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이배·전준호… 한국 작가들에 주목, 46國 7만명 다녀갔다
“초고가 작품은 없었지만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대 작품까지 고루 팔렸다.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였고, 수준 높은 장외 전시들이 동시에 개막해 서울이 ‘아시아 미술 허브’로 자리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려한 잔치가 끝난 뒤, 국내외 미술 관계자들이 내린 총평이다.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국내 최대 미술장터 ‘키아프 서울’이 7일과 8일 하루 간격으로 폐막했다. 프리즈는 나흘간 46국에서 7만여 명이 다녀갔고, 키아프는 5일간 8만2000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아트페어 기간에 맞물려 열리면서 컬렉터뿐 아니라 해외 미술 기관 대표와 큐레이터 등 미술계 인사들의 방한이 늘었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36국에서 7만명이 다녀간 작년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손님들이 방문해 미술 잔치를 즐겼다”며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예술 달력에서 중요한 행사로 입지를 더 확고히 했다”고 말했다.
◇초고가 작품 없었지만, 한국 작가들의 도약
미술 시장 불황이 계속되면서 초고가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대중적인 작가, 판매가 보장된 작품들이 출품돼 고루 팔렸다.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는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를 250만달러(약 33억5000만원)에, 독일계 화랑 스프루스 마거스는 조지 콘도의 ‘자화상’을 아시아의 개인 컬렉터에게 195만달러(약 26억원)에 판매했다. 페이스 갤러리는 이우환의 회화를 120만달러(약 16억원)에, 타데우스 로팍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회화를 100만유로(약 15억원)에 판매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 갤러리와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PKM갤러리는 첫날 1세대 추상화가 유영국의 회화 ‘work’(1973)를 20억원에 판매해 주목받았다. 전준호의 개인전 형식으로 부스를 꾸민 갤러리 현대는 전준호 작품 7점을 판매했고, 국제갤러리는 양혜규·문성식·이희준 작품을 고루 판매하는 성과를 냈다. 조현화랑에선 이배 작품 10점을 비롯해 박서보·권대섭·이광호 작품이 새 주인을 만났다. 리안 갤러리는 김근태·이진우·남춘모 작품을, 가나아트는 최종태의 청동 조각과 이상국 유화를, 갤러리 신라는 곽훈의 회화 작품을 판매했다.
프리즈 서울에선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山丁) 서세옥의 작품을 두 아들인 서도호·서을호가 ‘LG 투명 올레드 TV’로 재해석한 전시도 인기를 끌었다. 장남 서도호가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전시장 입구부터 뒤편까지 한눈에 투과해 볼 수 있도록 작품을 겹겹이 배치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연출했다. 관람객 정모씨는 “투명 TV가 간격을 두고 겹쳐져 영상이 재생돼 그림이 3차원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경이로웠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미술계 인사들은 “올해는 특히 키아프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입을 모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리즈와 ‘체급 차’가 컸지만, 올해는 해외 갤러리 참여를 높이고 국내 갤러리 심사를 강화해 출품작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평이다. 올해 처음으로 키아프에 참여한 호주 시드니 갤러리 피어마크는 “서울은 현대미술의 글로벌 허브로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아시아 관객들에게 새로운 작가를 소개한 멋진 기회였다”고 밝혔다.
◇“한국 미술 생태계 폭넓게 살펴볼 수 있었다”
제임스 코흐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파트너는 “올해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덕분에 아트페어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가 더 폭발적이었다”고 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루브르 아부다비, 홍콩 엠플러스(M+) 뮤지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일본 모리 미술관, 미국 뉴뮤지엄, 네덜란드 스테델릭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와 관계자들이 프리즈와 키아프 현장을 찾았다.
해외 인사들은 리움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등 서울의 주요 미술관도 둘러봤다. 국내 젊은 작가의 스튜디오에 해외 관계자를 초청하는 행사도 잇따랐다. 마리엣 웨스터만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장은 “서울의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과 광주비엔날레까지 둘러보며 한국의 미술 생태계가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폭넓게 살펴볼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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