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미한 학교폭력 해결권한은 교사에게 있어야 한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은 지난 20여 년간 '학생을 평화로운 사회의 주인공으로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학교폭력, 생활지도, 교권, 학생 심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 실천해 온 교사들의 모임입니다.
서이초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1년. 이 사태를 단지 학부모 악성민원과 아동학대법이라는 좁은 프레임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실이 이미 해체 단계에 이른 결과라고 진단합니다. 공교육 멈춤을 넘어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적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3개의 특별법'을 제안합니다. 또한 평화적 공화주의로의 프레임 전환을 위한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학교폭력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문제
현재 학교폭력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경미한 학교폭력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교사들에게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폭력, 따돌림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과격한 학교폭력도 처음에는 따돌림, 뒷담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경미한 학교폭력을 담임교사가 해결하면 대부분의 학교폭력이 해결되는 것이고 심각한 학교폭력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법은 교사들을 허수아비나 기계로 만들어 버렸다. 교사에게는 신고 의무 외에 어떤 권한도 없다. 교사가 잘 해결해보려고 개입했다가 불만을 가진 학생이나 학부모가 문제제기하면 교사는 학교폭력법을 위반한 게 되고, 때로는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하기도 한다. 요즘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는 교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외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요즘 교사들은 학교폭력 문제가 생기면 허수아비처럼 여기 저기 휘둘리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거나(서이초 교사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제3자의 입장을 취하며 담당 부서에 알리고 손뗀다.
시급한 교육 현안을 모르는 답답한 국회
백승아 의원은 서이초 사태 이후 교사들의 열망을 안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백승아 의원은 교육을 살리기 위해 '서이초 특별법'이라는 테마로 6개의 법률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중 학교폭력 관련법률 개정안은 교육지원청 소속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조사권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다. 학교폭력 조사의 범위를 출석, 진술, 자료제출 요청으로 명확히 하고 이에 불응할 시 벌금을 물리는 방안이다.
법안이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현재 국회 교육위 회의록을 보면 법안 개정과 상관 없는 AI교과서, 국가교육위원회 카톡 유출 등 현안 문제에 대한 진실공방이 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교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있다 하더라도 정당들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정작 중요한 교육 논제들은 뒤로 밀려났다. 정치 싸움, 예산 싸움도 필요하겠지만 교사가 죽고 아이들이 죽어 가는 현실 속에서 국회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목숨보다 중요한 예산, 목숨보다 중요한 싸움이 어디 있겠는가? 국회는 서이초 사건으로 드러난 비참한 교육 현실을 해결하는데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백승아 개정안의 한계점 : 학교폭력 조사권의 불명확성
백승아 의원의 안은 중요한 한계를 안고 있다. 학교폭력 조사를 누가 하느냐가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교사라면 누구나 학교폭력 조사를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학교폭력 '조사권'이 없다. 그럼 조사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엉뚱하게 교육감이 가지고 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학교폭력 조사·상담 등) ① 교육감은 학교폭력 예방과 사후조치 등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조사·상담 등을 수행할 수 있다. <개정 2021. 3. 23.>
1. 학교폭력 피해학생 상담 및 가해학생 조사
2. 필요한 경우 가해학생 학부모 조사
② 교육감은 제1항의 조사·상담 등의 업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1조의2 ①항과 ②항에 따르면 교육감은 교육청 소속 교직원에게 조사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고 외부 기관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은 교육감이 고용한 직원이 아니라 교육지원청에 의해 위촉받은 사람이다. 즉 외부인이다. 교육감은 외부에 조사 권한을 위탁할 경우 기관이나 단체에 위탁해야 하지만 전담조사관은 개인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에게 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학교폭력 조사가 정말 중요하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백승아 의원의 법률 개정안은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조사권을 명확히 한다고 해도 그 조사권을 교육청 학교폭력 전담조사권이 발휘할 수 있는지부터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1차 조사, 꺼리게 되는 현실
대안은 간단하다. 교사에게 조사권을 일차적으로 주고, 필요하면 전담조사관이 보조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학급에 폭력이 발생하면 담임교사가 조사해도 되는가? 일반인들은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교사들은 꺼리고, 요즘은 거의 안 한다. 일단 학교폭력이라고 생각되면 문제를 학생부로 넘긴다. 교사에게 조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학생부도 조사권한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학교폭력 책임교사도 교사라서 사실확인까지만 할 수 있다. 사실확인이란 강제성이 없는 것으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확인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조사를 할 수는 없다. 사실확인을 하는 교사가 아이들의 거짓말을 추궁해도 될까, 이 아이 저 아이의 말을 맞추어 봤더니 네 말이 거짓으로 보인다고 강하게 추궁해도 될까, 알 수가 없다. 교사의 학교폭력 조사란 사실확인보다는 강하고 경찰의 수사보다는 약한 그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폭력의 조사를 '준조사'라고 표시해 불필요한 법적 논쟁을 피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런데 법조인들은 '조사권'을 아무한테나 줄 수 없다며 교사에게 조사권을 부여하는데 부정적이다. 법적으로 '조사'는 아무한테나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감의 조사권을 교사에게 위임해야
만약 교육청 학교폭력 조사관에게 조사권을 주려면 학교폭력 조사관을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 조사관을 직원으로 채용하려면 공정한 선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폭력 조사관의 전문성은 깜깜이고 복불복이다. 조사관이 전문성이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조사관 교체를 요구해서 2번 3번 조사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사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채용하는 것 자체가 큰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전문성이 있는 교사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교사의 조사로 모자란 부분을 교육청 조사관이 맡으면 된다. 조사권이 교육감에게 있다면 조사에 대한 불만도 교육감이 책임지면 된다. 미국의 경우 징계에 대한 불복 소송은 관리자급 이상이 대응하고 최종 책임은 교육감이 지므로 우리라고 못 할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학급 안에서 일어난 경미한 사안이다. 전체 학교폭력 사안 중 학교장 종결제로 처리 가능한 사안이 65%가 넘는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은 교사가, 그것도 담임교사가 조사하기에 적절한 사안이다. 이것을 굳이 법적 근거도 불분명한 외부 조사관에게 맡기기 위해 절차를 밟고 전문성도 확보되지 않은 복불복 인력을 기다리고 조사가 미비하면 재조사하고 이렇게 이중 삼중의 절차를 거치는 동안 피해자는 보호로부터 멀어진다.
