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가계대출 혼란, 누구의 잘못일까

노명현 2024. 9. 9.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지연 등 대출수요 폭증
은행권 향한 명확한 지침 없이 사후 비판만
금융당국, 정책 타이밍 놓치고 책임 회피

가계부채 관리를 두고 금융권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고 은행권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제각각인 취급 기준 탓에 금융 소비자들은 어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상황은 예견됐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도입을 두 달 뒤로 미루기로 했다(7월→9월). DSR 산정 시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는 가계부채 관리와 함께 대출한도 산정 시 금리 변동 리스크를 반영하기 위해 올 초부터 도입됐다. 급격한 대출한도 감소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단계별 도입, 7월부터 가산금리의 75%를 적용하는 2단계 적용이 예정돼 있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올 초 안정세를 보이던 가계대출은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됐고 증가 폭이 가팔라졌다. 부동산 시장 회복 기대감으로 주택 매입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레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이 같은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스트레스 DSR 2단계였다. 은행권 역시 바뀌는 제도를 대비해 전산 등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돌연 도입 시기를 미뤘다. 이유는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지원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연착륙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상 부동산 시장 회복을 위해 대출 조이기 시점을 늦추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우려한 것처럼 7~8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멈출 줄 몰랐다. 특히 8월 들어선 막판 수요가 집중되면서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가 규모가 9조6259억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이 관리 가능한 월별 가계대출 증가액을 5조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배 가량 많은 숫자다.

은행권에선 자체적으로 가계대출 수요를 잡기 위해 시장금리 하락에도 우대금리 혜택 축소와 가산금리 확대 등을 통해 대출 수요 심리적 저항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를 두고 "손쉬운 방안으로 결과적으로 은행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금리가 아닌 대출한도를 줄이는 것으로 새로운 방안을 만들었다.

주택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주담대 자격을 제한하고 대출 만기 축소로 대출 한도를 줄였다. 전세대출도 조건부로 취급을 중단했다.

이번에는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서로 다른 취급 기준을 적용하면서 소비자 혼란이 가중됐다. 가뜩이나 대출 받기가 어려워진 가운데 어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금융당국은 또 한 번 목소리를 냈다. 은행들의 대출 취급 기준이 제각각이라 소비자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완전 자율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확한 지침도 없으면서 사후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면 비판만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관된 정책 메시지도 없이 은행들이 경영계획을 초과하며 가계대출을 공급했다고 공개 질타하는 등 압박만 하고 있다"며 "최근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는데 당국이 중요시하는 실수요자는 누구인지 등도 명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은행들은 금융 소비자에 대출을 직접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 관리를 총괄하는 것은 금융당국이다. 특히 가계부채는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있어 은행 스스로 조절하는데 한계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초저금리 수준의 통화정책과 주택 공급에 대한 우려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 당시 정부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과 함께 강력한 대출 규제로 금융과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했다. 그럼에도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현 상황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 대출 한도를 조이고 유주택자에 주담대 공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이전과 비교해 대출 규제 강도는 다르지만 방향성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닌 은행권 스스로 대책을 만들면 이후 당국이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의 결정에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관치금융' 논란은 언제나 발생한다. 서민들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도 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은행업 특성 상 관치금융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관건은 '타이밍'이다. 이미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면서 시장 불안은 본격화됐지만 금융당국은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스트레스 DSR 2단계의 차질없는 도입"만을 강조해왔다. 이번 가계대출 혼란의 근본적 원인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긴 금융당국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