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미래다]⑤ AI·반도체·전기차 급증… “11차 전력 수요 여전히 적어”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 5년 내 2배 전망
정부는 주기적으로 중장기 에너지 계획을 수립한다. 미래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수립돼야 할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되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돌아온다.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의 미비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AI(인공지능) 서버는 지난해 기준 약 120만대로 추산되고 이 수치는 2027년에 347만대로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AI 서버 시장의 약 60~70%를 차지하는 엔비디아의 4세대 서버는 24시간 가동한다고 가정하면 대당 하루 전력 사용량이 약 245㎾h다. ㎾h당 전기요금을 150원으로 가정하면 전기요금만 연간 약 1340만원이다.
AI 서버를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선 데이터센터가 필요한데, 여기에도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학계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관련 연간 전력 사용량이 현재 400테라와트시(TWh·1TWh는 1000GWh)에서 2030년 1000TWh로 2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부터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규모가 한국은 물론 일본의 연간 소비량까지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 실무안을 발표했다. 실무안은 우리나라의 2038년 최종 목표 수요를 129.3GW로 예상했다. 이는 10차 전력계획 예상 수요보다 11.3GW 많은 수치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차 보급,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 앞으로 늘어날 전기 수요를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전력 수요를 여전히 과소 예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AI 데이터센터·반도체… 전기 수요 급증
우선 국내에서도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개수 및 전력 수요는 2022년 12월 147개·1.76GW에서 오는 2029년 732개·49.4GW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들 데이터센터를 차질 없이 구동하기 위해선 1.4GW 규모의 대형 원전 APR1400 35기가 필요하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데이터센터는 다른 전력 수요처와 달리 24시간 내내 일정한 규모의 전력을 끊임없이 공급해 줘야 한다”며 “급증하는 전력 사용량에 맞춰 발전원을 늘려야 하는데, 간헐성이 높은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전을 더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들어서는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경기도 일대에는 2047년까지 반도체 공장 16개가 신설된다. 2027년부터는 공장 5개가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다. 업계는 이곳에 필요한 전력 수요가 원전 3~4기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고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마무리되면 10GW 이상의 전력 수요가 예상된다.
국가산업단지가 정부의 인·허가를 받으려면 통상 7년이 넘게 걸리지만, 반도체 국가산단은 이 기간을 최소 2년으로 대폭 줄이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약 1년 6개월이 걸리는 환경영향평가 기간도 단축될 전망이다. 클러스터의 완공 및 양산 시점에 따라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 수 있는 것이다.
전기차 보급률도 변수다.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는 2021년 23만443대에서 지난해 54만3900대로 2.3배 증가했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450만대의 전기차, 123만기 이상의 충전 인프라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수립한 전력계획을 보면 대부분 실제 수요가 예측을 초과했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의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전기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0년 수립한 1차 전력계획에서는 2015년 전력 수요를 67.7GW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78.9GW였다. 2004년 수립한 2차 전력계획에서는 2017년 수요를 68.7GW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85.1GW였고, 3차 전력계획에서는 2020년 수요를 71.8GW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89.1GW였다. 4차 전력계획에서는 2022년 수요를 81.8GW로 예상했지만, 실제는 93GW였다.
전력 수요를 과소 예측하고 수급 조절에 실패하면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 2011년 9월 15일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초유의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전력 수요를 낮게 예측해 상당수 발전소 가동을 멈췄는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순환 정전을 실시한 것이다.
◇ 신재생에너지, 태양광으로 다 맞추려면 여의도 203배 면적 필요
11차 전력계획의 단기 전력 확충 목표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대부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국한됐다. 2038년까지 신규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건설해 원전 비중은 늘리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은 줄이는 대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NDC는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조약인 파리 협정의 일부로 개별 국가가 직접 감축 목표를 정한다. 한국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2억9100만t)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전력(전환) 부문의 배출량은 2억6960만t이었다. 정부는 전력 부문에서 전체 감축 목표(40%)를 웃도는 45.9%를 줄여 2030년 1억4590만t까지 낮출 예정이다. 이를 위해 태양광‧풍력 설비용량을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총 49GW를 태양광과 풍력 설비로 감당하는 것이다.
통상 1GW 용량의 태양광 설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약 12㎢의 부지가 필요하다. 49GW를 태양광만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부지는 여의도 면적(약 2.9㎢)의 203배에 달한다.
국내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가 유럽에 비해 풍속이 느린 우리나라 환경에 맞춰 설계한 해상풍력발전시스템의 1기당 발전 용량은 8㎿다. 49GW를 풍력만으로 충당한다면 6125기가 필요한데, 이 설비의 로터(회전체) 직경은 205m에 달한다.
태양광‧풍력을 통해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대폭 낮춘다고 해도 여전히 남은 감축분(1억4510만t)은 산업, 수송, 건물 등 비발전 분야의 몫으로 남아 있다. 업계는 비발전 분야의 탄소 감축은 화석연료 소비를 전기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NDC 달성을 위해선 확실한 무탄소 발전원인 원전을 늘리는 게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11차 전력계획은 AI 데이터센터 확대, 반도체 클러스터 등 각종 변수를 모두 고려해 산정됐다”며 “향후 국회 보고 등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될 수 있으나 아직은 수정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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