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딥페이크에 촉법소년’은 동문서답
‘지인 능욕’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미지를 또 다른 이미지나 영상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은 등장한 후 지금까지 나날이 발전했다. AI 기술이 정교해지고 관련 앱 출시가 줄을 이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또한 빠르게 늘어갔다. 얼마 전, 한 외국 사이버 보안 업체는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99%가 여성이고,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등을 조사해 보니 등장인물 중 53%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중학생이 제보를 분석해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까지 만들 정도로 최근 심각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뒷북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양당 대표회담 의제에 딥페이크 범죄 관련 제도 개선 안건이 포함되었다는 보도가 있은 지 며칠 후, 여야는 관련 정부부처를 불러 긴급 현안 질의를 열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를 얼른 해체하라고 몰아세우던 국회의원들이 현안질의에 참석한 여가부 공무원에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당부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했으나, 딥페이크 성착취를 ‘급발진 젠더팔이’나 ‘과대 평가된 위협’이라고 한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런데 이 틈을 타고 뜬금없이 촉법소년 연령 하한을 낮추자는 정치권의 주장이 나왔다. 피의자의 70% 이상이 10대이기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여 엄단하자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나, 제대로 된 근거라고는 없는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
특정 연령대의 일부 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그 연령대에 해당하는 사람 전부의 처벌 수위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은 형사정책이라 볼 수 없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우리나라 소년범죄의 95%는 강력범죄가 아닌 생계형 범죄이며, 이미 14세가 아닌 10세부터 소년원에 보낼 수 있는 법이 작동되고 있다.
통계와 법 조문만 확인해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딥페이크 성착취 해결이라는 질문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라는 답을 내놓는 것은 억지스러운 견강부회다. 국민적 공분이 가해자 엄벌이라는 여론으로 이어지는 틈을 타, 법과 정책이 불리해져도 제대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아동의 권리를 슬쩍 끌어내리려는 것을 보니 지지율이 중요하긴 한가 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누군가가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착취물을 만드는 동안, 그 성착취물을 구매하고 재판매하는 사람, 힐링방이나 스파방으로 교묘히 포장된 불법 성매매 업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 있다. 중년 이상의 연령대가 모인 단톡방에서 공유되는 불법 촬영물들이 있다. 이 모든 행위는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딥페이크라는 신기술로 새로 등장한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놀이나 욕구 해소의 도구로 여기는 수많은 성착취 범죄 중 하나이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한 채 공권력을 강화하여 일부 개인의 일탈을 일벌백계하자는 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백약이 무효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성착취 범죄를 저지르기 더 쉬워지고, 제작자와 소지 및 유포자를 구별하기 어려워지며 범죄수익 구조도 치밀해질 것이다. 전 세대에 퍼져 있는 각기 다른 양상의 성착취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구조적 성차별 개선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해야 개선될까.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중단하고, 구조적 성차별이 이 사회에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처벌 강화에 쏟는 에너지만큼이나 성평등이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교육도 살려내야 한다. ‘호기심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방조를 먹고 자라난 다양한 형태의 성착취 범죄는 성평등을 향한 사회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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