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對北 감시 카메라 꺼진 유엔 안보리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비공식 협의를 열고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활동을 보고받았다. 대북제재위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대응 조치로 만들어졌는데 위원회 의장국은 90일마다 활동 내용을 안보리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안보리 회의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북한의 안보리 제재 위반 내용이 어느 정도 공유되는데 이번엔 쏙 빠졌다.
안보리에 정보 공백이 생긴 것은 이 업무를 담당했던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 패널이 올해 5월 활동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전문가 패널은 매년 두 차례 북한의 제재 위반 사례에 대해 보고서를 내왔다. 그 과정에서 대북제재위에 사전 보고를 하며 보고서 내용을 조율했지만 이제는 패널 자체가 없으니 북한이 유엔 제재를 위반해도 이사국들은 공식적 통로로 알 길이 없게 됐다.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핵을 개발하고 불법적 수출입과 금융 거래를 해왔다. 이제는 감시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마음대로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 패널이 임무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해산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임기는 안보리 표결을 통해 한 해 단위로 연장됐는데 지난 3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부결됐다. 안보리는 러시아를 비롯한 상임이사국 5국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안건이 통과되지 않는 구조다.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진 이유는 북한과의 불법 무기 거래를 숨기기 위한 측면이 크다. 전문가 패널이 활동하면 북한 같은 비정상적인 정권과 거래한다는 점이 확인되는 러시아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던진 돌에 피해는 한국이 보고 있다.
감시망은 허술해지는 반면 북한의 범죄는 지능화되고 있다. 5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 스파이로 인해 떨고 있는 미국 기업들을 조명했다. 현지인인 것처럼 신분을 위장해 원격 근무 직원으로 미국 기업에 입사한 뒤 외화벌이를 해 북한에 돈을 송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자리 잡은 원격 근무 트렌드를 교묘하게 이용한 방법이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이 수법으로 매년 수억 달러를 벌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쏟아붓고 있다.
한국과 우방국인 미국, 일본은 사라져 버린 전문가 패널의 대체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현재 어느 것 하나 새로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북한 정권은 지금도 안보리 제재를 밥 먹듯 어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종종 중요한 일을 잊곤 한다. 원래 있었던 것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된다. 철책을 맞대고 있는 우리마저 이 상황에 익숙해져 무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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