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것’ 두려웠다”...반도체 제국 인텔, 벼랑 끝 몰린 이유 있다는데 [위클리 반도체]
[성승훈 기자의 위클리반도체 - 9월 첫째주]
반도체 제국으로 불렸던 인텔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직원 1만5000명 구조조정에 나선 데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할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죠. 2021년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TSMC와 삼성전자를 잡겠다”며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입니다.
한때는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인텔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이제는 이름만 남은 일본 반도체기업 전철을 밟게 될까요. 최근에는 삼성전자 위기론도 불거지고 있는데요. 이번주 위클리반도체에서는 반도체기업 몰락사를 짚어보겠습니다.
다만 겔싱어 CEO가 파운드리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매각보단 사업 확장 계획을 보류하는 방안을 먼저 내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매각 대상에 오른 사업은 파운드리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프로그래머블 통신칩 부문(programmable chip unit)’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독일 공장 건립도 멈춰 설 수 있습니다. 당초 인텔은 300억유로(약 44조4000억원)를 투입해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는데요. 업계에선 인텔이 독일 공장 건설을 완전히 중단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죠.
인텔은 자본 지출도 대폭 줄이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7% 적은 215억달러(약 28조8600억원)를 지출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인텔이 몰락을 맞게 된 배경으로는 △지나친 비용 절감 △관료주의적 기업문화가 꼽힙니다.
엔지니어링보다 재무에만 신경 쓰며 기술 경쟁력이 뒤처지게 된 것이죠. 2년마다 반도체 성능이 2배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인텔에서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러나 인텔은 2010년대부터 기술인재를 대거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선 좋은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텔 기술 경쟁력에는 독이 된 셈이죠. 지난 5일에는 로이터통신이 “인텔이 브로드컴 반도체 제조 테스트에서 실패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인텔의 1.8나노 공정으로는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기 어렵다는 뜻이었죠.
제국의 병폐 중 하나는 관료주의입니다. 최근 인텔 이사회를 떠난 립부 탄이 쓴소리를 남겼는데요. 탄은 “인텔은 위험회피적이고 관료주의적 문화에 빠져있다”며 “비대해진 인력 구조, 위험회피적 문화, 뒤떨어진 인공지능(AI) 전략에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3차례에 걸친 반도체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은 한국·대만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생산원가를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자국 시장에서도 미국 반도체기업 점유율을 20%까지 높여야 했기 때문이죠.
반면교사로 살펴볼 사례는 도시바입니다. 지난해 12월에 도시바는 도쿄 증시에 상장된 지 74년 만에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어요. 일본 반도체산업 상징이었던 도시바의 쓸쓸한 퇴장이었죠. 도시바는 반도체업계에서도 굵직한 흔적을 남겼던 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초 4Kb CMOS RAM 개발(1977년) △세계 최초 NOR형 메모리 개발(1980년) △세계 최초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1986년) 등 세계 최초 타이틀도 여럿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바는 원자력발전 사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심 차게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며 모든 게 달라졌던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며 도시바의 원전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죠. 2015년에는 회계 부정 사건이 터지면서 기업 신뢰도는 땅바닥을 쳤습니다.
이제는 도시바 반도체라는 이름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반도체 사업 부문은 2018년에 분리 매각돼 키옥시아로 이름이 바뀌었거든요. 키옥시아는 한·미·일이 참여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이 인수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4조원을 투자했죠.
최근에는 삼성전자 위기론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을 맡게 됐습니다. 전 부회장이 DS부문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사내에서도 고삐를 죄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 부회장이 냈던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흑자를 내고는 있지만 위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읽힙니다. 전 부회장은 “2024년 2분기는 매출·이익 측면에서 크게 개선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도 “근본적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어요.
삼성전자 실적이 좋아졌지만 ‘경쟁력’까지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는 거죠. 전 부회장은 “근원적 경쟁력 회복이라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했다”며 “시황에 의존하면 작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해결 과제로는 관료주의적 기업문화 타파를 내세웠죠. 소통의 벽을 허물고, 문제를 회피하는 문화를 개선하자는 겁니다. 위험회피적 문화와 관료주의로 인해 서서히 침몰했던 인텔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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