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몸짓·창작…마음과 정신으로도 암과 싸우다
- 확산되는 사회적 예술치유활동
- 195개국 6000개 시설서 시행
- 부산문화재단이 기획·예산투입
- 예술가는 내용 짜서 실행하고
- 병원은 그 필요성 공감해 도입
- 좋은부산요양병원 참여 강사들
- 과거 본인도 암과 싸웠던 전력
- “환자 심신 고려해 프로그램 기획”
- 다움병원 정신재활서비스 제공
- 마음의 문 연 환자들 소통·교감
호스피털 아트(Hospital Art·병원예술) 취재를 하기 위해 지난 2일 오전 10시 부산 사상구 학장동 좋은부산요양병원에 찾아갔다. 그 현장은 무척 인상 깊었다.
좋은부산요양병원 박미점 간호과장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주로 우리 병원 암병동에 입원한 회복기 암 환자”라고 소개했다. 모두 20회 일정의 매주 프로그램으로 이날은 8회차였다. 예닐곱 명 환자가 자기 몸 상태에 따라 들기도 하고 나기도 하면서 예술가들이 펼치는 예술 치유 활동에 참여했는데, 대체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 프로그램은 부산문화재단이 시행하는 ‘2024 사회적 예술치유 프로젝트’의 하나로 이름이 ‘마음을 담다-안녕 희망 씨’이다.
좋은부산요양병원에서 펼쳐지는 ‘마음을 담다-안녕 희망 씨’ 기획·진행은 김옥련발레단이 맡고 있다. 구성원은 춤을 매개로 문화예술교육을 오랜 세월 하고 있는 발레인 김옥련 씨, 마임이스트·연극배우로 몸을 잘 알고 관객을 이끄는 힘이 탁월한 방도용 씨, 표현예술치료 전문가 서혜인 씨, 부산의 비중이 높은 대중음악가 전현미(현미밴드 음악감독) 씨다.
▮좋은부산요양병원
눈여겨볼 점이 있었다. 방도용 마임이스트를 제외한 강사 세 사람은 모두 암을 앓은 적이 있다. 부산대 무용학과 84학번인 서혜인 씨는 암이 거쳐 간 지 좀 오래됐는데, 김옥련 전현미 씨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강사가 수강생(환자)를 정말 잘 이해하겠다는 생각부터 당장 들었다. 김옥련 대표는 “그렇다. 프로그램을 짤 때, 경험이 있는 우리는 수강생의 몸과 마음 상태를 아주 진지하게 고려한다”고 답했다.
박미점 간호과장은 “암 환자들께 투약·주사·치료 말고 마음·정신 측면에서도 도움 되는 과정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병원이 직접 이런 일을 기획하려면 한계가 많다. ‘안녕 희망 씨’는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병원 재단 내 다른 병원도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 권세진 주임(사회복지사)은 “예술·문화·신체 프로그램을 병원 현장에 도입한 지는 꽤 됐다. 저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정보를 제공하고 참여인을 모으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체계 있는 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문화재단은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예산을 투입하며, 예술가들은 내용을 짜서 실행하고, 병원은 필요성을 공감해 도입하고, 환자는 참여해 치유를 체험한다.
▮부산문화재단
호스피털 아트는 최근 부산문화재단이 집중하는 사회참여예술의 한 갈래이다. 재단이 제공한 자료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호스피털 아트는 1975년 전 세계 병원에서 시작된 예술 프로젝트로, 1984년 미국에 재단(The Foundation for Hospital Art)이 설립됐다. 현재 195개국 6000개 이상 병원·양로원에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음악·연극·춤·전시·워크숍 등 내용은 다양하다.
부산문화재단은 최근 좋은부산요양병원, 정신건강 부문의 낮병원(정신질환으로 사회·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위해 낮 동안 정신재활서비스를 제공함)을 운영하는 부산 금정구 두구동 다움병원과 업무 협약을 맺고 호스피털 아트 활성화에 힘쓴다.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이사는 “병원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 건강상 문제로 제약받는 환자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일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다움병원
지난 6일 오후 1시30분, 다움병원으로 갔다. 여기서도 부산문화재단의 ‘마음을 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은 분위기가 또 달랐다. 다움병원은 낮병원을 운영한다. 정신질환이 현재 있지만, 집에서 병원에 다니면서 여러 치유 과정을 밟을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이들이 출·퇴근하는 느낌으로 정신재활서비스를 받는 방식이 낮병원이다. 큰 방에 들어서니, 프로그램 참여인과 봉사자 등 30여 명이 예술 강사 이화진(갤러리 후아 대표) 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 채 뭔가 자르고 그리고 만들었다.
이날 이화진 대표는 화면에 에메랄드 사진을 먼저 띄웠다. “에메랄드는 재생과 성장을 상징하는 보석이라고 해요. 오늘 주제는 재생과 성장입니다.” 수강생은 내 인생 첫 숟가락, 지금 쓰는 숟가락, 내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쓸 숟가락을 그리고 오렸다. 이화진 대표는 그 의미를 정겹게 설명하며 “지난번에 청화백자에 그림을 그린 적이 있죠. 그때처럼 이 가운데 일부는 실제 공예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안내했다. 이어 병원의 널찍하고 푸른 뜰로 모두 나가 꽃을 심고 물을 주며 식물 채집도 했다. 창작하고, 자연 속에서 놀았다.
금속공예 작가인 이화진 대표가 수강생에게 들려준 말도 인상 깊었다. “여러분! 저도 강박증·망상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어요. 불안을 못 이겨 하루에만 교통사고를 세 번 겪은 날도 있었죠. 그런데 철마의 자연 속에서 함께 활동하며 이겨냈답니다.”
다움병원 박경덕 회복지원부 1부장(정신건강간호사)과 이화진 대표는 이렇게 입을 모았다. “6주차인데, 처음엔 수강생이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 건드리지 마!’하는 표정들이었다. 지금은 굉장히 분위기가 좋다. 먼저 다가와 안부를 챙기고, 아까 보셨듯이 수업 마치고 활발하게 소감을 발표한다. 효과를 피부로 느낀다.” 박경덕 부장은 “지난 오랜 세월 금속공예가 진영섭 선생과 진행해 온 정신과 영역의 예술 치유 프로그램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언급했다.
▮파크사이드 재활의학병원
지난 7일 오전 10시, 발걸음을 부산 남구 대연동 파크사이드 재활의학병원으로 옮겼다. 이 병원 호스피털 아트도 김옥련발레단이 운영하는데, 앞서 소개한 ‘마음을 담다’ 프로그램은 아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Re 봄 프로젝트’이다. 김옥련 대표는 “부산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분류가 다소 달라도, 그 내용이 병원예술(호스피털 아트)인 건 분명했다. 김옥련 서혜인 방도용 씨와 함게 중진 한국무용가 유은주 씨도 강사로 참여한다.
파크사이드 재활의학병원 박인선 병원장은 내내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 재활병원은 뇌졸중 환자가 많다. 여러 방식으로 치료를 제공하는데, 예술치료는 또 다른 차원에서 좋은 자극을 환자에게 준다. 아까 프로그램 시간에 제가 특별히 뒤에 앉아 돌본 환자분은 약 2년 동안 거동이 극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지고 좋아져 많은 분이 놀란다“고 설명했다.
박인선 병원장이 김옥련 대표와 인연을 맺은 사연이 재미있었다. 박 병원장은 “예술·문화 기반 치유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환자가 좋아진다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날 김옥련발레단 사무실이 보여 무작정 올라갔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오래 함께한다”고 떠올렸다. 호스피털 아트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그곳은 예술가도 치유되는 현장이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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