교사만이 할 수밖에 없는 학교폭력 조사의 특수성
학교폭력의 조사는 사실의 확인, 상담, 훈육이 포함되어 있다. 학교폭력 조사는 여러 번 해야 하고 여러 아이들의 말을 맞추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의 편견, 거짓말, 센척을 걷어내고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학교폭력 조사가 제대로 돼야 아이들이 반성하고, 피해자가 보호받는다. 따돌림, 괴롭힘, 뒷담화 문제에 대한 전문성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에게 있다.
학교폭력이 폭력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어 경찰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용어를 바꿔도 된다. 우리가 굳이 학교폭력이라는 말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미국에서는 주로 괴롭힘(bullying)으로 사용하고, 일본에서는 왕따(이지메イジメ)를 사용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따돌림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 법의 이름을 따돌림 방지법으로 바꾸어도 된다. 따돌림이 아닌 형법상 폭력 문제는 경찰이 개입하면 될 일이다.
폭행 : 때리거나 훔치거나 기물을 파괴하거나 빼앗는 행위, 성폭행,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가혹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형사법적 처벌 대상으로서의 범죄적 폭행과 기타 방법으로 처벌 가능한 폭행으로 나눌 수도 있다.
괴롭힘 : 욕하기, 심부름시키기, 나쁜 소문 퍼뜨리기, 아이들 앞에서 모욕주기, 툭툭 치며 장난하기, 골탕 먹이기, 성희롱, 육체적 수치감 주기 등이 괴롭힘에 해당한다. 흔히 학생들은 이를 장난이나 놀이로 합리화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으며 지도하기도 쉽지 않다.
따돌림 : 배제하기, 어울리지 않기, 비난 여론 형성하기, 무시하기 등이 따돌림이다. 이는 싫어하는 아이를 고의적으로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교사가 이에 대해 지적할 경우 가해 학생은 다만 싫어서 피할 뿐이라고 답하기 때문에 지도하기가 쉽지 않다.
유사 따돌림, 고립 : 전체적으로 학생들 간에 교류가 없는 경우, 소집단에 속해있지만 소외되는 경우, 공격적인 학생을 회피하는 것,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 규율이나 질서를 어기는 학생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참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 김경욱, [학교폭력에 대한 이해]의 유형분류
폭행, 괴롭힘, 따돌림, 유사따돌림과 고립의 4단계로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중 폭행은 경찰이, 괴롭힘~따돌림은 교사들이 협력해서, 유사따돌림과 고립은 담임교사가 맡도록 하면 된다.
국회가 손봐야 할 가장 큰 법률은 '학교폭력의 정의'
학교폭력의 가장 큰 악법 조항은 학교폭력의 정의에 있다.
1.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등
학교폭력의 정의를 '학생으로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무한정 넓혀 놓은 점이다. 그래서 특히 교사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포함된다. 그러면 가해자가 교사일 경우에 교육청 조사관은 교사도 조사하는가. 이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교사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일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교사들 자신이 아마도 수치심으로 공론화 시키지 않을 뿐이다.
작년 6월 춘천교육청에 불을 지르려다 잡힌 가족도 교사가 자기 자식에게 학교폭력을 했는데 교육청이 교사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고 그런 것이다. 해당 교사는 담배 피운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되었다고 한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학교폭력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학교폭력법의 이런 악법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전담조사관의 권한을 구체화하는 법 개정만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학교폭력법에는 교사가 학교폭력의 잠재적 가해자처럼 되어 있다. 교사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아닌 학교폭력 피해자의 보호자이자 학교폭력 가해자를 훈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경미한 학교폭력 해결권한을 교사에게 주어야
학교폭력이란 대부분 학급 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학급폭력이다. 그만큼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담임교사가 학급에서 일어나는 경미한 학교폭력,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기 개입, 조사, 상담, 훈육, 사과문 쓰기, 경미한 교육벌 부과 등의 일체의 권한을 담임교사에게 주어야 한다.
권한을 이양하자는 것이 교사들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뜻이 아니다. 권한은 아래로, 책임은 위로 향해야 한다. 대체 교육감은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불복 소송의 최종 심급을 도교육청에서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래야 교사들은 당당하게 교육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허수아비나 기계 취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학교의 일차적 역할은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나아가 학급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학급이 평화로우면 대부분의 학교폭력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는 평화로운 학급을 만드는 것을 우리 교육의 화두로 삼아 교사에게 필요한 권한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강균석 교사 (따돌림사회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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