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를 걷다 달음산] 동해를 끌어안은 산
정상의 거대한 바위 절벽 끝에 서면 짙은 초록 들판 뒤로 옥빛 근해, 그리고 그 너머 쪽빛 원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맡기니 지친 육신에 환희의 소용돌이가 몰려온다. 새파란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덩이들이 바다와 육지 위에 얼룩무늬 그림자를 던져둔다.
동해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새벽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산, 달그림자의 깨진 무수한 빛조각이 찬란히 일렁이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산. 부산시 기장군 중앙에 솟아 있는 달음산(587m)이다.
달음산은 월음산을 옆구리에 낀 육산이다. 단 꼭대기엔 병풍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이고 있다. 그 모습이 먹이를 낚아채려는 매의 형상을 닮은 산이라고 해서 주봉을 매 취鷲자를 써 취봉이라 한다. 좌우측으로는 문래봉과 옥녀봉이 있다. 주상절리 기암절벽 상부는 널따란 반석을 이루고 있다. 기장 8경 중 1경이다.
첫 번째 산행코스_달음산~천마산~함박산~문래봉~망월산 종주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달음산 정상
달음산을 제대로 맛보려면 천마산과 함박산, 문래봉을 거쳐 망월산에서 산행을 끝내는 종주산행을 해야 한다. 정관신도시를 오른쪽에 두고 빙 둘러선 산줄기를 따르는 코스다. 출발지는 일광읍 소재 옥정사 뒤 달음산 편백나무 숲길 입구. 오르막이 가팔라 정상부 암봉과 연계해 고산을 오르려는 산악인들의 훈련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대부분 계단이 설치되면서 부산 대표 악산이었던 달음산이 등산 초보자들도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 되었다.
20분 만에 편백나무 숲길이 끝나고 능선이 시작되는 제1쉼터다. 계단이 여기서 시작된다. 무려 1,000여 개다. 그늘이 있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도중에 '달음산 108계단'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계단의 수와는 상관없는 숫자다. 108가지의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과 만족을 찾자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계단이 끝나면 육산이 암산으로 바뀐다. 바위에 설치된 철제계단을 오르니 전망이 트이면서 초록빛 들판 너머로 옥빛을 머금은 동해가 조망된다. 정상의 더 멋진 조망을 기대하며 데크와 철계단을 올라 산행 시작 1시간 10분 만에 달음산 정상에 도착한다. 도중에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다.
바위 절벽인 달음산 정상에 서면 울산항부터 서생, 월내, 일광 앞바다로 이어지는 동해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니 지금까지 된비알 위에서 뜨겁게 데워진 몸의 열기가 일시에 식어간다. 여름 장마철 바다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 육지를 잠식해 나가는 해무도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대운산과 천성산이, 서쪽 멀리 부산의 진산 금정산, 남쪽 저 멀리 해운대 장산이 비스듬히 누워 있다.
나아가야 할 산들은 발아래 일렬로 나열해 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들이 규칙적으로 솟아 있어 이 일대를 빨래판 능선길이라고 부른다.
망월산은 마치 공중도시공원 같아
천마산으로 가려면 기장청소년수련관 방향으로 하산한다. 가파른 흙길이다. 30분 만에 달음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 임도에 도착한다. 들머리는 도로 건너편 폭이 좁은 야자매트 길이다. 흐릿하던 길은 고도 354m의 봉우리부터 선명해진다. 40분이면 천마산(413.7m) 정상. 표석은 따로 없고 이정표로 대신한다.
길은 상당히 가파른데다 상태도 좋지 않다. 고도가 낮다고 얕볼 산은 결코 아니다. 천마산을 떠난 지 20분,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 나타나면 오르막이다. 20분 더 진행해서 함박산(458m)에 도착한다.
