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11개월째 전쟁 늪 빠진 이스라엘… “결국 한 사람만 바뀌면 된다”
극우파 각료 편들며 하마스와 ‘적대적 공생’ 아니냐 비난까지
휴전 성사되려면 이데올로그 아닌 ‘전략가 네타냐후’ 부활해야
9월 첫날, 이스라엘 국민 70만명이 거리로 나섰다. 하마스에 살해된 인질 6명의 시신이 가자지구 라파 땅굴에서 발견되자 분노는 정부를 향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하야를 요구하는 소리도 터져 나왔다. 왜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 시점에서 정부 비판에 나섰을까? 작년 10월 7일 비극적 피습을 초래한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일단 유보해 왔다. 전쟁 중에는 총리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하마스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하마스가 천인공노할 테러 조직이자 궤멸되어야 할 존재라는 점은 지금도 똑같다. 분노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자국 총리 네타냐후를 비난하기 시작한 이유는 간명하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그 의무를 방기했기 때문이었다. 네타냐후의 고집으로 지금 가자에 남아있는 생존 인질 66명의 목숨도 위태롭다고 믿는다.
기회는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있었다. 당시 미국 주도로 중재한 휴전 협상안을 네타냐후가 받아들였다면 인질들은 무사히 가족 품에 안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조건을 계속 더해가며 협상 타결을 거부했다. 특히 가자지구 남부 라파 국경 지대 필라델피 회랑을 문제 삼았다. 이집트와 가자지구 접경인 이 지역 지하 터널로 불법 무기 밀수가 이루어지기에 이스라엘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이유를 새로 내세웠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억류되어 있던 인질들 중 일부가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교차했다. 전쟁 중에는 ‘정부의 깃발 아래 뭉친다(rally ‘round the flag)’는 오랜 상식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딜레마다. 일단 휴전에 응하여 적에 피랍된 자국민 인질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테러 집단과의 타협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올 것이기에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응징 보복에 나서는 것이 맞는 것일까. 네타냐후는 지금까지 후자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외자 입장에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지점에서 정부의 선택이 현명했는지를 가늠하는 판별식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 네타냐후와 노선을 같이하는 이들이 누구이고, 누가 반대편에 서 있는가이다. 필라델피 회랑을 포함, 점령지역 어느 곳도 팔레스타인에 내어줄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 인질이 위험해지더라도 가자 공격을 계속하고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축출해야 안전해진다고 믿는 이들이다.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과 스모트리흐 재무 장관 등 극우 정통파 각료들이다. 벤그비르는 오슬로 협정의 주역 라빈 총리의 피살 때 환호했던 인물이다. 스모트리흐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도 정당하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혐오와 차별을 일상화하는 이데올로기들로 하마스에 공격의 구실을 준 이들이다. 혹자는 이들과 하마스가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보기도 한다. 네타냐후는 지금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반면 협상을 통해서 일단 인질들을 살리자며 네타냐후와 대립하는 정부 내 인사들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와 안보 지도자들이다. 갈란트 국방 장관은 “인질을 희생하면서까지 회랑 주둔을 고집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일갈했다. 할레비 방위군 참모총장은 협상 조건 변경 없이 일단 휴전으로 인질 문제를 해결한 후, 하마스와의 전쟁을 수행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모사드, 신베트 등 양대 정보기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안보 전문가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이념에 과몰입한 각료들과 함께했다. 릭 제이컵스 미 개혁유대교연합 대표가 이 모습을 ‘미국 대통령이 KKK 간부를 각료로 임명한 것’이라는 비유로 한탄했을 정도다. 결과는 참혹한 모습으로 돌아온 시신 6구였다.
네타냐후 정부는 지금 실패하고 있다.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사법 개편 논란을 일으켜 혼란에 뒤엉키면서 작년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하고 국민 1200명을 잃었다. 가자로 피랍된 인질 255명 중 남은 66명의 이스라엘 국민 목숨도 안심할 수 없다. 북부 레바논 접경지대에서는 헤즈볼라와의 긴장 고조로 이스라엘 주민들은 집을 떠나 피신했다. 외교도 위기 징후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아랍 우방과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고, 강력한 우방 미국과도 삐걱거리고 있다. 경제도 큰일이다. 11개월을 넘기는 사상 최장의 전쟁을 치르느라 전비 부담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20대에서 40대까지 생산성 높은 노동력이 200일 넘게 대거 예비군 자원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무형의 경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예비군 동원으로 인한 인건비 지급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보수 이념과 강경 노선을 줄곧 견지해 온 네타냐후지만 본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타고난 전략가였고,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비록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에는 미온적이었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을 읽을 줄 알았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민감했다. 2011년 하마스에 5년간 피랍된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를 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수감자 1027명을 풀어주는 결단을 한 이가 바로 당시 총리 네타냐후였다. 국민 한 명의 생명을 위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의 선택은 거꾸로다. 완연한 이데올로그(idéologues)의 모습이다. 일단 휴전을 하면 많은 위기 요인을 추스를 수 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국가 안보를 맞바꾸고 있다. 테러 집단 하마스를 궤멸하고, 적대 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극우 보수 이데올로그의 몫이 아니다. 여론 통합, 민주주의, 방어 체제, 협상 역량, 경제력,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정부의 굳건한 의지로 지탱된다. 지금 모습은 오히려 하마스 등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을 이롭게 할 뿐이다. 결국 한 사람만 바뀌면 된다. 이데올로그가 아닌 전략가 네타냐후로 돌아서는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미스터 안보’의 본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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