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CEO, 개선책 내놨지만…불법합성물 방지엔 무용지물

정인선 기자 2024. 9.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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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능 삭제 방안, 미봉책 비판
“특정기능 차단해도 신종수법 개발”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AP 연합뉴스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를 공모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논란이 되어 온 일부 기능을 삭제하는 개선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플랫폼 내에 만연한 디지털성범죄를 막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두로프는 지난 6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텔레그램에서) ‘근처 사람들’(People Nearby) 기능과, 익명 블로그 서비스 ‘텔레그래프’ 내 사진·영상 업로드 기능을 더는 이용할 수 없게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이용자의 99.999%는 범죄와 전혀 무관하지만, 불법적인 행위에 연루된 0.001%가 (이들 기능을 오용해) 플랫폼 전체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 10억명에 가까운 이용자들의 이익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텔레그램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텔레그램이 삭제하기로 한 두 가지 기능이 다양한 범죄 행위에 오용돼 온 것은 맞지만, 최근 문제가 된 딥페이크(불법합성물) 디지털성범죄와 큰 관련이 있지는 않다. ‘근처 사람들’ 기능은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활용해 이용자 근처에 있는 다른 텔레그램 이용자들과 대화방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다.

이 기능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이에게 위치 정보가 공유돼 스토킹 위험을 높이거나, 자동화 봇이 무분별하게 보낸 금융 사기 정보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익명 블로그 서비스 ‘텔레그래프’는 누구나 익명으로 게시글을 작성하고 사진·영상 등을 올린 뒤 누리집 링크를 공유할 수 있어, 가짜 누리집 접속 유도 등으로 개인정보를 빼내는 피싱 사기 등에 주로 악용돼 왔다. 하지만 두 기능 모두 불법합성물 제작·유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되는 일부 기능만 막아서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정 기능을 차단하면 악성 이용자들이 이를 우회할 신종 수법을 개발하거나 , 제약이 덜한 다른 플랫폼 등으로 옮겨 가 같은 행위를 얼마든지 되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텔레그램 내 딥페이크 성착취물 생성 봇(bot·자동 프로그램) 적발·신고 활동을 해 온 테크-페미 활동가 조경숙씨는 ‘봇 공유 봇’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텔레그램이 특정 봇을 차단하면, 악성 이용자들은 금세 유사한 봇을 새로 만든다. 이어 새 봇 링크를 알리는 ‘봇 공유 봇’을 통해 거처를 옮겨 다니며 같은 범죄를 반복해 저지른다.

지난 3일 조씨가 발견해 신고한 구독자 21만명 규모 텔레그램 채널에는 “우리는 늘 이곳에 있다. 새로운 봇으로 돌아와 달라”는 문구와 새 봇 링크가 담긴 ‘봇 공유 봇’의 안내 메시지가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돼 올라와 있었다.

조씨는 “문제가 있는 봇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문제 이용자가 새로 계정을 만드는 것까지 막아야 한다”며 “텔레그램은 이용자 신상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 번호로만 가입을 허용해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범죄에 쓰인 번호로 재가입하는 걸 막는 최소한의 조치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텔레그램의 한 대화방에 새로운 딥페이크 성착취물 생성 봇 주소를 알리는 ‘봇 알림 봇’이 보낸 안내 메시지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올라와 있다. 조경숙 제공

악성 이용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도 시급하다. 2019년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하며 텔레그램 기반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 ‘엔(n)번방’ 사건을 처음 알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텔레그램이 한국 당국의 수사에 협조하겠다면서 한 게 메일주소 하나 달랑 공개한 것이 전부”라며, “어떤 방에 어떤 영상이 올라와 있는지를 경찰이나 방심위가 일일이 채증해 메일로 삭제를 요청하면 실제 삭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 재유포를 막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성착취물 유포 신고가 들어왔을 때 가해자들이 어떤 아이피(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이용해서 접속했는지, 어떤 정보를 이용해 가입했는지 등 신상을 특정할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공유해, 악성 이용자들에게 ‘반드시 잡힌다’는 걸 인지시켜야 더는 그런 짓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활동가도 “특정 기능 차단보다 텔레그램도 구글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처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통을 감독하고 책임지는 윤리담당감독관 등을 둬서 플랫폼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하고, 수사 당국에 적극 협조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불법성착취물로 판단된 이미지·영상과 속성이 일정 정도 이상 일치하는 영상을 자동으로 삭제하거나, 업로드를 사전에 차단하는 등 기술적 조치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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