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말한 60년대생, “연공서열 마지막 세대, 노동시장·서울아파트 못 떠나”[60년대생의 은퇴]
1960년대생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축복받은 세대, 비운의 세대, 경쟁력 있는 세대, 개혁의 대상 등등. 마처세대라고도 한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세대’란 뜻이다.
이들의 대규모 은퇴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젊은이들에게 축복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이들을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한 연공서열제 폐지를 동반한 정년연장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대규모 은퇴가 가져올 국민연금에 주는 충격도 숙제다. 연금을 제대로 받게 되는 첫 번째 세대이기 때문에 연금재정의 부담은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금개혁이 필요하지만 전망은 만만치 않다. 현재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은 과거 단카이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많은 논의가 펼쳐졌으며 다양한 대안도 마련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들의 은퇴에 대비해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전문가 3명으로부터 이들의 은퇴와 그로 인해 벌어질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김경록 박사 “은퇴 후 노동의 기회 줘야 부담 던다”
경제학자이자 2013년부터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은퇴 전문가’ 김경록 박사(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는 올해 ‘60년대생이 온다’는 책을 출간해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한국에 화두를 던졌다. 860만 명에 달하는 60년대생의 은퇴가 한국의 산업, 노동, 소비시장 전반에 급격한 변화와 함께 위기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했다.
김 박사는 한국이 일본보다 고령화 부작용을 더 심하게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경록 박사는 “일본 베이비붐세대인 단카이 세대를 보면 1947년에서 49년 사이 3년간 출생인구가 반짝 증가하다가 강력한 산아제한을 실시하면서 1960년 정도까지 계속 줄었다”며 “반면 우리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부터 출생이 증가하기 시작해 58년부터 61년까지 매년 100만 명이 태어나다가 잠시 줄었으나 74년생까지 또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구 그래프에서 쌍봉낙타처럼 출생률이 높던 베이비붐 세대는 고성장기에 엄청난 생산성을 발휘했으나 이들이 모두 70대 이상이 되는 2040년이 되면 사회에 본격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상되는 문제는 다양하다. 1600만에 달하던 인구가 무대 밖으로 밀려나면서 일본처럼 사회 전반적인 소비침체와 고령자에 대한 부양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는 곧 세대 갈등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 등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며 강해진 60년대생만의 응집력은 인구수와 함께 정치적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경록 박사는 “앞으로 세금을 내야 하는 세대와 복지 지출의 수혜를 받는 세대 간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특히 저성장 시대에 먹고살기 힘든 젊은층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복지 지출의 수혜를 받는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는 투표 수에서 항상 밀리게 되는데 세금을 내야 하는 세대는 뭔가 수탈을 당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대 갈등을 막고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편적 복지보다 선택적 복지 차원에서 고령자 복지에 접근하는 한편, 은퇴자들의 재취업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동시장만 좋으면 전체적으로 노후 준비는 크게 걱정이 없다”는 차원에서 국가 차원의 은퇴자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상 65~70세가 정년인 서구 사회보다 한국 사회의 정년은 10년가량 빠른 편이다.
김 박사는 “보통 정년이 60세이다 보니 고용노동부의 관심 노동시장은 50대까지이고 보건복지부는 복지 차원에서 70대부터 신경을 쓰는데 그 사이에 그레이존이 바로 60대”라며 “현재 60대 고용률이 높은데 비정규직 등 열악한 근로조건에서도 각개격파를 통해 아직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60대에겐 이들이 속한 기존 정규직 직장의 정년 연장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연공서열 제도의 개혁 없이는 사회에 더 큰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젊은 취업인구에겐 더욱 그렇다.
