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80시간 이상 일하고 병원서 쪽잠… 이젠 정말 한계” [‘여야의정 협의체’ 난항]

정진수 2024. 9. 8. 19: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병건 대한소아마취학회장
신생아 ·영아 마취 숙련도 중요한데…
소아마취의 80%가 성인 마취 떠맡아
보상은 적고 소송 위험만 갈수록 커져
기피 분야 돼 ‘빅5’ 병원조차 인력 이탈
귀하게 태어난 소아 건강 최우선 가치
자부심 가지고 일할 환경 만들어져야

마취통증의학과는 대표적인 ‘인기과’다. 그러나 대학병원 마취과는 만성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5∼10년 새 통증의학과 개원으로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가 최근에는 피로 누적으로 인한 인력 유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조차 마취과가 대거 이탈하기도 했다.

소아마취는 마취과 내 심장, 이식 파트와 함께 ‘기피대상 1호’다. 응급도 많은 데다가 소아와 보호자를 함께 돌봐야 하는데, 보상은 따라오지 않고 소송 위험만 갈수록 커지는 탓이다.
임병건 대한소아마취학회장(고대구로병원 마취통증의학과장)은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저출산이라 소아 수술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미숙아 출산 등으로 인해 수술 건수는 유지되는데 소아마취 전문의는 마취통증의학과의 ‘기피분야’로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며 “소아마취과 전문의와 아닌 경우 수술에서 신생아·영아의 사망률은 차이가 난다. 귀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소아마취의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원래는 필요할 때마다 펴고, 평소에는 접어서 구석에 놔뒀는데, 지난 2월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떠난 이후엔 업무가 몰리면서 그냥 펴놓고 삽니다. 잠깐씩 쪽잠을 자는 참호랄까요.”

지난달 28일 서울 고대구로병원. 임병건 대한소아마취학회장(고대구로병원 마취통증의학과장)을 만나기 위해 그의 연구실 문을 열자 접이식 침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 밖 평화로운 거리와 달리 그의 연구실은 ‘전시’상황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공백으로 소아마취 전문인 그는 소아, 성인, 이식할 것 없이 모든 수술방을 오간다.

“제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고 있습니다. 당직 횟수가 한달에 8회 이상 돌아옵니다. (붕대감은 손가락을 가리키며) 정맥 부종 시술도 수술과 수술 사이 잠깐 짬을 내 받았습니다. 이젠 체력적으로 정말 한계입니다.”

소아, 특히 신생아·영아는 크기도 작고 성장이 덜 된 상태라 성인 마취에 비해 난이도와 위험성이 훨씬 높다. 마취 시 기도삽관과 중심정맥을 확보해야 하는데 신생아·영아는 극히 어렵다. 기도가 매우 작고 예민해 첫 삽관 시도가 실패하면 기도가 부어오르면서 마취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심정지가 마취 유도 시에 발생한다.

“모든 중증 응급 수술은 마취 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닙니다. 마취약 용량만 몸무게나 나이에 따라 줄이면 되는 게 아닙니다. 마취 전문의라도 소아, 특히 신생아와 영아의 마취는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숙련도가 중요합니다. 반면 소아마취전문의는 설문 결과 80%가 성인 마취까지 업무를 떠맡았습니다.”

사실상 소아 분야를 더 배운 것이 보상은커녕 ‘업무 과중’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다. 그 역시 1.3kg의 미숙아에 생긴 장 천공 응급 개복술에도, 이물질이 기도에 들어간 6세 아이의 기관절개술 등 소아 마취는 기본이고 중년·노년층의 모든 수술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반면 응급실에서 소아 마취전문의가 성인 수술에 들어가면, 소아 환자를 해줄 사람이 없게 된다. 마취의 수술 중간에 수술방을 비울 거라는 건 착각이다. 수술 시간이 8시간이든, 10시간이든 산소포화도와 생체활력을 살피고 상황에 따라 수술 집도의를 제지해야 한다.
“마취과 전문의 중 대학병원 근무하는 전문의 비율이 너무 낮습니다.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보수 때문이죠. 수술 전 환자 평가, 응급수술에 대한 대기(온콜) 등 업무 시간 등에 대한 추가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가 인상이 병원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가야 지원자가 생길 겁니다. 무엇보다 소아마취에 대한 숙련도와 업무 강도를 생각할 때 소아마취 전문의는 소아마취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병원의 수익만을 위해 성인 업무에 모두 투입하면 소아마취 전문의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침착하게 기피과에 대한 지원을 얘기하던 임 교수의 목소리는 딱 한번 커졌다. 최근 대학병원 마취과 전문의 부족과 관련해 논의된 의사 ‘수입’ 문제에 관해서다.

“정말 쉽게 얘기할게요. 수술이 끝나고 환자를 깨울 때 성인은 ‘환자 분 눈 떠보세요’라고 하죠. 그런데, 신생아나 1∼2살 어린이에게 이렇게 말하면 시키는 대로 눈을 뜰까요? 마취가 깰 때 기관삽관도 적절한 때 빼야 하고, 각성 섬망도 살펴야 합니다. 각성 섬망으로 애가 난리를 치면 보호자는 불안해할 수밖에 없죠. 마취 전에 부모에게 사전에 마취 과정을 세세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어린 애들은 수술방 들어가기 전에 부모와 분리되는 게 무서워 자지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애들에게 수술방을 따뜻하게 느껴지도록 토닥이고 설명해주는 것도 마취과 의사의 역할입니다.”
그가 고단함을 알면서 소아마취를 택하고, 대학병원에 남은 이유가 있다. “아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부모가 된 날, 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전공의 신분으로 마취과 전체 회식비를 쏘기도 했다.

대학 밖으로 나가면 매월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데, 왜 그는 일주일에 두번씩 당직을 하며, 병원에서 쪽잠을 자는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을까.

“제가 버티고 있어야 전공의가 돌아와서도 소아마취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들고 고되도, 귀하게 태어난 소아 한명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소아마취를 하는 사람들이 희망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불가능해질까 봐 지금은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그는 또다시 당일 정해진 야간 간이식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28일 하루에만 이어진 18시간 근무. 의사이자, 교육자이자, 그리고 아버지로서, 그가 가진 무거운 사명감이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