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기 연구소 올 205곳 문닫아···지방선 특허출원 두자릿수 급감

노현섭 기자 2024. 9. 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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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판 닫히는 中企···침체 탓 R&D 포기 잇따라
대기업 반도체·2차전지 공략할때
자금난 중기, 저비용 R&D만 집중
외풍에 취약···불황 덮치면 줄타격
거액 제시해도 인력확보 자체 불가
정부 지식재산·사업화 지원 절실
[서울경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연구개발(R&D)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장기 불황에 기존 연구 인력 존속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사실상 R&D 활동 자체가 멈춘 상태인 것이죠. 당장 살아남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비용 감축 차원에서 연구소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소재 제조 중소기업 A사 대표)

경기 침체에 중소기업 기술 경쟁력의 산실인 기업 연구소의 불이 꺼지고 있다. 당장 기업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R&D 투자가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기술 개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랜 R&D 기간과 막대한 투자금으로 신규 진입이 어려운 첨단산업 분야와 지방 중소기업 연구소의 이탈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8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연구소 수는 4만 1512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연구소 수가 4만 1717개인 점을 고려하면 6개월 만에 205개의 연구소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에도 전년(4만 2525개) 대비 808개의 연구소가 문을 닫는 등 기업 기술 경쟁력의 산실인 기업 연구소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 신규 인정 건수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기업 부설 연구소 인정 관리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 중인 산기협에 따르면 2020년 6614개의 연구소가 새로 인정됐지만 2021년 6407개로 줄어들었고 2022년에는 6000선이 무너지며 5545개만 인정됐다. 지난해에는 5017개를 기록하며 이제 5000개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문을 닫는 연구소가 늘어나는 반면 새로 설립되는 연구소는 줄면서 중소기업 연구소 전체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시장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악화하고 있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산기협 관계자는 “그간 기업의 기술 개발 의지와 정부의 R&D 지원으로 기업 부설 연구소의 양적 증가가 컸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경제 불확실성 장기화에 따라 중소기업 R&D가 경영 악화 등으로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 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기업 연구소 감소는 특히 투자 비용이 대거 투입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출원인 유형별 특허 기술 분포에서 전자기계·에너지, 반도체, 컴퓨터 기술, 디지털 통신, 2차전지 분야의 대기업 출원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실제 2차전지의 경우 대기업은 지난해 5504개, 올해 상반기에만 2757개의 특허를 출원하며 이 분야를 주도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지난해 1130개, 올해 상반기 447개에 그쳤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전자상거래, 토목공학, 식료품, 환경 기술 분야의 특허출원 비중이 증가했다.

임소진 지식재산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은 상위 기술인 전자기계·에너지, 반도체, 2차전지 등의 R&D 비중을 더욱 높이면서 중소기업과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면서 “반면 중소기업은 상위 기술보다 전자상거래·식료품 등 상대적으로 R&D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중소기업이 집중하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빠른 R&D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경기 변동에 민감한 분야라 경기 불황 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R&D 성과인 특허출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 중소기업들의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지식재산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17개 지역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출원된 특허 비중이 67.7%로 전년 동기(66.3%)보다 증가하는 등 수도권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역별 특허출원 증가율을 보면 서울은 5.5% 증가한 반면 충남(-17.6%), 전남(-11.8%), 경남(-13.4%) 등에서는 줄었다.

경남의 중소 정보기술(IT) 업체인 B사 대표는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을 위해 유능한 R&D 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 같은 지방 중소기업은 아무리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 해도 인력 확보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당초 연구소를 신설하려 했지만 연구 인력 확보가 1년 넘게 중단되면서 연구소 설립 계획을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지식재산 확보는 물론 이를 빠르게 사업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상황 악화에 중소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R&D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고 당분간 이런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면서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방법은 결국 R&D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중소기업의 생존력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기 침체기 상황일수록 정부의 과감한 기업 R&D 지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섭 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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