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의 뿌리, 우리의 무감각 [세상읽기]

한겨레 2024. 9. 9.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아들이 보여준 휴대전화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보내진 음란 문자들로 가득했다. 남성 성기 사진들과 함께 성행위와 관련된 문구들. 신원을 숨긴 채 발송한 그 문자들은 명백한 성폭력이었다. 여러 정황을 살펴 문자 보낸 이를 특정했는데, 밝혀진 이는 평소 아들과 함께 놀던 친구였다. 대체 왜 자신을 숨긴 채 친구에게 언어적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아이들에게 성이란 나쁜 것, 창피한 것, 그래서 남을 놀릴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여겨지는 것일까 싶어 우리 아이들에게도 간단한 성교육을 했다. 실질적인 방점은 ‘이런저런 행동은 성폭력이니 했다간 큰일 난다’는 데 찍혔겠지만, 가능하면 ‘섹스’를 자신과 상대가 인간으로서 상호 존중하고 소중히 아끼는 행위라고 인식해 주길 바랐다. ‘섹스’나 성기는 내밀한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나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더라도 함부로 공개하고 공유해선 안 된다는 점을 배우길 바랐다. 그로 인해 동의 없는 성관계는 물론 함부로 공개되고 공유되는 신체나 성행위 영상은 폭력이라고 감각하길 바랐다. 그러한 감각이야말로 단순한 장난이 심각한 성범죄로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니까.

이러한 감각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갑자기 실종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그러한 감각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불법 촬영물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이 각종 불법 촬영물을 ‘스캔들’, ‘음란영상’이라는 이름으로 돌려 보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마다 주목받았던 것은 무단 촬영과 배포 행위의 폭력성과 비도덕성이 아니었다. 사회는 그 영상에 나오는 여성들의 처신을 비난하고 영상의 수위를 궁금해했다. 우리가 폭력을 폭력으로 감각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 동안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여 가해와 피해가 더 흔한 일상이 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디지털 성폭력이 일상으로 내려왔을 때도 우리 사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속한 사법부를 비롯하여 국가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신체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경시했다. 무단 촬영과 배포라는 피해자가 있는 명백한 폭력을 ‘건전한 사회도덕에 반하는 음란물’ 정도로 다루기도 했다. 딥페이크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땐 합성이므로 실질적인 피해가 없다고 강변하거나 아이들의 호기심을 범죄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성범죄를 막자는 논의를 ‘성별 갈라치기’ 하지 말라며 막아버리기도 했다.

이제 와서 무슨 딥페이크 범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석 같은 대재앙인 양, 악랄한 범죄자들이 유에프오 타고 내려온 외계인처럼 우리 사회에 갑자기 득시글대기 시작한 양, 남녀노소 불문하고 딥페이크 범죄자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해야 할 것처럼 잔뜩 눈을 부라린다. 사실 이런 모습이 어이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별일 아니라며 넘어가는 것보다야 낫다. 여러 대책이 논의되는 중이고, 그중에는 사법부의 처벌 강화도 포함되어 있는데,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 인식이 확고해질수록 재판에도 변화가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실제 재판을 하는 입장에서는 형사처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인식과 감각의 변화를 요청하고 싶다.

앞서 서술했듯이 아이들이 처음 성을 갖고 장난을 칠 때는 폭력과 비인간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것, 뭔가 공개하면 부끄러운 것, 어쩌면 나쁜 것 정도로만 인식한 상태에서 성기와 ‘섹스’를 사용한 장난을 치기 시작할 때가 많다. 남녀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주로 남성은 가해자가 되고 여성은 피해자가 되는 성별 분화가 일어나고, 맥락에도 여성 비하,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담기며, 수위도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게 된다. 비극은 장난이 디지털 성범죄로 변질한 이후에도 가해자들은 그 범죄의 의미와 피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성년 가해자들이야 마땅히 알아야 했던 것들을 몰랐다는 것이므로 책임을 감경해야 할 필요가 적지만, 미성년 가해자들은 다르다.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했던 것들을 몰랐던 것이 온전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추궁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 책임은 우리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라도 우리 사회의 무감각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동의 없는 성관계, 무단 촬영과 배포, 타인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이를 매개로 한 조롱과 모욕은 그 자체로 피해자가 있는 심각한 폭력이라는 감각, 여자도 사람이라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