김 박사는 “정년의 연령을 높이게 되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혜택을 보게 되는데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일자리”라며 “연공서열제를 없애야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비용이 줄고 그 여력으로 젊은층을 고용할 수 있는 임금체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춘욱 박사 “60년생 은퇴, 젊은층에 길 터줄 것”
거시경제 전문가인 홍춘욱 박사(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낙관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취업 기회가, 소비시장에서는 실버산업의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홍 박사는 “60년대생의 은퇴는 노동시장의 호황을 유발할 것”이라며 “개인적인 생산성 수준보다 높은 연봉을 ‘연공서열’ 때문에 받은 면이 있는데 이들의 은퇴로 노동시장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1969년생이라는 그는 60년대생에 대해 대체로 ‘건강하고 부유하다’고 설명한다. 홍 박사는 60년대생의 특징으로 취학 연령에 들어선 70년대 초반부터 초등학교·중학교 평준화가 시작돼 학력이 높다는 점, 80년대 호황기에 취업해 부유한 이들이 많다는 점, 주식보다 부동산 시장에 아주 강한 애착을 보인다는 점을 꼽았다. 높은 학력으로 3저 호황으로 고속성장을 하던 시기에 취업해 그 과실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른 소득으로 60년대생이 일군 자산의 정점은 누가 뭐래도 ‘강남 아파트’이다. 홍 박사는 “60년대생 선배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80년대에는 주식이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등의 부침을 겪었던 반면 서울 아파트는 명목가격상 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의 학습효과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나고 있다. 홍 박사는 “강남 아파트를 보유한 선배들을 보면 집을 팔거나 역모기지로 연금을 받아 노후를 보내기보다는 계속 일을 하더라도 자산을 유지해서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실버타운 사업이 부쩍 성장한 배경에도 60년대생 은퇴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 마곡에서 공급한 실버타운 ‘VL르웨스트’ 경쟁률은 205대 1에 달했다. 홍 박사는 “최근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기 좋은 곳은 수백 대 1의 경쟁이 벌어지는 게 60년대생 때문”이라며 “이들이 건강한 데다 부유하니 드디어 실버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60년대생이 기득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위로는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베이비부머 1세대에 가려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정년보다 일찍 은퇴로 내몰리는 세대 역시 이들이다.
홍 박사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1세대들은 산업화 초기에 자리 잡은 데다 IMF 등을 거치며 윗세대가 사라지면서 수혜를 입었다”며 “전통 있는 기업에서는 주류세력이 50년대생 이후에 60년대생들을 거치지 않고 70년대생으로 바로 이동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는 그런 60년대생에게 신분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부 60년대생에게는 ‘어디에 산다’는 것이 신분 증명이며 ‘그 지역을 벗어나면 망한다’는 인식이 강해 생활이 어려워도 주택을 처분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금개혁은 어려운 과제가 될 공산이 크다. 홍 박사는 “58년 개띠가 은퇴하며 연금을 수령하기 전인 2018년에 연금개혁을 했어야 했다”며 “이미 받던 연금을 뺏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베이비붐 1세대가 이미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지금 연금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망했다.
전영수 교수 “‘정년 없는 사회’는 필연적 흐름”
이처럼 60년대생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양면성이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전용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화려한 과거만큼 불안한 노후도 공유한 세대”라고 표현했다.
60년대생은 민주화라는 키워드로 사회혁신에 주목했으며 54~65세로 현재까지 생산가능인구로서 소득 및 자산 수준이 정점을 찍는 강력한 집단이다. 동시에 부모 부양을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의 ‘마처 세대’로 불린다.
전 교수는 60년대생에 대해 “훌륭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입해 경제성과를 두루 경험했기에 충실히 선배 세대의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다”며 “고성장의 수혜와 저성장의 불안, 그 속에서 구조개혁의 과제도 봉착해 있다”고 정의했다.
전 교수는 60년대생들이 필연적으로 직면할 구조개혁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년연장과 연금개혁이 그 핵심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등의 수급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년연장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고성장 환경에 바탕을 둔 ‘인플레형’ 고용구조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입사한 지 오래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에 필요한 높은 비용만큼 임금 역시 높아지는 인플레형 고용구조는 종신고용, 연공서열이라는 뼈대가 있어 가능했다.
전 교수는 “인플레형의 현재 고용구조는 곧 선진국처럼 성과주의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년연장과 재고용 정책이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일본처럼 ‘실버민주주의’가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전 교수는 “구조개혁의 압박에 몰릴수록 60년대생의 머릿수를 내세운 ‘제론토크라시’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론토크라시는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기득권을 장악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
전 교수는 “후진적인 한국 정치 환경에서 세대분열로 진영을 확대하려는 동기와 연결된다면 60년대생의 활용도는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며 “초고령 이슈도 그 속에서 거론될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 교수는 “후배 세대의 숨통을 열어주기 위해 그나마 선배 세대보다는 노후 준비가 돼 있는 60년대생이 다소 내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거대 인구가 생산가능인구에서 피부양인구로 이동한다면 사회 전체에 엄청난 부담이 되며 특히 국민연금은 소수 납부자, 다수 수급자 구조로 인해 지속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해법으로 지금의 수직적 세대부조 체제를 ‘평평한 방식’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전 교수는 “젊은 세대가 납부하고 노년층이 받기만 하는 세대부조 방식보다는 소득이 있거나 자산이 축적된 국민이라면 연령이 높아도 납부를 더 할 수 있는 일종의 ‘소득부조’ 방식으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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