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딸의 호소라는 느낌”…기후위기 승소 변호사들

박기용 기자 2024. 9.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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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응, 대한민국 기본가치로…추가 목표도 헌소 가능”
“‘기각’ 2030년 목표도 ‘정부 최선다해 감축’ 책임 명시”
“유엔 제출할 2035년 목표, 시민과 함께 구체화해야”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변호사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치선, 이병주, 김영희, 윤세종 변호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달 29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2031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2050년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과 5월 이례적인 두 차례 공개변론을 거쳐 내린 결론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엔 2031년 이후 ‘감축 경로’를 만들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2020년 3월 제기된 ‘청소년 기후소송’과 ‘시민 기후소송’(2021년), ‘아기 기후소송’(2022년) 등 네건의 청구가 병합된 것이다. 2300건이 넘는 전 세계 기후소송 가운데 아시아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고, 청소년과 태아까지 참여해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한겨레는 지난 3일 이번 소송의 대리인 9명(김민경·김석연·김영희·이병주·이치선·윤세종·최창민 변호사, 곽태선·신서영 미국변호사) 가운데 이병주, 윤세종(이상 청소년 소송), 이치선(시민), 김영희(아기) 변호사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사건이 병합된 올해 2월부터 매주 모여 본격적인 변론 준비를 했다. 이들에게서 소송 참여 과정과 헌재 결정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어쩌다 기후소송을 하게 됐나?

이병주(이하 주) 당시 같은 회사(에스앤엘파트너스) 곽태선 변호사의 강력한 권유로 기후활동을 해온 청소년들을 만났다.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건 2018년 8월인데,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학교 파업’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한국의 청소년 기후운동이 툰베리 영향을 받았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청소년들 얘기를 들으며 ‘우리 아들딸들이 부모한테하는 호소’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세종(이하 윤) 중요한 건 청소년들이 먼저 우리를 찾았다는 거다. 이미 여러 변호사를 만나 ‘인정되기 어려운 청구’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기후활동을 하는 변호사인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시민소송, 아기소송은 어떻게 제기됐나?

이치선(이하 선) (소 제기 당시인 2021년) 그땐 엔디시(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높이는 게 기후운동진영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감축 목표가 (2018년 대비) 30~40%에서 정해질 거라는 얘기가 있었고 ‘왜 그거밖에 안 되냐’고 하니 정부 쪽에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마음 먹었다. 법 통과 한달 뒤인 10월 중순 소 제기를 했고 녹색당을 비롯해 7개 진보정당,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중심으로 청구인을 모집했다.

김영희(이하 김) 감축 목표가 40%로 정해진 걸 보고 ‘가장 어린 세대로 청구인을 모집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고 생각했다. 특히 태아는 미래 세대의 상징성이 있겠다고 봤다.

―병합과 공개변론 결정이 올해 2월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한 건가?

우리 주장과 증거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추려 정해진 시간 내에 최선의 결론을 압축해 내야 했다. 대리인단(변호사들)의 생각이나 논리도 다 일치해야 했다. 매주 만나 회의했다.

각자 낸 변론요지서를 다시 통합해서 냈고 헌재 질문에 대한 서면 답변만 150개 정도를 만들었다. 공개변론 때 진술, 헌재 재판관들과의 질의·응답도 준비했다. 사건 한 지 4~5년 됐는데, 막상 구두변론 준비하면서 우리도 내용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헌재 결정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국가의 헌법적 보호 의무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결정문을 보면 특히 기후변화로 초래된 극단적 날씨, 물 부족, 식량 문제, 해안선 변화 등을 ‘생태붕괴 현상으로 인한 위험’이라고 명확히 정의 내렸다. 기후위기 위험 상황의 존재에 대해 헌법적으로 확고하게 못을 박은 것이며 큰 진전이다.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가 된 것이다.

또 앞으로 국가 기후 정책, 기후 법제에 대해 얼마든지 헌법재판을 제기할 판이 열린 것이기도 하다. 그전엔 환경권 사건에서 헌법재판을 하려 하면 바로 각하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로 감축 목표가 나올 때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재판할 권리가 생겼다.

2015년 제기된 미국의 대표적인 기후소송인 ‘줄리애나 사건’의 경우 지난 5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를 안정시키는 일은 정치적 권력기관이나 유권자가 할 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며 최종 각하했다. 한데 우리 헌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거다.

―위헌 판단의 핵심은 2050년까지 감축 경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 봐야 할까?

