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섬뜩한 `로봇전쟁` 시대, 인류는 자멸할 것인가

박영서 2024. 9. 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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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우크라이나가 전장에 로봇을 투입했다. 네발로 움직이는 로봇 개 '배드 원'(BAD one)이다. 최대 5시간 동안 시속 10㎞ 속도로 일반 무인항공기가 접근하기 힘든 곳을 탐색할 수 있다. 고화질 영상 카메라가 탑재돼 러시아군을 감시한다. 열화상 센서를 사용해 지뢰 같은 폭발 장치도 탐지하고, 탄약이나 의약품을 운반하는 수송병 역할도 가능하다.

게다가 소총이나 화염방사기를 탑재하면 공격용 무기가 된다. 러시아군에 포획되면 운영자가 비상 스위치를 통해 모든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다. 중국 로봇 전문기업이 만든 모델을 바탕으로 영국이 공급한 무기다.

로봇 개는 동물 개처럼 먹이를 줄 필요도 없고, 늙어서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가성비가 좋아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장에 로봇개를 투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상군 전투 지원용 무인지상로봇 '퓨리'(Fury)도 최전선에 배치해 운용 중이다. 기관총이 장착된 작은 탱크 모양의 이 로봇은 보병과 정찰병에게 화력 지원을 해준다. 4개의 바퀴로 이동하는데 최대 주행거리는 20㎞이다. 한 번 충전하면 사흘간 자율주행하며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작은 포탄과 총알을 막아낼 수 있는 4등급 방호 장갑 기능도 적용됐다. 낮은 물론 밤에도 시야가 좋으며 자동 사격 통제도 된다.

러시아군 역시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과 접목된 자율비행 드론이다. 공중 감시와 공격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드론도 로봇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전쟁터 참호 속의 병사가 로봇을 조종하면서 모니터를 통해 전투 상황을 지켜보는 장면은 더 이상 공상과학(SF)책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전쟁터 최전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듯 '로봇 전쟁'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인간(군인)이 수행했던 위험하고, 더럽고, 지루한 전쟁을 대체하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다. 로봇은 탱크나 전투기보다 저렴하고 개발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갈수록 확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전쟁의 규칙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쟁의 흐름도 바꾼다. 각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인 무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AI 기술이 결합되면서 기술 발전은 탄력을 받고 있다. 다양한 '자율' 또는 로봇 전투장비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추세다. AI가 조종하는 전투기, 잠수함, 탱크도 등장했다. AI가 다양한 형태로 전쟁의 모든 측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은 이 분야의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무인 무기 개발·생산에 구조적 우위를 자랑한다.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한 데이터가 방대하고, 재능 있는 알고리즘 엔지니어들이 풍부하다.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AI 무기 개발 속도가 미국을 따라잡을 기세다.

그러나 '인간 전쟁'에 뛰어든 로봇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AI 기술의 무기화' 경쟁을 촉발할 것이고, 이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 무기의 발전은 군인들이 죽거나 다칠 것을 두려워 전쟁을 벌이기를 주저했던 기존의 태도를 바꿔버릴 것이다. 전쟁은 빈번해지고 대규모 살상은 불가피하다.

만에 하나, AI가 생물학적 무기와 접목되거나 테러에 사용되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첨단 AI가 인간을 통제하기에 이르면 인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이를 보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종말론적 세계가 가까이에 있는 듯 하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장점과 단점이 있다. 1940년대 오펜하이머와 동료들이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를 중단하면 진보는 멈출 것이다. '킬러 로봇'으로 상징되는 AI 무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AI가 평화적으로 쓰인다면야 문제는 없다. 하지만 무기와 결합되어 인간을 죽이는 쪽으로 악용된다면 당연히 제어해야 한다. 새로운 숙제 하나가 던져졌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른손에는 과학의 정신을, 왼손에는 윤리의식을 들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인류가 자멸을 피하는 길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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