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5대 은행 리더십…‘임기 만료’ 은행장들 운명은?

정윤성 기자 2024. 9.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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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인선 본격화…내부통제·금융 사고·지주사의 인사 전략 등이 변수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은행권 리더십이 결정적 순간을 맞이한다. 연말 5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면서다. 특히 올해부턴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은행장 선임에 보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원칙이 적용된다. 또한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부터 승계 절차를 가동해야 하는 만큼 은행권도 분주해진 모습이다.

최대 관심사는 현 행장들의 연임 여부다. 이들이 은행 경영 전략에 부합하는 성과를 달성해온 점은 연임에 긍정적이다. 각 은행들은 이자 이익을 기반으로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변수도 많다. 은행권은 거듭된 금융사고와 내부통제 실패로 인해 금융 당국으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각 지주사의 특징도 고려할 부분이다. 지주 회장이 소속된 자회사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가 은행장 승계를 주도하는 점은 변치 않는 만큼 인사에 무게를 싣는 부분도 다를 전망이다.

예년과 달리 공통 변수로 떠오른 것은 금감원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다. 이번 승계는 금감원이 제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 아래서 처음으로 진행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은행권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고 감독 기준의 글로벌 정합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마련했다.

ⓒ연합뉴스·뉴스1·뉴시스

"공정하고 투명하게"…금감원의 '원칙' 변수로

금감원은 그간 은행지주 및 은행의 CEO 승계 절차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선임 과정이 불투명하고 폐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상당수 은행이 승계 절차 개시 시점과 평가 기준, 후보군 압축 방식 등 중요 사항을 문서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국내 8개 은행지주의 최근 CEO 선임·연임 사례를 보면, 승계 절차 개시 이후 최종 선임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45일에 불과했다. 최종 후보군(숏 리스트) 선정 이후 최종 선임까지는 평균 11일이었다. 경영 승계 1~2년 전에 유력 후보를 선별해 단계적으로 역량을 개발하고, 여러 평가와 면접을 거쳐 CEO를 최종 선임하는 글로벌 금융사와 차이가 있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그간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데 그쳤지만 이젠 금감원의 구상이 반영된 가이드라인을 따르게 됐다. 구체적으로 CEO 승계와 관련해 후보군 관리 및 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문서화해 공개하는 원칙이 마련됐다. 또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 승계 절차를 가동해야 한다. 이 밖에 승계 절차상 자격 요건이나 평가 방법 등 주요 사항도 구체적으로 정해 사전에 문서화해 공시해야 한다.

강화된 원칙의 첫 사례이니만큼 은행들도 일찌감치 승계 절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들은 지난 1분기 지배구조 모범관행 이행 계획을 당국에 제출한 상태다. 다만 금감원은 아직 미흡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중소금융 부원장은 7월12일 국내 은행 이사회 의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제출된 이행계획에서 일부 항목의 경우 이행시기가 너무 늦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등 아직도 보완해 나가야 할 사항이 많다"며 "특히 앞으로 CEO와 사외이사 선임 절차가 모범관행에 따라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경영 승계 절차나 이사회 구성·평가 등에 관한 기준을 조기에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내부통제 실패 따라 갈리는 연임 온도차

은행장 선임에서 근거와 타당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은행권에서 불거진 금융사고가 은행장 거취에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경우 거액의 횡령 사고에 대한 책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6월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0억원대 횡령에 이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특히 2022년 우리은행 본점에서 700억원 규모의 횡령이 발생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조 행장은 타 은행장들에 비해 재임 기간이 짧다. 전임인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이 지난해 3월 용퇴를 선언하면서 그해 7월에야 임기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취임한 지 1년 된 CEO에게 금융 사고 책임을 묻고 연임을 제한하는 건 과도하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또한 은행엔 준법감시인 등 체계화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내부통제 실패가 연임을 결정지을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완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벼운 변수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금감원은 조 행장이 손 전 회장 관련 부당 대출을 지난해에 인지하고도 금융 당국이나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직격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이와 관련해 은행법상 보고돼야 하는 것들이 제때 보고가 안 된 점은 명확하기 때문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안으로 조 행장이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경우 연임은 불가능하다. 중징계가 아니어도 내부통제 기강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적잖은 부담을 질 전망이다.

이석용 농협은행장 역시 금융 사고가 연임의 최대 걸림돌이다.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횡령과 배임 등 금융 사고는 올 들어서만 4건에 달한다. 총 규모는 약 290억원 수준이다. 현재 금융 사고에 대한 관심이 우리은행에 집중된 분위기지만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감원의 칼 끝엔 농협은행이 있었다. 지난 5월 배임 사고 발생 후 금감원이 농협은행에 대한 수시검사와 정기검사에 착수한 것도 금융 사고가 발단이었다.

이 행장의 경우 농협중앙회의 결정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중앙회부터 이어지는 농협은행의 지배구조 측면에서 내부통제 실패가 거듭됐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은 지난 5월 내부통제 및 관리 책임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중대 사고와 관련된 계열사 대표의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중앙회 차원에서 잇따른 금융 사고를 중대 사고로 인식할 경우 이 행장의 연임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안정 vs 쇄신…금융지주 인사 전략에 촉각

KB국민·신한·하나은행 행장들은 내부통제 변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이들의 연임엔 그간의 성과와 지주사의 인사 키워드가 주효하게 적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은행장들과 달리 연장된 임기를 소화하고 있는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이 대표적이다. 이 행장은 2022년 1월 은행장에 올라 첫 임기를 마치고 1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았다. 통상 첫 임기 2년에 추가 임기 1년을 부여하는 관행을 따를 경우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경우 허인 전 행장이 3연임하며 회사를 안정적으로 경영한 전례가 있다.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이 행장은 재임 기간 매년 역대 최대 순이익을 경신해 왔다. 하나은행에 밀려 '리딩뱅크'를 만들진 못했지만 그룹이 '리딩금융' 위치를 점하는 데엔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이 행장을 재신임한 양종희 KB금융 회장도 이 같은 그룹 차원에서의 역할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양 회장과 이 행장이 안정적인 첫해를 보냄에 따라 연임 기회는 열려 있다.

다만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가 리스크로 남아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에서 홍콩 ELS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제재 절차를 준비 중이다. 국민은행의 홍콩 ELS 판매 잔액은 8조원 수준으로 은행권 최다라는 점에서 이 행장의 부담도 클 전망이다. 다만 과거 DLF 사태 등을 고려하면 홍콩 ELS 사태가 이 행장의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홍콩 ELS 상품이 이 행장 주도로 처음 판매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도 참작 사유 중 하나다.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높은 행장으로 꼽힌다. 정 행장은 지난해 2월 갑작스레 수장 자리를 이어받았음에도 성과가 뚜렷한 것으로 평가된다. 올 상반기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리딩뱅크 타이틀을 탈환했다. 다른 은행과 달리 내부통제 잡음이 없어 위험관리 능력에 대한 우려도 적다.

특히 정 행장은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한 2019년 당시 정 행장은 비서실장으로 낙점됐다. 이후 임기 동안 경영기획그룹장 상무에 이어 부행장으로 잇따라 영전하며 오랫동안 진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둘의 신뢰가 두텁고 뚜렷한 시너지를 보인 만큼 갑작스러운 쇄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 행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 하나은행은 3조4766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임인 박성호 전 행장이 하나은행을 시중은행 1위 반열에 올려놓은 직후임에도 부담을 떨쳐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은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임기와 관련돼 있다. 함 회장은 연임 걸림돌로 꼽히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상태다. 함 회장은 지난 7월 DLF 사태로 금감원과 벌인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연임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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