이정표는 정상석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 살짝 가려져 있다. 확인 후 곰내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부터는 용천지맥이다. 지맥답게 길이 좀 복잡하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선명한 좁은 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다시 8분 만에 넓은 임도가 나타나면 왼쪽, 7분 후에 만나는 황토색 시멘트 길을 10분간 걸으면 곰내재숲속쉼터다. 이곳에서 터널을 넘어 소산마을 방향으로 간다. 마을 직전 이정표에서 문래봉 방향으로 꺾어 오른다. 빠듯한 경사를 35분간 오르면 문래봉(511.4m)이다.
이후 15분 만에 만난 이정표에는 거문산 3.9km만 표시되어 있고 가고자 하는 망월산은 없다. 망월산은 거문산 방면에서 오른쪽 90˚로 꺾인 내리막길에 있다. 길 왼쪽으로 저수지(상곡소류지)를 지나고 갈림길에서 17분 만에 '매암산 가는 길'이 표기된 이정표를 만난다. 매암산은 망월산에 있는 매바위를 일컫는 말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쉴 새 없이 오른다. 길옆으로 거대한 수직 바위가 자태를 드러내는데 바로 매바위다. 오르막길 30분 만에 넓은 임도다. 망월산 정상 가까이에 온 것이다. 이 길에서 오른쪽이 망월산 정상이고, 왼쪽으로 가면 철마산이다. 산 정상부치고는 드넓은 초록의 잔디밭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빙 둘러 놓여 있어 잘 가꾼 도심공원을 방문한 것 같다. 조금 옆으로 들어가면 전망 좋은 절벽 바위 위에 매암산(515.8m) 정상 표지석이 있고, 이것이 매바위다.
발아래로 정관신도시가 펼쳐진다. 망월산 정상이 바로 인근에 있고 안부도 없는 평지에 매암산 정상석이 있어 혼돈스럽다. 북 쪽으로 400m 가야 망월산(521.7m) 정상이다. 도시와 자연이 연출하는 황홀경을 전망데크 벤치에서 편히 즐길 수 있다. 접근성도 좋아 부산 야간산행 명소 중 하나다.
하산은 정관신도시로 한다. 망월산 정상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200m 더 가서 나무누리공원 1.5km 이정표 방향이다. 계단 800여 개를 지나면 비로소 경사가 완만해지며 걷기에 수월한 흙길이 나타난다. 은아골프연습장 옆의 망월산 산행 들머리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나무누리공원은 도로 건너편이다.
이 산행은 고도 400~600m 범위의 비교적 낮은 산 다섯 개를 엮은 것으로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된비알로 인해 체력 소모도가 특히 높다.
산행길잡이
옥정사 코스로 달음산 정상을 밟은 다음, 100m를 되돌아가서 청소년수련관 코스로 내려간다. 안부인 임도를 만나면 맞은편에 천마산 들머리가 있다. 천마산 정상을 지난 후 함박산 정상에서는 곰내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곰내생태터널을 넘어 소산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문래봉으로 꺾는다. 문래봉에서 하산 15분 만에 만난 이정표에서는 거문산 방향과 오른쪽으로 90˚각도로 꺾인 내리막길로 간다. 저수지를 지나 계속 내려가다 매암산 방향 이정표를 만나면 이 방향으로 오른다. 매바위를 지나서 망월산 정상부에 도달한다. 하산은 백운산 방향으로 200m 가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정관신도시의 나무누리공원 방향으로 한다.
달음산 산행코스가이드
달음산 산행코스는 옥정사 코스, 청소년수련관 코스, 산수곡 코스가 대표적이다. 가장 인기 있는 옥정사 코스는 정상까지 1.8km로 짧다. 청소년수련관 코스는 정상까지 거리가 1.4km로 가장 단거리 코스인데 경사도가 높지만 계단이 별로 설치되지 않은 된비알의 흙길이라 미끄럼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기장 청소년수련관 위 달음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임도변에 들머리가 있다. 산수곡 코스는 정상까지 2.6km로 가장 길며 경사도도 낮아 숲길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 많은 코스다.
