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기후붕괴 [한겨레 프리즘]
박기용 | 지구환경팀장
최근엔 여러 언론이 흔히 ‘기후위기’로 쓰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잘 쓰지 않았던 표현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환경 서약’을 하며 ‘기후변화’란 용어를 기후위기나 기후붕괴, 기후비상사태로 바꾸겠다고 밝힌 것이 5년 전인 2019년 5월이다. 한겨레가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변화팀’을 만든 건 그로부터 1년 뒤인 2020년 4월이었고, 이때부터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를 혼용해왔다. 한데 주간지 한겨레21은 올해 초부터 ‘기후붕괴’로 쓰고 있다. ‘위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해 9월 성명에서 “기후붕괴가 시작됐다”고 했다. 변화에서 위기로, 다시 붕괴로 간다.
‘기후위기’가 관련 법에 등장하는 공식 용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제정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대신해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의 정식 명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다. 법 2조에서 용어 설명을 해놨는데,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를 구분 지었다. 기후위기는 “기후변화가 물과 식량의 부족, 해양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같은 인류 문명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한 상태”를 말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은 회복할 수 없다는, 과학에 기반을 둔 사실을 법에 명문으로 규정해놨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사법부가 처음으로 이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인정했다는 것에 주된 의미가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지구의 온도 상승 수준이 어떤 임계점에 다다르면, 기후변화가 갑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거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은 배출된 이후 회복할 수 없다는 ‘불가역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언급해놨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의 원인을 줄여 이를 완화하거나 그 결과에 적응하는 조치를 하는 국가의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의 의무도 여기(국가의 의무)에 포함된다”고 했다. ‘기후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며, ‘기후변화 대응이 곧 국가의 의무’라는 취지의 표현들이 한국의 판례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헌재가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이 청소년 등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논리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단지 2031년에서 2049년에 이르는 시기의 감축 목표가 없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헌재는 “국가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이행을 위해 여러 시책을 시행한다면, 실제로 온실가스의 양이 그만큼 줄어야 의미가 있고 실효성이 있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목표가 정량적으로 계획되고 그 이행이 관리되어야 하며, (그 과정의 실효성이) 법률을 통해 확보돼야 한다”고 봤다.
목표가 정량으로 설정돼 있지 않으면 감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관련한 대책의 관리나 개선도 어렵다. 당연하지 않나. 이건 개인이나 단체, 기업도 으레 하는 일이다. 하물며 인류 전체의 절멸이 달린 기후위기 문제이니 오죽할까. 게다가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이 목표에 딸린 연도별 계획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2009년에 정한 2020년 목표가 5억4300만톤이었지만, 이듬해인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배출량은 하염없이 늘어갔다. 가장 최신 통계인 2022년 잠정치가 6억5450만톤으로, 아직도 2020년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지키지 못할 2020년 목표를 그냥 폐지해버리고 2030년 목표를 이보다 700만톤 낮춘 5억3600만톤으로 설정했다. 이를 두고 이번 기후소송의 변호인들은 4년 전 소 제기 청구서에서 “국민의 생명과 환경권과 관련한 ‘10년의 시간’을 소멸시켜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정을 받아내는 데 또 4년이란 시간을 썼다. 변화에서 위기로, 다시 붕괴로 가는 이 상황을 되돌릴 시간은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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