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보다 '몸값 비싼' 한국 CEO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韓대기업, CEO 등장도 찾기 힘들어
투자자 회피, '코리아 디스카운트' 불러
엔비디아가 경이적인 랠리를 보이기 전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던 기업이 있다. ‘엔비디아의 라이벌’로 불리는 AMD다. 2015년 7월 1.61달러에 불과했던 AMD 주가는 2021년 말 150달러를 넘어섰고 올 3월에는 200달러를 돌파했다. AMD 시가총액이 인텔의 1%에 불과해 “인텔이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AMD를 살려놓는다”는 조롱까지 나왔던 2015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비록 최근 주가가 하락하고 있으나 현시점 실리콘밸리 ‘슈퍼스타’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시 그 자리는 AMD의 구원자 리사 수 CEO의 것이었다. AMD가 ‘라이젠’ 중앙처리장치(CPU)를 내놓고 본격적인 부활의 시작을 알리던 2017년 초 AMD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청취한 적이 있다. 미국 기업 콘퍼런스콜을 라이브로 들은 것은 처음인 데다 당시에는 번역 기능도 변변치 않아 잔뜩 긴장한 상태로 콘퍼런스콜에 입장했다.
귀를 의심했다. 당연히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진행할 것으로 예상했던 콘퍼런스콜에서 수 CEO가 직접 질의응답을 나누고 있어서다. 국내 대기업 콘퍼런스콜을 수도 없이 청취했으나 CEO가 직접 나오는 일은 드물었기에 특별한 발표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 수 CEO는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당당하게 응수하며 청사진을 설파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는 그의 태도에서 AMD의 밝은 미래를 봤다.
이후 수많은 미국 기업의 실적 발표를 챙기며 그때 느꼈던 ‘신선함’은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CEO가 콘퍼런스콜을 주재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알게 된 것이다. 외려 CEO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일론 머스크도, 젠슨 황도, 마크 저커버그도 매번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투자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한다. 실적이 나쁘고 주가가 부진하면 공격적인 질문이 쏟아지지만 그들은 ‘고객사’ 앞의 ‘영업맨’이라도 된 듯 성심성의껏 답변한다. 주가 하락과 향후 실적에 대한 비판을 영업 현장의 열기로 바꿔놓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이 천문학적 부를 쌓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머스크가, 젠슨 황이, 저커버그가 돈이 없어 기업설명회(IR) 현장에 설까. 이들은 투자자 마음을 잃으면 경질을 걱정해야 할 ‘월급쟁이 대표’가 아닌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다. 한국에 대입하면 ‘재벌 1세’가 매 분기 2시간씩 공개적으로 투자자 질의응답을 받는 셈이다. 상장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주주와의 소통이 CEO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는 점을 잊지 않을 뿐이다. 기업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고 기업 비전을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부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회사의 가장 적극적인 옹호자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창업자는커녕 CEO가 등장하는 콘퍼런스콜도 찾아보기 힘들다. 취재해본 국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CEO가 콘퍼런스콜을 진행하던 곳은 과거 넥슨뿐이었다. 넥슨 본사가 일본에 상장돼 있고 당시 CEO가 미국인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국내 대기업 중 CEO가 콘퍼런스콜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시장경제의 첨병에 서 있는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너 혹은 CEO가 투자자와의 소통을 회피하는 태도의 뿌리에는 기업의 주인이 ‘주주’가 아닌 ‘오너’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주주 이익에 반하는 분할 상장과 합병을 거리낌 없이 추진하는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을 신뢰할 투자자는 없다. 요즘 들어 부쩍 “국장(국내시장)에 투자하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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