달음산을 시작으로 하여 천마산과 함박산, 문래봉을 지나는 종주 길은 앞서 소개한 코스처럼 망월산을 날머리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왼쪽 철마산으로 가기도 한다. 철마산은 상당히 가파른 등산로에다 길 상태마저도 좋지 않은데 반해 망월산은 정상부에 펼쳐진 드넓은 잔디밭의 산상 공원이 종주길에 지친 몸을 달래주기에 좋고, 하산길의 상태나 교통 편의성도 좋으며, 정관신도시의 멋진 야경도 덤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광면 당곡마을에서 시작해 일광천을 가운데 두고 달음산과 천마산, 함박산, 아홉산, 일광산을 거쳐서 당곡마을로 되돌아오는 17km가량의 달음산 환종주코스도 지역 산꾼들에게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산행코스_산수곡~월음산~달음산~옥정사
'지옥광산' 잠들어 있는 가성비 코스
산수곡 마을회관 바로 위에 보이는 만세담 식당 앞에서 왼쪽 구월사 방향의 시멘트 농로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부서진 채로 길가에 뒹굴고 있다. 택지 조성지 담벼락 앞에는 월음산 정상 1.8km, 달음산 정상 2.6km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담벼락을 끼고 도는 좁은 길이다. 이정표의 표지판도 이 좁은 길 방향으로 살짝 꺾여 있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리기엔 힘든 정도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멘트 농로를 따라 그대로 직진하게 되는데, 구월사(구 관음암)를 지나면 개인 주택 사유지 대문으로 가로막혀 있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이 길이 대부분의 인터넷 지도에는 정상으로 가는 길로 표시되어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최근에 폐쇄된 것 같다.
담벼락 끝에 달음산 산행 안내도가 있다. 대나무 가지가 만들어 낸 아치형 대문을 통과해 길에 진입한다. 곧게 뻗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드리운 숲길을 15분가량 걷는다. 이후 오르막길을 20분 걸으면 만나는 이정표에는 달음산 1.5km란 표시만 있고 월음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월음산은 오른쪽 방향으로 난 오르막이다. 가파른 길을 15분 걸어서 월음산(425m) 정상에 도착한다. 여기는 우거진 나무로 인해 별다른 조망을 기대할 수 없다.
완만한 경사의 길을 따라 달음산으로 하산하면 5분 만에 안부인 해미기고개에 도착한다. 산 사이의 오르내림도 별로 없고 산 바깥에서 보아도 월음산과 달음산은 한 묶음으로 보이므로 월음산은 달음산의 위성봉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해미기고개는 온통 눈부신 초록의 세상이다. 지금까지 나무로 가려졌던 뜨거운 햇살이 거리낌 없이 쏟아진다. 그대로 다 맞으며 풀밭에 난 길을 걷는다. 시야는 탁 트여 있고 등 뒤로는 지나온 월음산을 가운데 두고 양측으로 바다가 조망된다. 마치 여름철에 오픈카를 타고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이번 산행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비가 그치면서 바다 위에서 물러나는 구름은 곳곳에 긴 기둥 모양의 꼬리를 남기고 있었다. 바닷물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오름 현상과 같은 원인으로 만들어진 기현상이었을 것이다.
육산에서 악산으로 변신
이후 다시 그늘 길에 들어서 20분간 걸어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평탄한 지역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육산이던 산은 여기부터 머리에 큼지막한 암봉을 얹고 악산으로 변신한다. 암봉에는 철계단과 보조 로프의 안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재미난 암릉길 5분 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산수곡 들머리에서 1시간 55분 걸린다.
옥정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30분 만에 제1쉼터에 도착한다. 갈미고개로 불리는 이곳에는 화장실 뒤로 야트막한 갈미산이 보인다. 7분가량 오르면 고도 316m의 갈미산 정상에 갈 수 있지만 아무런 조망거리도 없고 이어지는 길도 인적이 없는 탓에 다 지워져 되돌아 와야 하는 봉우리라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다.
