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소설가’에 최인훈·황석영…가장 젊은 작가로 ‘ㅎㅈㅇ’

임인택 기자 2024. 9. 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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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시집 100년 ‘시인의 초상’ 2부 ②
창비·문지시인선 시인 80명 설문
‘최애 소설’에 작품 최다 등재 김연수
‘한국 현대 시집 100년’을 계기로 현역 시인들 8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에 이름을 올린 최인훈(1936~2018)·황석영(81), 박완서(1931~2011)·황정은(48)·김승옥(83), 박경리(1926~2008)·김연수(54) 작가. 사진 윗열부터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2024년은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인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가 올해 101살,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담은 주요한의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은 100살, 근대문학사에서 대중 시집의 전범을 세운 김소월의 첫 시집 ‘진달래꽃’이 99살 되는 해다. 한국 시집 100년의 경계. 게다 지난 전반기는 창비 시선 500호,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600호를 돌파하고, 김혜순 시인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기념비적 시기다. 이를 계기로 지난 상반기 한겨레가 창비 시선,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출간한 적 있는 시인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당신의 시인, 당신의 소설가, 당신의 자긍심과 안부는 물론 문학판의 공정성, 현 정부 출판 정책에 대한 평가, 21세기 반시적(反詩的) 사건 등 30여 가지를 물었다. 설문에 참여한 시인 80명은 20대 중반부터 70대 후반으로, 등단 시기가 1960년대부터 2021년까지 반세기를 넘나든다. 한국 문단사에 없던 방식과 규모의 설문조사로, 시인 여든과의 집단 인터뷰라 할 만하다. 2부(전체 5회)에 걸쳐 2024년 ‘시인의 초상’을 그린다. 편집자주

‘시인의 소설가’는 누구

현역 시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국내 소설가 3인’을 묻는 질문에 최인훈과 황석영이 각기 10표씩 받아 영예를 안았다. ‘시인들의 소설가’로 전체 84명이 호명된 가운데, 9표를 받은 김승옥·박완서·황정은, 8표의 박경리·김연수, 7표의 권여선·한강, 6표의 김애란·조세희·이청준·이상이 뒤를 이었다. 여성 작가가 99차례(45%), 남성 작가가 121차례(55%) 불리었다.

시와 소설을 넘나든 선대 작가로 이상이 대표적이다. 단편 ‘날개’가 수록된 ‘이상 소설 전집’을 시인들의 ‘가장 좋아하는 국내 소설 3권’ 목록에 올린 이상은 앞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 5인’ 문항에서도 10표를 받아 현역 시인 이성복과 동률 8번째를 차지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 5편’에도 ‘오감도’ ‘거울’ ‘꽃나무’ ‘절벽’ 4편(총 8명이 지목)이 꼽혔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출신의 한 시인(2002년 등단)은 이상을 김소월·김수영·백석·허수경과 묶어 “단 하나의 시인들, 단독성을 이룩한 시인들, 시의 혁명을 수행한 시인들”로 평가했다.

국외 작가,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시는 쉼보르스카

외국 작가로는 도스토옙스키를 시인 11명이 꼽아 맨 위에 세웠다. ‘가장 좋아하는 국외 작가 3인’(장르 불문)을 묻는 항목에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0표)에 이어 카프카·릴케(8표씩), 보르헤스·랭보(6표씩), 가브리엘 마르케스(5표), 오르한 파무크(4표)가 뒤따랐다. 전세계 122명의 작가가 호명된 가운데, 앞서 시인들의 ‘가장 좋아하는 시집’의 저자로 굴지했던 쉼보르스카(심보르스카)가 거듭 존재감을 보였다. 10년 전 국내 판권 선인세만 10억원대 중후반으로 국내에 특히 인기 있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역주행하는 ‘1984’의 조지 오웰,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아고타 크리스토프, 셰익스피어, 밀란 쿤데라, 마르셀 프루스트, 사뮈엘 베케트, 알베르 카뮈,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등이 나란히 3표씩을 받았다.

‘한국 현대 시집 100년’을 계기로 현역 시인들 8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좋아하는 국외 작가 3인’에 이름 올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러시아·소설, 1821~1881, 맨 왼쪽), 비스와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시, 1923~2012, 맨 위), 프란츠 카프카(체코·소설, 1883~1924, 2열 왼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오스트리아·시, 1875~1926, 2열 오른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소설, 1899~1986, 3열 왼쪽), 아르튀르 랭보(프랑스·시, 1854~1891), 가브리엘 마르케스(콜롬비아·소설, 1927~2014, 맨 오른쪽 아래) 등.

‘등단제도’ 110년…시인 55%는 “필요한 절차”

이번 설문에 응한 시인은 모두 일간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등에 당선(등단)된 뒤 시집을 출간했다. 서구엔 없는 등단 제도는 일제 ‘매일신보’ 신춘문예로부터 올해 말 110년째를 맞는다. 한국 시의 역사가 곧 등단의 역사로 등치될 만하다. 문재를 검증하는 절차이자 신인의 문단 진입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한다는 장점과 언어 기술적 변주로의 치중, 다양성 제약 등의 단점이 부딪친다. 최근엔 이기리, 박참새 등이 보이듯, 미등단 신인이 50편 이상 시를 한꺼번에 평가(김수영문학상)받으며 시집 출간과 함께 작품 활동을 본격화하기도 하고,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2019)의 조해주처럼 등단·수상 경력 없이 출간된 시집이 인기를 얻은 뒤 주류 시인선에 포섭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문단 시인 열에 여섯(55%, 80명 중 44명)은 등단 절차가 “필요한 편”(35명)이라거나 “매우 필요”(9명)하다고 보았다. “(전혀) 필요 없”다는 의견은 두 명꼴(16명)에 그쳤다. 막상 유경험자로서 등단 이력이 “매우 도움”(21.3%) 또는 “도움 되는 편”(45%)이었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등단 시기를 밝힌 응답자 대상으로 1968~1990년(19명), 1991~2000년(14명), 2001~2010년(17명), 2011~2021년(21명)별로 나눴을 때, 2001~2010년 등단자만 ‘(매우) 도움 된다’는 의견이 52.8%(나머진 81% 이상)로 유독 낮았다. 스마트폰과 대중매체 다양화로 활자·출판산업이 급격히 위축되는 국면 탓을 짐작하게 한다. 2020년 첫 시집을 출간한 한 시인은 “주요 출판사나 신문사가 독점하는 형태가 아닌, 권위를 분산하는 방식의 다양한 등단 형태가 필요하다”면서도 “지나치게 검증 없는 출간 방식”도 문제로 짚었다.

시인 17.5%만 “시문학상 투명·공정해”

시인들 스스로 ‘시인·시집이 (매우) 많다’는 시선(70%)이 지배적인 가운데, 그나마 이들을 차별화하는 문단의 제도가 문학상이다. 현재 국내 시인 대상의 어지간한 시문학상만 35개가 넘는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문학상이 ‘투명·공정하다’고 보는 현역 시인은 17.5%(80명 중 14명)에 불과했다. ‘보통이다’가 35%, ‘공정하지 않은 편’이 27.5%로 많았다.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쪽도 11.3%였다. 이는 열에 일곱(66.3%)이 국내 시문학상에 학연·인맥 등이 “매우 영향을 끼친다”(30%)거나 “끼치는 편”(36.3%)이란 인식과 닿아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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