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로봇 손의 발전[테크트렌드]
공장, 창고 등 각종 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들에는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장비인 엔드 이펙터가 달려 있다. 기존 엔드 이펙터는 용접용 토치, 그라인더, 스프레이건 등 특정 용도에 맞춘 전용 장비들이다. 최근에는 사람의 손처럼 다양한 작업을 두루 할 수 있는 범용 엔드 이펙터라 할 수 있는 다지형 그리퍼의 개발이 빨라지고 있다. 엔드 이펙터 전문업체들에 더해 선도적인 휴머노이드 기업들까지 동참하면서 다지형 그리퍼 개발 경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다.
증가하는 다지형 그리퍼 개발 시도
엔드 이펙터는 산업용로봇이나 협동로봇과 같은 각종 로봇의 끝부분에 부착된 기구부를 의미한다. 엔드 이펙터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최종적인 도구이자 수단이다. 그래서 기존 엔드 이펙터들은 특정 작업에 맞춤화된 전용 장비로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팰리타이징 작업이나 운반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로봇의 말단에는 팰릿이나 선반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텐딩용 엔드 이펙터가 장착되어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 절단, 도색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로봇들에는 작업 용도에 맞게 용접용 토치, 워터 제트 등의 절단용 장비나 그라인더, 대상 물체를 도장하는 스프레이건 등 다양한 엔드 이펙터들이 각각 부착되어 있다. 금속 가공 공정에 사용되는 산업용로봇에는 제품 표면을 매끄럽고 광택 나도록 연마하는 디버링 작업 전용 엔드 이펙터가 장착된다. 해당 작업에 사용될 때에는 높은 생산성을 보이지만 다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다.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용접기, 절단기, 스프레이건 등 다양한 장비나 작업 도구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범용 엔드 이펙터에 대한 잠재적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재무적으로나 공장 규모상 다양한 전용 장비를 일일이 갖추기 곤란한 중소기업들의 요구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잠재 수요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뎠던 범용 엔드 이펙터인 다지형 그리퍼의 개발 양상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휴머노이드 기업들도 개발 대열에 동참
다지형 그리퍼는 본래 산업용로봇, 협동로봇에 장착할 목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지금까지 줄곧 다지형 그리퍼 개발을 주도해 온 것은 엔드 그리퍼 전문업체들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면서 효과성이 입증된 전통적 로봇 시장의 분업 구조에서 볼 수 있듯 산업용로봇 기업들은 이른바 로봇의 팔에 해당하는 대형 다관절 매니퓰레이터와 제어 기술 분야에 집중해 왔고 로봇 팔에 장착하는 엔드 이펙터 등의 모듈형 부품 분야는 전문 기업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지형 그리퍼 개발은 자연스럽게 엔드 이펙터 전문 기업들의 몫이 되었다. 수많은 엔드 이펙터 기업들 중에서 다지형 그리퍼 개발을 꾸준히 진행해 온 기업으로는 슝크(Schunk), 로보틱(Robotiq), 온로봇(Onrobots) 등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테슬라를 필두로 한 일부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다지형 그리퍼를 휴머노이드의 차별적 경쟁력을 지원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의 생추어리AI(Sanctuary AI), 테슬라, 피규어(Figure) 및 중국의 유비테크(UBTECH)와 같은 일부 선도적인 휴머노이드 기업들은 다지형 그리퍼 기술의 내재화를 목적으로 자체 개발을 속속 추진하고 있다.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는 요소 기술의 진화
사람 손은 손가락 5개와 자유도 27개의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동안 개발되어 온 다지형 그리퍼들의 자유도는 사람 손의 자유도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 최대 10개 수준에 그쳤다. 슝크 등 선도적인 엔드 이펙터 기업들이 공개했던 다지형 그리퍼들을 보면 손가락 개수는 3~5개로 다양한 반면, 자유도는 10개 정도에 그친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유비테크의 워커(Walker) 시리즈에 장착된 로봇 손들의 자유도도 모두 7~11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 손처럼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그리퍼가 등장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휴머노이드 기업 생추어리AI가 소개한 다지형 그리퍼의 경우 자유도가 업계 최대 수준인 20개에 달한다. 자유도 20개의 다지형 그리퍼라면 악력이나 촉각 감지 기능 등이 뒷받침될 경우 사람이 사용하는 드릴, 드라이버 등 각종 도구를 무리없이 다룰 수 있는 수준이다. 사람과 도구를 공유할 정도로 고도화된 로봇 손의 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토크 센서 등 기존 엔드 이펙터에 장착되어 온 센서류에 더해 소형 비전 센서 등을 탑재해서 한결 성능을 높인 다지형 그리퍼도 개발되고 있다. 유비테크의 휴머노이드 모델인 워커에 장착된 로봇 손의 엄지 손가락 끝단에는 초소형 카메라 센서가 내장되어 있다. 손가락 끝에 달린 카메라 센서는 바늘이나 단추 구멍과 같은 초소형 물체를 인식해서 바늘을 단추에 꿰는 것과 같은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람의 손가락처럼 정교하게 촉각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류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동일한 물체라도 잡는 방향에 따라 압력 데이터가 달라지던 기존 압력 센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ETRI가 개발해서 올해 3월 공개했던 전방위 압력 감지 센서 등과 같이 물체의 특징에 맞춰 잡는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촉각 감지 센서 등이 개발되고 있다. 촉각 센서의 고도화에 따라 토마토, 딸기 등 망가지기 쉬운 물체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로봇 손의 등장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의 로봇 손 연구 지원 프로그램도 출범
지금까지 휴머노이드 개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로는 유일하게 중국만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 산학계를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휴머노이드의 핵심 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말 미국에서는 고도화된 다지형 그리퍼의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유수의 대학들이 참여한 신규 ‘엔지니어링연구센터(Engineering Research Center, ERC)’가 출범했다.
ERC는 미국 대학들의 융합 연구를 촉진하고 연구 성과의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특정 주제별로 전담 센터를 구축, 운영하는 미국 정부의 민간 연구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향후 10년간 최대 52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고 노스웨스턴대의 주도로 카네기멜론대, MIT, 텍사스 A&M대 등의 교수진까지 참여한 이 신규 ERC의 핵심 주제는 사람 손처럼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용 손이다. 연구 과제의 범위는 로봇 손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비전문가도 쉽고 빠르게 로봇 손을 작동시킬 수 있는 직관적인 HRI(human-robot Interface)와 운동 지능, 손과 눈의 동작을 일치시키는 손-눈 조정(Hand-eye coordination) 등의 유관 기술까지 포함하고 있다.
연구센터의 별칭도 ‘손작업 기반의 인간 증강’이란 의미를 가진 HAND(Human AugmentatioN via Dexterity)로 지어졌다. 설립을 주도한 노스웨스턴대의 발표에 따르면 HAND ERC는 제조, 서비스 등 각종 산업 현장이나 의료 현장에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다재다능한 로봇 손의 연구개발을 넘어 양산을 비롯한 상용화까지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지형 그리퍼를 둘러싼 경쟁 구도는 이제 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상용화를 준비하는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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