제1쉼터에서는 10분이면 옥정사에 도착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또 제1쉼터에서 오른쪽으로 난 편백나무 숲길 표지판이 있는 길을 따라 광산마을로 하산할 수도 있다. 단 편백나무 숲길이란 표지판의 유혹에 피톤치드 샤워로 땀을 씻어낼 요량이라면 오산이다. 야자매트가 깔린 숲길이지만 편백나무는 온데 간 데 없고 참나무나 소나무 숲길만 1km 기도원까지 계속된다. 기도원에서 상리마을 방향으로 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그제야 오른쪽에 편백나무 숲이 있다.
해미기고개에서 광산마을로 내려오는 길도 35분 만에 이곳 편백나무 숲길에서 만난다. 여기서는 상리마을 방향으로 임도길을 잠시 가다가 자그마한 시멘트 다리를 건넌 후 산행리본이 걸린 왼쪽 숲길로 들어서면 10분 후 광산마을에 도착한다.
광산마을은 일제 강점기에 구리를 약탈할 목적으로 개설한 닛코광산(현 일광광산)의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광산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에 대한 혹독한 노동 착취로 인해 지옥광산으로 불렸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광복 후에도 운영되던 이 광산은 채산성 악화로 1994년 폐광되었다.
마을에는 마을 수호신인 동신 표석과 청사 등 몇 가지 유적이 남아 있다. 일제가 광산으로 설치한 전기선을 광복 이후에 전선 도둑들이 끊어가는 바람에 한동안 곡괭이를 이용한 수작업으로 채굴한 적도 있다는 현지 주민의 말이 씁쓸하다. 산수곡에서 출발해 6.8km, 3시간 10분 걸린다.
산행길잡이
산수곡회관이 들머리다. 처음 시작부터 길을 잘 봐야 한다. 택지 조성지 담벼락 앞에는 월음산 정상 1.8km, 달음산 정상 2.6km 이정표가 있는데 정상으로 가려면 담벼락을 끼고 도는 좁은 길을 택해야 한다.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달음산 1.5km 이정표에선 오른쪽 오르막으로 간다. 곧 월음산 정상인데 조망은 썩 좋지 않다. 달음산은 눈부신 초록빛으로 완전히 개방된 해미기고개를 넘으면 오를 수 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악산으로 변신한 산에서 암릉 산행을 즐기다보면 달음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옥정사 방향으로 하산할 땐 갈미고개를 지난다. 화장실 뒤로 야트막한 갈미산이 있는데 금방 오를 수 있지만 전망도 좋지 않고 길도 나빠 굳이 추천하진 않는다. 또한 날머리를 광산마을로 잡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정상에서 해미기고개로 되돌아가거나, 갈미고개(제1쉼터)에서 편백나무 숲길 표지판이 있는 길을 따라가도 된다.
교통
옥정사는 차량 20여 대를 주차할 수 있고 깨끗한 화장실을 갖춘 무료 주차장이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동해선 전철 좌천역에서 하차해 40분 정도 걸어간다. 하루 3번 운행하는 마을버스 기장 8-1번을 타고 옥정사 아래 광산마을 입구에서 하차한다. 산수곡 들머리로 가려면 동해선 일광역에서 하차해 화전약국 건너편 버스 정류소에서 기장 마을버스 2번 상곡행을 타야 한다. 10시 23분, 13시 13분에 출발하며, 산수곡까지 10분 걸린다.
숙박&맛집(지역번호 051)
동해선 전철 일광역 입구에 있는 일광대복집(721-1561)은 부산 대표 복집 중의 하나다. 산행으로 흘린 땀을 보충하는 데 최고의 음식으로 추천한다. 기장읍 시랑리의 기장 곰장어촌에는 센 화력의 짚불에 곰장어를 굽는 짚불 곰장어 식당이 여럿 모여 있다.
숙박은 기장군의 해변지역 숙소를 이용하거나 천마산 기슭의 국립 달음산자연휴양림(722-3023)을 이용하면 된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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