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옆집 공사에 남의 집 마당 맘대로 써”… ‘현대건설 본사에 車 돌진’ 한남3구역 가보니

박지윤 기자 2024. 9.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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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한남4 수주전에 한남3 도로 활용 제안
현대건설 “사업기간 1년, 사업비 2220억 절감”
한남3 조합원 “사전 협의 없이 한남3구역 함부로 써”

“옆집 공사한다고 남의 새 집 마당을 허락 없이 맘대로 쓰겠다는데 화가 안 날 사람이 있나요?” (한남3구역 조합원 A씨)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남4구역 재개발사업지 주택가 전경. /박지윤 기자

지난 6일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남3구역’ 주택재개발사업지는 서늘해진 날씨처럼 썰렁했다. 한남3구역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이주를 시작해 현재 90% 이상 이주가 진행된 상태다.

이날 보광동 일대를 오가는 행인 가운데 한남3구역 조합원인지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A씨에게 최근 한 한남3구역 조합원의 현대건설 본사 사옥 차량 돌진 사고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앞서 한남3구역 조합원 임원인 B씨는 지난 4일 오후 4시40분쯤 자차로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사옥 정문의 회전문을 수차례 들이받아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A씨는 “이번 사고는 B씨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현대건설의 한남3구역 조합원 기만 행위에 대한 저항”이라며 “현대건설이 먼저 수주한 한남3구역을 조합과 어떤 협의도 없이 멋대로 ‘한남4구역‘ 수주전에 활용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남3구역 조합원들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이달 삼성물산과 2파전 구도로 좁혀진 한남4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한남4구역 조합원들에게 사업제안서를 돌렸다. 이 제안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한남4구역에 임시 우회도로를 설치하면 공사 기간으로 최소 12개월 이상이 소요돼 사업 기간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은 내수재해 위험지구인 보광‧장문로변의 지반고를 높여 자연 배수를 유도해 저지대 상습 침수를 막기 위해 임시 우회도로를 설치해야 한다. 이로 인해 사업비 1조원에 대한 금융비용 250억원, 이주비 3조원에 대한 금융비용 1500억원, 공사비 1조5700억원에 대한 물가 상승분 470억원 등 총 222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현대건설은 밝혔다. 한남4구역 조합원당 약 1억9000만원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현대건설이 최근 한남4구역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사업제안서. /독자 제공

하지만 현대건설은 바로 옆인 한남3구역 내 계획도로를 활용하면 1년 이상의 사업기간을 단축하고 2220억원의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대건설의 사업제안 내용을 확인한 한남3구역 조합원들은 즉시 현대건설 한남3구역 담당자에게 항의했다. 엄연히 한남3구역 사업지인데 사전에 조합 허락도 구하지 않고 한남4구역에 당당히 한남3구역 도로 활용 방안을 담은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남3구역 조합원 C씨는 “한남3구역은 이주를 거의 마친 상태로 조만간 철거 후 공사에 들어가는데 한남4구역은 아직 시공사 선정도 하지 못해서 사업 진행 속도 차이가 크다”면서도 “몇년 후 이미 한남3구역은 공사 후 새 아파트 입주를 마쳤을텐데 한남4구역 공사를 위해 한남3구역 도로를 멋대로 쓴다는데 항의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한남3구역 조합원 D씨도 “한남4구역 사업비‧사업기간 절감에 한남3구역을 활용하려면 먼저 한남3구역에 동의를 구하는 게 순서”라며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이 한남4구역 공사 때문에 구역 내 도로 이용 불편을 감수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번에 현대건설 본사 사옥에 차량 돌진 사고를 낸 B씨는 한남3구역 조합에서 현대건설과의 계약을 담당하는 임원이었다”며 “B씨가 현대건설 사옥을 들이받아 재물을 손괴한 것은 잘못이지만, 한남3구역 조합원을 분노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현대건설”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안그래도 현대건설의 거짓말이 한남3구역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슈였는데 이번에 한남4구역 조합원들에게 한남3구역 안에 있는 도로를 활용해 사업비와 사업기간을 줄이겠다고 홍보한 것을 알고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며 “B씨가 욱하는 마음에 사고를 낸 것은 잘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더 이상 한남3구역 조합원을 얕보지 말라는 의미로 현대건설에 강한 의사 표시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일 오후 4시40분쯤 한남3구역 조합 관계자가 자신의 차량으로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사옥 정문의 회전문을 수차례 들이받아 유리 파편이 튀어 있다. /독자 제공

이날 만난 한남3구역 조합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현대건설이 지난 2020년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뒤 기존에 제안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C씨는 “현대건설은 4년 전 한남3구역 수주전 당시 DL이앤씨(옛 대림산업)와 조합원 투표에서 100여표 차이로 이겼다”며 “현대건설이 한남3구역에 현대백화점을 입점시키고 지하철 신설 역사를 유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제안해 간신히 승기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D씨는 “한남3구역 수주전에서 승리한 현대건설은 올해 한남3구역 조합에 현대백화점 입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백화점 같은 상가로 대신하고, 지하철 신설 역사 유치가 아닌 지원을 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며 “이때부터 이미 현대건설에 대한 한남3구역 조합원들이 불만이 커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한남4구역 재개발 조합원들은 아직 한남3구역과 현대건설의 갈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다만 한남3구역과 한남4구역이 가까이 붙어있는 만큼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날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한남4구역 조합원 E씨는 “며칠 전 현대건설 사옥 차량 돌진 사고 소식을 듣긴 했는데 아직 정확히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며 “현대건설과 마찰이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남4구역 조합원 F씨도 “한남3구역과 한남4구역은 같은 보광동에 사업지를 두고 있는 만큼 공사를 하려면 서로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며 “각자의 이익을 주장하기 보다는 서로 조금씩 협의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가져서 윈윈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한남3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보광동 일대를 재개발해 최고 22층, 197개동, 5816가구 규모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한남4구역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를 최고 23층, 2167가구 규모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오는 10월 시공사 입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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