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80시간 이상 일하고 병원서 쪽잠… 이젠 정말 한계” [‘여야의정 협의체’ 난항]
신생아 ·영아 마취 숙련도 중요한데…
소아마취의 80%가 성인 마취 떠맡아
보상은 적고 소송 위험만 갈수록 커져
기피 분야 돼 ‘빅5’ 병원조차 인력 이탈
귀하게 태어난 소아 건강 최우선 가치
자부심 가지고 일할 환경 만들어져야
마취통증의학과는 대표적인 ‘인기과’다. 그러나 대학병원 마취과는 만성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5∼10년 새 통증의학과 개원으로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가 최근에는 피로 누적으로 인한 인력 유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조차 마취과가 대거 이탈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고대구로병원. 임병건 대한소아마취학회장(고대구로병원 마취통증의학과장)을 만나기 위해 그의 연구실 문을 열자 접이식 침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 밖 평화로운 거리와 달리 그의 연구실은 ‘전시’상황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공백으로 소아마취 전문인 그는 소아, 성인, 이식할 것 없이 모든 수술방을 오간다.
“제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고 있습니다. 당직 횟수가 한달에 8회 이상 돌아옵니다. (붕대감은 손가락을 가리키며) 정맥 부종 시술도 수술과 수술 사이 잠깐 짬을 내 받았습니다. 이젠 체력적으로 정말 한계입니다.”
소아, 특히 신생아·영아는 크기도 작고 성장이 덜 된 상태라 성인 마취에 비해 난이도와 위험성이 훨씬 높다. 마취 시 기도삽관과 중심정맥을 확보해야 하는데 신생아·영아는 극히 어렵다. 기도가 매우 작고 예민해 첫 삽관 시도가 실패하면 기도가 부어오르면서 마취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심정지가 마취 유도 시에 발생한다.
“모든 중증 응급 수술은 마취 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닙니다. 마취약 용량만 몸무게나 나이에 따라 줄이면 되는 게 아닙니다. 마취 전문의라도 소아, 특히 신생아와 영아의 마취는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숙련도가 중요합니다. 반면 소아마취전문의는 설문 결과 80%가 성인 마취까지 업무를 떠맡았습니다.”
사실상 소아 분야를 더 배운 것이 보상은커녕 ‘업무 과중’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다. 그 역시 1.3kg의 미숙아에 생긴 장 천공 응급 개복술에도, 이물질이 기도에 들어간 6세 아이의 기관절개술 등 소아 마취는 기본이고 중년·노년층의 모든 수술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침착하게 기피과에 대한 지원을 얘기하던 임 교수의 목소리는 딱 한번 커졌다. 최근 대학병원 마취과 전문의 부족과 관련해 논의된 의사 ‘수입’ 문제에 관해서다.
대학 밖으로 나가면 매월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데, 왜 그는 일주일에 두번씩 당직을 하며, 병원에서 쪽잠을 자는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을까.
“제가 버티고 있어야 전공의가 돌아와서도 소아마취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들고 고되도, 귀하게 태어난 소아 한명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소아마취를 하는 사람들이 희망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불가능해질까 봐 지금은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그는 또다시 당일 정해진 야간 간이식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28일 하루에만 이어진 18시간 근무. 의사이자, 교육자이자, 그리고 아버지로서, 그가 가진 무거운 사명감이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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