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위한 기부,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 기고]
“Nothing happens until Money happens.” 돈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간결하고도 묵직한 문장은 미국의 한 대학 총장을 11년간 지낸 수전 피어스 교수의 저서 ‘On Being Presidential’에 나오는 말이다.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총장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구성원들이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일을 끊임없이 도전해 이뤄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 답하자, 진행을 맡은 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기금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하지 않으냐며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왔다. 15년 이상 동결된 등록금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는 대학 재정을 잘 아시기에 방송을 통해 기부 많이 해달라고 말할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게다.
매년 10월이 다가오면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관심이 집중된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가장 결핍이 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노벨상이 아닐까. 한 나라의 지성과 과학 지식 수준의 척도라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은 우리나라엔 아직 없다. 인류 역사에서 대학이 존재해 온 이유는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재를 길러내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풀어 사회를 지속시키는 기술과 가치를 창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대학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대학의 존재 가치는 “돈이 생기기 전”에는 구현되지 않는다. 우리 대학은 서양 선교사들의 희생과 사업가 세브란스의 헌신이 만나 일궈진 곳이다.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크다.” 학창 시절 깊은 울림을 주었던 루이 세브란스의 말만큼 ‘기부’의 본질을 설파하는 말을 아직까지 접해 보지 못했다. ‘기부’는 기쁨이다. 나를 넘어서는 모든 이를 위한 기쁨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대학이 선의의 기부자를 만나면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의 혁신이 일어난다”는 말을 실현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나만의 난제이다. 등록금과 국가 연구비 수주만으로는 최고의 연구자를 초빙하거나 창의적이고 우수한 학생을 길러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시설과 장비도 확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 기부는 주로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장학금이나,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위한 지원이 대부분을 이룬다. 의료원장 재임 중에 기부자 한 분 한 분에게 소중한 기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마침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중입자 치료 센터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암 환자와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치료기 도입에 도움 주신 분들을 모시고 선형 가속기 시설을 포함한 치료 센터 사전 답사를 진행했다. 대의를 위한 기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일궈내는지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학과 설립, 연구자를 위한 지원 사업, 학생들을 위한 천 원의 아침밥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교육 사업이 고마운 분들의 기부를 통해 이뤄진다. 본인의 기부가 뜻깊은 일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감동해 눈물로 더 큰 기부를 약속하는 분도 계신다.
대학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핵심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하는 게 총장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높은 국격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첨단 바이오, 이차전지와 반도체 및 글로벌 사회 공헌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명목적인 세계 대학 순위의 상승이 아니라 실효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뒷받침해야 한다.
대학의 본질적 가치와 공존하는 대학 총장의 DNA는 기회 닿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부해 주십사 부탁드리는 결례(?)를 범하는 것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곧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 나아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보증수표’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세계 1위의 기부 문화가 확산돼 대학이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이 강화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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