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갈등·허술한 지배구조 원인…투명한 인사·신상필벌 체계 세워야"

정병묵 2024. 9.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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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위기 우리금융…전문가가 본 해법은
준비 안된 민영화로 구태문화 방치
한일·상업銀 출신간 알력다툼 키워
문제 생겨도 눈치…청탁·고발 난무
낙하산 인사 지속 직원들도 무기력
이사회 강화…비리 모니터링 도입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350억원대 부당대출 사태로 우리금융그룹과 우리은행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검찰의 칼끝이 손 전 회장까지 겨누고 있는 가운데 120년 역사의 우리은행 역대 최대의 위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금융의 오랜 민영화 과정에서 봉합되지 않은 ‘구태 문화’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며 지배구조 개선, 성과주의 안착 등 중장기 쇄신방안을 마련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계파 간 알력 등 구태의연 문화가 금융사고의 원인

전문가들은 우리금융이 오랫동안 정부가 대주주인 상태에서 한동안 방치 사태에 놓여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 민영화 과정을 거친 점이 문제라고 했다. 즉,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금융 내부의 계파 간 알력 다툼 등 구태의연한 문화가 여전했고 민영화 이후 우리금융을 이끌었던 경영진도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채 촘촘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과 같은 대규모 금융사고는 예견된 사태였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금융은 그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민영화 과정이 상당히 어수선했고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정부 로드맵을 통해 시행하다 보니 직원들은 내부통제 교육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조직문화는 타 시중은행보다 뒤처져 있었다”고 짚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그간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내부통제 시스템 마련을 철저하게 주문해왔다”며 “그럼에도 이번 우리금융의 대규모 금융사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심각한 내부통제의 결함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어 “자체 내부통제 방안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은 (민영화 과정에서) 조직문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고 꼬집었다.

현 경영진도 뿌리 뽑지 못한 계파 갈등…투명한 인사·신상필벌 필요

우리금융은 올해 3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우리금융 잔여지분 전량(935만 7960주·지분율 약 1.24%)을 자사주로 사들이면서 지난 1998년 공적자금 지원 이후 26년 만에 완전한 민영화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한빛은행을 거쳐 우리금융으로 바뀌는 동안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의 계파 갈등은 이어져 왔다.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은행장에 두 계파 출신 중 누가 되느냐에 따라 갈등은 더욱 더 첨예했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임종룡 회장이 내부적으로 가장 중점을 뒀던 게 아마도 계파 갈등과 부당한 인사청탁 등을 없애는 것이었을 것 같다”며 “고질병처럼 인사철만 되면 쏟아지는 인사 청탁과 투서 등에 임 회장 자신도 꽤 골치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은행 부행장을 지낸 한 인사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시스템이 남아 있다. ‘한일’, ‘상업’ 라인을 찾고 학연·지연 찾기도 여전하다”며 “그러다 보니 위에서 부당한 일이 발생해도 눈치를 보고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싹 없애려면 투명한 인사와 신상필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관치 인사 낙하산으로 계속 내려오다 보니 조직 사정도 잘 모르고 ‘거쳐 가는’ 자리여서 그런지 직원들도 큰 리더십을 기대하진 않고 있다”며 “타 행도 횡령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은행 산업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번 손태승 전 회장 건은 우리은행만의 문제로 있어서는 안될 금융사고가 터진 것이다”고 했다.

KB금융, 지배구조 개선 사례 살펴야

지난 10년간 바람 잘 날 없던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개선 사례를 참조할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KB금융은 과거 지배구조 문제로 홍역을 앓았지만 성공적인 내부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KB금융의 지배구조는 10년 전만 해도 불안정했다. 2014년 당시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관료 출신 임영록 회장과 박근혜 정부 쪽 인사인 이건호 국민은행장 간 ‘집안싸움’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KB금융을 구성했던 이른바 ‘3채널’, 국민은행, 한국주택은행, 한국장기신용은행 출신 간 차별과 ‘낙하산 최고경영자(CEO)’라는 구태의연한 관행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러나 2014년 말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취임 후 2016년 ‘경영승계 규정’을 마련하면서 정상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또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CEO 후보군을 내부 육성하고 내·외부 투명한 평가를 통해 선정토록 했다. 또한 사회이사가 경영진 견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이사회 역량지표’ 등 표준 이사회 구성안을 도입해 내부통제도 서서히 그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민은행도 금융사고가 발생하긴 하지만 2023년 금액 기준 10억원 미만으로 같은 기간 우리은행보다 현저히 적다.

강경훈 교수는 “타 지주를 보면 CEO의 ‘그립감’이 더 강한데 투명한 CEO 선임 절차와 이사회의 제대로 된 견제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강력한 조직 장악력을 갖기 위해선 조직문화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CEO 직속 직원 비리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갖추지 않으면 제2의 손태승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정병묵 (honnez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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