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가만히 있는 것이 능사 아냐"… 의료계 협상 촉구
외과 학술대회 참가한 전공의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지만
의료계 단일안으로 압박 필요"
9일 대입수시모집 시작인데
의협, 25·26년 백지화 요구만
대통령실 "제안 현실성 없다"
교육계 "철회땐 입시 대혼란"
여야는 협의체 구성 논의 착수
"지금도 빨리 돌아가서 다시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평생 바이털에서 몸 바쳐 일하고 싶은데 손이 굳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선배 의사들이 이 부분을 더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8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 참여한 외과 3년 차 사직 전공의는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한 특별세션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가만히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의료계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또 다른 외과 사직 전공의는 "과학적 입증 책임을 포함해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면서도 "(여야의정 대화 협의체는)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정부를 압박할 계기가 될 수 있는데 의료계에서 이런 기회를 너무 피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전공의 사이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응급실 위기 사태로 정부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대화에 임하는 것이 의료계에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대한의학회 부회장)는 전공의들의 지적에 대해 "의료계가 여러 지표와 자료를 더 많이 발표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공개적으로 대화 참여론을 제기했음에도 대한의사협회는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2025·2026학년도 의대 증원까지 백지화할 것을 요구했다. 오히려 조건을 더한 것이다. 이날 의협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의대 정원을 급하게 늘리는 것은 문제"라며 "정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2027년이나 그 이후부터 증원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25년 의대 정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게 불가한 이유와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교육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강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지금이라도 다시 고려하는 게 합당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025년 입학 정원은 재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이번주에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되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등은 전국 의대 39곳을 포함해 일반대 190여 곳이 예정대로 9일부터 수시 원서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수시모집은 지난 5월 교육부 고시에 따라 증원된 의대 정원에 맞춰 진행된다. 교육계에서는 만에 하나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건드리면 유례없는 '입시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입시전문가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시점"이라고 단언하며 "이미 수시가 시작되는 판국인데 정원이 변화되면 추후 정시에서 뽑을 수 있는 인원이 크게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정시를 노렸던 수험생과 학부모는 갈 곳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실무 논의에 착수했다. 하지만 협의체가 만들어지더라도 의료계가 참여를 거부하고 있어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기에는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논의를 시작했다. 9일 국회의장과 양당 원내대표도 회동을 하고 협의체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협의체에서 여야와 정부 간에 실제 논의가 진척되기까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협의체 구성에 앞서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책임자 경질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의협 제안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당장 9일부터 2025년도 대학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돼 수험생과 학부모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대신 의료계 관계자들이 '조건 없는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우선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대화의 장에 나와 달라. 거기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 / 이용익 기자 /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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