헌재가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 검토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단지 빈자리를 메우기만 할 게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따라, 국제적 기준과 책임을 고려하라는 거다. 기후위기의 과학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몫,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평가돼야 한다, 이걸 대원칙으로 제시한 거다.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이라는 건 곧 ‘탄소예산’과 ‘누적 배출량’ 개념을 적용하란 취지일까? (탄소예산은 ‘1.5도 제한선’까지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을 이른다. 지구 전체 탄소예산과, 인구 비례와 누적 배출량 등을 기준으로 계산한 각국의 탄소예산이 있다. 특정 국가의 역사적 배출량이 많으면 남은 탄소예산은 그만큼 줄어든다.)

독일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환경자문위원회가 인구비례로 계산한 독일 탄소예산을 헌재에 제출했다. 행정부가 낸 것이라 사법부가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아무런 자료를 내지 않았다. 우리 헌재가 “탄소예산 배분에 관해 국가적으로 공인된 도출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정부가 나태하고 무책임했다.

유럽연합의 과학자문위원회가 지난해 보고서에서 국가별 탄소예산을 계산한 바 있다. 지난 4월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에서도 스위스의 국가별 탄소예산을 고려하라고 했다. 탄소예산 개념이 국제적 합의로 점점 강화돼 가고 있다. 우리도 국회에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계산해야 한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누적 배출량을 언급했다.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특정 시점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니라 대기 중에 누적되는 양에 비례한다” 같은 대목이 그렇다.

―2030년 목표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될까?

그렇지 않다. 헌재 결정문에 2030년 목표도 강화해야한다는 취지를 담은 명시적인 문장이 두개 있다. “위험 상황으로서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 부담을 가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진전시켜야 한다”(결정문 57쪽)는 것과, “현재 설정된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2031년 이후 감축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 하지 않으면 2031년 이후 감축 부담은 더욱 증가한다”(43쪽)는 것이다.

헌재는 (필요한 보호조치가) “최소한에 못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 것뿐이다. “괜찮다”고는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며 못을 박기도 했다. 과학과 책임에 기초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근거해 보면, 국회와 정부에 ‘최선을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30년 목표가 괜찮다며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법 개정과정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 연방 헌재도 2030년 목표를 위헌이라 하지 않았지만, 독일 정부는 2040년 목표로 88%란 숫자를 만들면서 2031년 이후 목표를 더 강력하게 잡았다. 그래서 2030년 목표도 따라서 본래의 (1990년 대비) 55% 감축에서 65%로 강화된 것이다.

헌재가 2031년 이후 목표를 정할 때 ‘반드시 국회가 해야 한다’고 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구조적으로 단기적 이익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회적 논의를 끌어낼 더 좋은 위치에 있는 국회가, 정부에 위임하지 말고 법률에 직접 하라고 했다. 입법자들에게 단기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탄소중립까지 가는 전체 경로를 만들어야 할 헌법적 책임이 생긴 거다.

―그러기엔 1년 반이 너무 짧지 않을까?

헌재가 법 개정에 주는 시간은 통상 그해 말까지거나 6개월 정도다. 진지하게 노력해서 하라는,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이다.

―2031년 이후 ‘경로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헌재도 볼록한 형태의 경로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 같다. (온실가스 감축 경로는 부담이 배분되는 시기에 따라 ‘오목’, ‘선형’, ‘볼록’의 형태로 나뉜다. 오목은 전반부에, 볼록은 후반부에 감축 부담이 집중된다.)

현재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87%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석탄·가스 발전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마침 한국의 발전산업은 운 좋게 공기업이 소유·관리한다. 정부가 정책 의지를 가지면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1메가와트(MW) 이상 ‘유틸리티 급’ 발전소 세우는데 14개월이면 충분하다. 또 운송에서도 1억톤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선진국들이 다 하는 내연차 통행, 생산 중단을 빨리 계획해 실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편리하고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 두 가지만 돼도 오목 경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에 2035년 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하게 된다. 이 역시 충분한 수준으로 나오지 않으면 소송 대상이다.

에너지는 기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다. 현재 실무안이 나온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헌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멈춰있는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를 억지로 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번 결정의 의미를, 기후를 걱정하는 여러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2035년 목표도 시민사회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과학적 근거를 두고 구체화해야 한다. 헌재 결정 날 청구인단의 구호처럼 ‘판결의 끝은 대응의 시작’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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