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질 수도 있다

기자 2024. 9. 8. 21: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강한 자들끼리 싸우는 통에 약한 자가 중간에 피해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경전하사(鯨戰蝦死)’다.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말일 듯싶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고도 했다. 아랫사람의 일로 윗사람에게 해가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의료계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한 속담이다.

고래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의 생태와 습성이 놀라우리만큼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수천년 전 고래고기가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술고래’라 부르고, 큰 건물을 ‘고래 등 같다’고 하는 등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고래가 널리 쓰인다.

고래의 어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골짜기(谷)에서 물을 뿜는 입구’를 뜻하는 말에서 고래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 그나마 유력한 설이다. 그런 고래 중에서 몸이 작고 귀여운 생김새로 인간과 가장 친숙한 것이 돌고래다. 이 돌고래의 어원에 대해선 돼지의 옛 명칭인 ‘돝’에 고래가 더해진 말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자로 돌고래를 물돼지, 즉 해돈(海豚)이라고도 하는 것이 돌고래를 ‘돝고래’의 변형으로 보는 근거다.

하지만 15세기 때부터 우리 문헌에 ‘돓고래’가 보인다. ‘돓’은 ‘돌’의 고어다. ‘용비어천가’ 등에 돼지는 ‘돝’으로 표기돼 있지만, 같은 시기의 다른 문헌에 돌고래는 ‘고래’였다. 따라서 돌고래는 톹고래의 변형이 아니라 ‘품질이 떨어지는’ 따위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돌’과 고래가 결합한 말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돌배’ ‘돌감’ ‘돌조개’ 등처럼, 덩치가 집채만 한 다른 고래에 비해 보잘것없이 작아 붙여진 이름이 돌고래다. 돌고래를 지역에 따라 ‘곱새기’ ‘곰새기’ ‘수애기’ 등 다양하게 부르는데, 모두 비표준어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