 선정했으나 부적격, 계약 포기 등으로 발생한 잔여 물량을 대상으로 재공급하는 걸 말한다.
그동안 주택사업자들이 임의로 처리했던 물량인데 2019년부터 무순위청약제도로 편입됐다. 그러다 2021년 5월 집값 급등으로 무순위청약이 '로또 청약'으로 과열되자 정부가 청약 자격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고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지난해 2월28일부터 문턱을 대폭 낮췄다. 사상 최대 재건축 '둔촌주공'에 미분양 우려가 불거졌을 때다. 이 이후 거주지, 주택 수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민영 아파트 무순위 청약이 가능해졌다. 누구에게나 청약 자격을 주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청약시장으로 몰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인기 단지의 경우 '수백만 대 1' 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것도 예삿일이다.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기 때문에 청약통장이 없거나 가점이 낮아도 도전할 수 있어서다. 시장에선 다시 분양 시장 경기가 회복됐으니 청약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과거처럼 거주지, 주택 수 등에 제한을 두는 방안이 거론된다. 무순위청약 시 최초 분양가가 아닌 상승분을 반영해 '로또' 기대감을 낮추자는 의견도 나온다.
권주안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무순위청약의 목적 중 하나는 미분양분을 터는 것"이라며 "미분양 단지(임의공급)는 계속해서 청약 가점을 적용해 공급하고, 그럼에도 팔리지 않으면 공공이 개입해서 임대로 운영하는 식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외 무순위청약은 최초 분양가에 물가 상승분, 관리 유지비 등의 일정 부분 비용을 더해 공급한다면 로또 청약 과열을 일부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에 따라 제도를 자주 바꾸는 것보다는 일관적으로 운영하는 게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무순위청약을 포함한 청약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 볼 때가 왔다는 의견도 잇다.
권 교수는 "경기 변동에 따라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청약 제도의 밸류(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라며 "민간은 알아서 공급하게 한다든지 어느 정도 개입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수민 위원은 "소수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로또 식의 무순위청약 제도는 손 볼 필요가 있다"며 "시세 차익의 일부는 기금 환수 및 활용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전반적으로 큰 틀의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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