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이중섭의 ‘복사꽃 위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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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인연도 하늘이 내리지만, 미술 작품과의 인연 또한 하늘이 내린다.
오랫동안 미술품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수장가를 만난 것도, 그가 소유한 '복사꽃 위의 새'를 만난 것도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와의 인연은 제법 많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이중섭의 작품 '복사꽃 위의 새'에 관한 이야기이다.
'복사꽃 위의 새'는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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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인연도 하늘이 내리지만, 미술 작품과의 인연 또한 하늘이 내린다. 어떤 미술품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하고, 미술품을 수집할 때 좋은 미술품을 만나는 것도 억겁에 이르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미술품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수장가를 만난 것도, 그가 소유한 ‘복사꽃 위의 새’를 만난 것도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두고 이중섭의 작품 중 가장 좋은 것이라는 나의 평가에 함께 웃으며 와인 잔을 기울인 순간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연로했지만 정신만은 늘 젊었던 그가 한 동안 병치레를 한다는 소문만 들리더니 소문 없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인의 뜻대로 소문 없이 신선이 되었다고는 하나, 한 때 제법 많은 정을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와의 인연은 제법 많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이중섭의 작품 ‘복사꽃 위의 새’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던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2016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렸다. 예상대로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고 주최 측은 전시된 작품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묻는 행사를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선호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이중섭을 상징하는 작품으로는 ‘황소’를 꼽아왔었다.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황소’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인 ‘복사꽃 위의 새’가 단연 1등으로 뽑혔다. 관계자들은 세대 간의 미에 대한 감각의 차이에서 온 의외의 결과에 매우 놀라워했다. 이러한 결과를 듣는 순간 내심 흐뭇했다. 이 작품의 주인과 만날 때마다 이중섭의 작품 중 가장 서정성이 뛰어나고 구성도 제일 훌륭한 작품이라 역설하던 일이 생각나서이다. 결과가 언론에 나오자, 즐거운 전화 한통을 받았다. 결과를 알게 된 소장자가 필자를 초대한 것이었다. 자주 만나며 했던 몇 마디 말 때문에 모처럼 거한 대접을 받았다. 그날 지난 날 있었던 말들을 되새기며 즐거운 수다로 밤을 지새웠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흐뭇했다.
‘복사꽃 위의 새’는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벚꽃 피는 봄날의 정경 중에서 한 장면을 포착해 그렸다. 흐드러지게 핀 꽃 한 가지에 새 한 마리가 내려앉자 꽃송이가 눈처럼 떨어져 내린다. 새는 내려 앉아 한 쪽에 앉아 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노려본다. 서로 바라보는 품새가 긴장감이 역력하다. 두 생명체의 긴장감에 꽃을 찾았던 벌 한 마리는 깜짝 놀라 화면 밖으로 막 도망가려는 참이다. 이 뒤의 일은 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 개구리인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견디고 있어야 하는 개구리의 속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가고 있을까?
무위자연의 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의 일도 이와 같다. 그림 속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새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본심은 개구리일 것이다. 예술가는 정서적으로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로 약자 편에 선다. 세상은 강한 자의 것이지만, 예술 세계는 약한 자들의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보고 있는데 그림 속에서 이 작품 주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 미술계가 많은 빚을 진 이인데, 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하나 없으니 마음 슬프기 그지없다. 지면으로나마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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