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접수 시작하는데 “25·26년 증원 백지화”...의-정 협의 ‘막막’
정부 “합리적인 통일된 안” 전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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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이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를 마련하자고 했지만, 의-정 간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장 9일부터 2025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원서 접수가 시작되어 정원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의사단체는 내년도 증원분을 ‘원점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선 여당의 협의체 제안과 정부의 수용이 “면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8일 대학별 신입생 모집요강 등을 종합하면, 2025학년도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9일부터 13일까지 이뤄진다. 내년도 의과대학 신입생의 정원 내 선발 규모는 4565명이고, 이 가운데 68%인 3089명을 수시 모집으로 뽑는다. 교육부 등은 지난 5월30일 의대 정원 증원분을 포함해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주요사항’을 공개했다. 확정된 계획에 따라 일부 대학은 지난 7월 정원 외 선발인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통한 의대 신입생 선발을 시작했다. 이처럼 입시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정원은 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했다. 여기엔 “의료계가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정부가 여당의 협의체 제안에 선을 그었다가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증원에 있어선 그간 입장과 달라진 바는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의료 인력 수급이 가격 흥정하듯이 정할 문제가 아니다. 의대 증원 숫자를 논의하려면 의료계에서 합리적이고 통일된 안을 제시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제 조건’을 강조하는 배경엔, 지금까지 내세워온 의대 증원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대통령실과 정부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응급의료 위기는 의사수 부족이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를 바로 잡으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했는데 이제와서 백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의대 증원을 무조건 유예하거나 백지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파서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메스를 대니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지 않냐”고 했다.
의사단체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2025,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백지화해야 하고, 논의는 2027학년도 정원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2025학년도 증원을 중단하지 않으면 내년에 불어난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방법이 없고, 또 수천명이 휴학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2026학년도 원래 정원(3058명)도 제대로 못 뽑을 가능성이 많다”며 “과학적 검토를 거쳐 정원을 논의해볼 수 있는 시기는 빨라야 2027년”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사회는 “2025년도 의대증원 강행의 즉각적인 중단이 대화의 선행조건이고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도 “2025년 입학정원 재검토가 없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를 요구해온 전공의(인턴·레지던트)와 의대생 단체는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부 전공의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한 사직 전공의는 한겨레에 “어떤 식으로든 실마리를 찾아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공의들도 협상 테이블에 나가보고, 이야기가 안 되면 다시 현재 노선을 유지하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협의체 구성조차 어려울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은 “의료계도 직역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협상 대표로 나올 구심점이 없다”며 “전공의 대표가 테이블에 앉더라도, 다른 전공의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도 “전공의들 간의 다른 입장을 조율하면서 끌고 갈수 있는 지도부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정치권 논의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미 입시 요강이 다 나온 상황에서 여야 아무도 의료계에 어떤 약속을 할 수 없다. 정부가 현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도 없으면서 여당의 협의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면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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