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1945년 우키시마호의 강원인

박미현 2024. 9. 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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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다가 연임을 포기한 기시다 일본 총리가 며칠 전 방한했는데, 하루 전날인 9월 5일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사고 선박이 해군 소속이었는데도 승선자 명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줄곧 부인해왔다.

올 8월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승선 명부 존재를 폭로하면서 급기야 알려질 정도로 은폐돼왔다.

1954년 선체 인양 당시 수습된 유해는 1945년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집단화장된 채 일본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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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다가 연임을 포기한 기시다 일본 총리가 며칠 전 방한했는데, 하루 전날인 9월 5일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우키시마호(浮島丸)의 승선자 명부 일부를 건넸다는 것. 대개는 ‘우키시마호’가 낯선 이름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 한으로 맺혀 잊히지 않는 선박명이다. 일본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광복된 고국으로 돌아오려던 이들을 실은 일본해군 소속 선박이었는데, 폭발 침몰하면서 대거 사망자를 냈다. 경상도에서 함경도에 이르기까지 각지에서 강제징용됐기에 강원인도 포함돼있다.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항한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4일 교토부의 마이즈루항 앞에서 폭발 침몰했다. 고생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부푼 꿈은 졸지에 검푸르게 수장됐다. 일본은 사망자가 524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사건을 연구한 학계에서는 적어도 3700명에서 최대 1만2000명으로 추산했다. 사망자 수치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올해로 사건 발생 80년째인데도 승선 인원, 출항 경위, 침몰 원인, 사망자 이름과 주소 등 전모에 대한 진상이 미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사고 선박이 해군 소속이었는데도 승선자 명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줄곧 부인해왔다. 올 8월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승선 명부 존재를 폭로하면서 급기야 알려질 정도로 은폐돼왔다.

특히 이 사건이 주목되는 이유는 사망자 숫자가 대규모일뿐만 아니라 침몰 원인이 일본해군에 의한 고의적인 폭파라는 증언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닿아 폭발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으나, 승선 생존자들은 선박 내부에 폭발물을 설치해 고의적으로 수장시켰다고 확신해왔다. 해로 상 다른 배는 멀쩡한 점, 폭발시 물기둥이 없었던 점, 폭발 직전 해군장교들이 탈출한 점 등 10여 항목을 꼽고있다.

1954년 선체 인양 당시 수습된 유해는 1945년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집단화장된 채 일본에 남겨졌다. 이후 일본정부에 사죄와 배상 소송을 냈던 생존자와 유족측은 한국정부의 외면으로 인해 큰 괴로움을 겪어야했다. 지금이라도 한·일 양국 공동으로 진상을 규명해 이 사건을 매듭지어야 한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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