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돌싱, 솔로…‘가족의 해체’에 빠진 콘텐츠 시장[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요즘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TV 프로그램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제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 ‘본방 사수’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률 20% 돌파를 목전에 둔 드라마가 나왔다.
지난 7월부터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굿파트너’이다. 이 작품은 한 대형 로펌의 이혼팀 변호사인 차유리(장나라 분)와 한유리(남지현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라마의 주요 소재 역시 ‘이혼’이다. 잘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유리는 남편의 외도로 직접 이혼 소송의 당사자가 된다. 드라마엔 이 이혼 소송뿐만 아니라 변호사들을 찾아온 수많은 이혼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드라마의 소재는 하나도 새롭지 않다. 이혼은 과거 1999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졌던 ‘사랑과 전쟁’, 2020년 방영된 ‘부부의 세계’ 등에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다뤄졌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굿파트너’의 열기는 뜨겁다. 파리 올림픽으로 3주간 결방을 했지만 파죽지세로 시청률이 뛰었다.
‘굿파트너’뿐만이 아니다. 2024년 드라마, 예능 등 한국 콘텐츠 시장을 관통하는 주요 흥행 키워드는 다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혼, 돌싱(‘돌아온 싱글’의 줄임말), 솔로이다. ‘굿파트너’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엔 이 소재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세대가 보는 예능도 마찬가지다. ‘신발 벗고 돌싱포맨’, ‘돌싱글즈’, ‘이혼숙려캠프’,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이제 혼자다’, ‘나는 솔로’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해당 키워드를 내세웠다. 비슷한 콘셉트의 작품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단연 ‘가족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젠 모두 옛말이다. 오히려 ‘가족’이 아닌 ‘가족의 해체’를 그린 콘텐츠가 더 흔하며 이를 시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씁쓸한 현실에 콘텐츠 산업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가족과 함께 해체된 안방극장
가족과 한국 콘텐츠 산업은 오랜 시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안방극장’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거실이 생기기도 이전인 1960년대에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안방이었다. 그래서 TV는 늘 집 안방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작은 흑백 TV 한 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방송을 함께 시청했다. 여기서 ‘안방극장’이란 말이 유래했다.
이때 가족들은 전통적인 대가족 형태를 띠고 있었다. 조부모부터 부모, 손주에 이르기까지 3대가 같이 한 집에 모여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동일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시간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3대가 같은 집에 사는 경우조차 거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가족의 최소 단위라고 여겼던 ‘핵가족’의 형태마저 해체되고 있다. 핵가족은 기존 대가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부모와 미혼 자녀로만 구성된 가족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빠른 산업화로 인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급변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보다 작은 규모의 가족은 없다고 여겼던 핵가족의 형태 역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제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으로 인해 1인 가구가 된 경우, 이혼 등으로 인해 한부모 가정(미성년 자녀가 있으면서 부모 중 어느 한쪽만 있는 가정)이 된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연간 국내 이혼 건수는 2022년 기준 9만2000건에 달한다. 부부가 두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20만 명에 달하는 돌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연령층 또한 다양하다. 신혼부부부터 시작해 노년 부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이혼이 이뤄지고 있다. 1인 가구도 크게 늘어나 10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가구수의 30%를 넘는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 시장에선 가족의 해체와 맞물려 사라진 안방극장을 재편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가족 드라마 대신 이혼 드라마를, ‘결혼’이란 단어는 빼고 ‘돌싱’이란 키워드를 넣은 예능을 만드는 이유이다. 이 같은 노력은 긍정적 효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엔 이혼, 미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했다. 이혼한 방송인은 TV 출연조차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이를 금기시하거나 낙인찍기를 하지 않는다. 이혼, 미혼 등도 개개인의 하나의 삶의 형태라는 점을 인정하고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다 보니 사회적 인식이 덩달아 개선된 측면도 있다.
‘굿파트너’가 호평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는 실제 이혼 전문 변호사가 직접 작가가 되어 집필했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이혼이 그려진다.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다루며 큰 공감을 자아낸다. 드라마엔 가족의 해체라는 불가피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부부가 안고 있는 각양각색의 복잡하고 아픈 사연이 펼쳐진다. 이혼 전후로 이어지는 양육권 분쟁, 그 속에 담긴 부성애와 모성애 등도 정교하게 그려진다. 어쩌면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보고 싶었던 이혼, 돌싱 등의 이야기는 이 같은 치유나 위로 또는 사회적 응원이 담긴 게 아니었을까.
자극과 흥미보단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하지만 가족의 해체를 다룬 방송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부작용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만 소재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마치 대중의 관음증적 시선을 자극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가정 폭력, 외도 관련 내용을 관찰 카메라 등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는 식이다. 청소년들도 해당 프로그램을 얼마든지 시청할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혼 전후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도 많다. 행복한 가정과 미래를 꿈꿨지만 실패에 이르게 됐을 때 각 부부가 느낄 좌절감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엔 소극적이다. 이혼 당사자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부모와 함께 카메라에 노출되어 버린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심리 상담을 도와주는 방송 역시 드물다. 한발 더 나아가 가족의 해체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과 과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콘텐츠 업계에서도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이혼 등 가족의 아픔을 희화화하고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가족을 빼고는 쓸 만한 소재를 생각할 수 없다. 가족은 다른 모든 사회 영역의 상징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작가 애너 퀸들런이 한 얘기다.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 역시 부모와의 만남과 소통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은 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각 가정은 이 사회 전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보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겐 가족 이야기를 그리듯 가족의 해체를 작품에 담는 것이 숙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 퀸들런의 얘기처럼 가족은 모든 사회 영역의 상징이라는 사실 말이다. 자극과 흥미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가족의 해체를 끌어안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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