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패럴림픽 ‘황연대 성취상’ 다시 살릴 수 없나
30년 동안 한국인 이름 딴 상 주다
도쿄 패럴림픽 때 슬며시 폐지돼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 고민해야
전 세계 장애인들이 모이는 스포츠 제전 패럴림픽(The Paralympic Games)이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막을 내렸다. 182국에서 4463명이 참가했다. 패럴림픽을 담당하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법적으로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위상이 다르지 않다. 한국 패럴림픽 메달리스트 포상금과 연금은 올림픽과 같다.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는 패럴림픽이 올림픽의 60%에 머물렀지만 다음 해 80%로 올렸다가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같아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차별을 금지한다는 법 정신을 반영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세계 스포츠 제전 첫 금메달은 1972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 휠체어 탁구 개인전에서 우승한 송신남으로 봐야 한다. 송신남은 단체전 금메달까지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양정모보다 먼저였다.
한국 사회 장애인들은 2023년 말 기준 264만명이다. 올해 초등학생 수는 248만명. 장애인이 더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초등학생들과 비교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고 꺼리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버겁고 정신적으로도 고단하다. 일상생활에서 늘상 차별과 멸시, 동정과 연민이란 복합적인 시선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변호사 김원영(지체장애)씨는 고교 시절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담임 교사가 “오늘이 장애인의 날인데 우리 반에는 원영이가 있으니 오늘 하루 잘해줘라”라는 말을 할 때 숨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지난해 공개한 장애인 인식 조사를 보면 살면서 차별을 느꼈다는 장애인은 전체의 80.1%(2023년)였다. 2020년 63.5%에서 많아졌다. 상대적으로 감수성이 좀 더 예민하다고 볼 수 있는 19세 미만 장애인들은 차별 인식 비율이 92.3%에 달했다. 이런 이들이 유리벽을 깨고 나와 자기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무대 중 하나가 패럴림픽이다.
얼마 전까지 패럴림픽에서 인상적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황연대 성취상(Whang Youn Dai Achievement Award)’을 줬다. 황연대(86) 박사는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 최초 장애인 여성 의사가 된 인물.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앞두고 ‘오늘의 여성상’ 상금을 IPC(국제패럴림픽위원회·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에 기부하면서 이 상이 만들어졌다. 비공식 행사로 취급하다 2008 베이징 대회부터 공식 행사로 인정받았다. 황 박사가 직접 순금 메달을 수상자에게 줬다. 2018 평창 대회까지 장애인 선수 28명이 이 상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2020 도쿄 대회에서 ‘아임파서블상(I’m Possible Award)’으로 바뀌었다. IPC는 “내부 반대와 일부 국가 부정적 의견 등을 종합해 내린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은 아니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당시 폐지를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나마 아임파서블상도 그 뒤 없어졌다.
황 박사는 과거 본지 기고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교장실에 들어서자 일본인 교장 선생은 분필로 1m 정도 선을 그어 놓고 뛰어넘어 보라고 요구했다. 걷지도 못하는데 뛰어넘어 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고 썼다. 그런 수모와 역경을 딛고 성취를 이룬 한국인 이름이 패럴림픽 때마다 희망의 상징처럼 불리는 건 영예스러운 일일 텐데 없어졌다니 못내 아쉽다. 정부 쪽에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IPC 결정이고 다 합의된 사항”이라고 답한다. 어떻게든 살릴 방법이 있는지 고민해줬으면 좋겠는데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게 더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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