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집은 제외된 소규모주택정비법…“법적 근거 마련을”

정지윤 기자 2024. 9. 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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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빈집 팬데믹 <2> 빈집 정비 하세월

- 빈집 날로 번지는 서구 초장동
- 취약계층 사는 쪽방촌으로 변해
- 재개발 노린 외지인만 집 매입

- 주민 빈집 정비 요구 빗발에도
- 행정당국 법적근거 없어 손 놓아
- 실태조사에도 무허가 집은 빠져

빈집은 부산 서구 초장동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파고들었다. 이제는 그나마 정주 여건이 괜찮았던 도심지 인근까지 확산해 지역 주민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누구나 빈집 문제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빈집 정책과 실제 현실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 특히 빈집을 정비할 수 있는 근거인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에 무허가 주택을 빈집으로 인정하지 않아 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행정 일선에서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요구가 잇따른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서구 초장동의 빈집 전수조사를 위해 일주일 동안 모든 골목을 누비며 단독주택 2181세대를 일일이 점검했다. 사진은 지붕과 담벼락이 내려앉거나 쓰레기가 널려 있는 초장동 빈집들. 정지윤 기자


▮ 빈집 퍼져도 정비는 하세월

8일 지역주민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 초장동에 새로 들어오는 이는 주로 취약계층 아니면 재개발 호재를 노린 외지인이 집만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성매매 종사자가 거주하던 공동 주방, 화장실 형태의 숙소는 오늘날 취약계층이 사는 거대한 쪽방촌으로 변했다.

박인순(64) 11통장은 “동네에 젊은 사람이 와야 활기가 돌 텐데 주차장 없고 웃풍 심한데 누가 들어와 살겠나. 옛날 성매매 업소로 쓰던 쪽방에 들어오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의 대부분이다”며 “부동산 거래는 활발한데 재개발 소식 듣고 집 사는 외지인이라 유리창이 깨지고 집이 무너져도 연락조차 힘들어 동네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원도심권의 빈집은 1970~1980년 무허가 주택 소유주가 “같이 집 지어 살자”며 세입자를 구해 전세금으로 집을 새로 짓거나 2층을 올리는 일도 흔했다. 초장동 토박이인 서정숙(70) 5통장은 “16평(약 53㎡) 크기에 재래식 주방, 작은 방 3개가 딸린 구조였는데 뒤에는 세주는 집이 있었다. 애 셋을 낳고 키우니 집이 좁아져 2층으로 올렸다”며 “그때는 집마다 애가 많아서 골목 시끄럽다고 혼도 많이 냈는데 이제는 애들 웃음소리가 참 귀하다”고 말했다.

빈집은 원도심을 잠식해가지만 정비는 하세월이다. 이도희(53) 12통장은 “빈집 부엌 자리에 오동나무가 뚫고 자라 옆집 지붕을 덮칠 지경인데 구청은 ‘사유재산이라 손 못 댄다’는 답만 수년째 하고 있다”며 “빈집도 없애고 그 자리에 텃밭이나 공원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도 ‘무허가라 안 된다’, ‘소유주가 동의를 안 해준다’, ‘소유주를 못 찾는다’고 안 되는 이유만 늘어놓고 있으니 울화통이 치민다”고 말했다.

▮ “무허가도 빈집 인정을”

무허가 주택은 빈집 정비를 더디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이날 부산시 등에 따르면 시가 한국부동산원과 함께 추진하는 빈집 실태조사에 무허가 주택은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자체 조사에 따르면 동구(60%) 영도구(45%) 등에는 두 집 중 한 집은 무허가 빈집인데, 이 내용이 누락되는 셈이다. 현장에서 ‘반쪽짜리 조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산형 빈집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5년 마다 진행되는 빈집 실태 조사는 부산 빈집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쓰인다.

무허가 주택이 조사 대상에서 빠진 건 상위법인 소규모주택정비법상 빈집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법에는 빈집을 ‘1년 이상 비워진 집’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시행령에는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건물은 빈집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허가 주택은 실태조사·정비계획의 수립 대상에서 제외돼 원칙적으로 철거·정비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현장 공무원은 고충을 토로하며 행정을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A구 관계자는 “무허가 주택 방치를 호소하는 민원이 워낙 많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으니 징계를 각오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행정소송으로 패소할 위험부담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B구 관계자는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는데 민원은 몰려들어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최악의 기피부서다. 현실을 반영해 무허가 주택도 빈집에 포함되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달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도 원도심 급경사지 빈집의 신속한 철거가 빈집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대 우신구(건축학과) 교수는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 형태인 빈집은 주거 환경이 열악해 정비해도 활용이 힘들고 현실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빈집은 극소수다”며 “국유지 위의 무허가 빈집을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행정 집행력을 높이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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