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를 품은 이곳에서, 미래를 보았네
이집트 현지 가보니
이집트의 과거
17만㎡ 대이집트 박물관
유물 10만점 이상 보유
단일 문명으론 최대 규모
이집트의 미래
지중해 품은 알렉산드리아
고대부터 문명 교차하던 곳
전세계 역사 허브로 탈바꿈
인간사란 언제나 시행착오로 가득 차 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필연적인 경험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피라미드도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파라오 스네프루는 그의 피라미드 경사각을 50도 안팎에서 40도 정도로 조정하기로 결정한다. 공사 도중 갑작스레 무너진 선왕의 피라미드 때문이었다.
가파른 경사각이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건축가들은 반쯤 완성한 피라미드의 경사각을 급히 수정했다. 그 결과 탄생한 '굴절 피라미드'는 건축적으로 실패작이었지만 뒤를 이은 쿠푸 왕은 이를 교훈 삼아 기하학적으로 더욱 완벽한 형태의 피라미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피라미드가 훗날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산이 된 '기자의 대피라미드'다.
46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집트는 또다시 경사각을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다. 이집트는 '아랍의 봄' 이후 이어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업까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여러 차례 손을 벌리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이 택한 돌파구는 다름 아닌 관광업의 재활성화다. 3000년의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들이야말로 그들만이 내세울 수 있는 확실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경사각을 조정해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열어 보인 그들의 선조들처럼, 이집트인들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카이로, 부활하는 이집트 문명
약 17만㎡에 달하는 전시 공간을 보유한 '대이집트 박물관'은 이집트가 추진 중인 재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5000여 점의 투탕카멘 유물을 포함해 10만점 이상의 고대 유물을 전시할 목적으로 2002년 건립이 시작됐다. 이집트 정부는 올해 안에 모든 전시관을 개방할 계획이다. 이집트 문명의 전성기를 이끈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박물관 로비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은 대이집트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국가 재건의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을 보여준다. 현지 가이드인 아보 바카르 씨는 "단일 문명으로는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이집트 박물관이 이집트의 '미래'라면 카이로 도심에 자리 잡은 '이집트 박물관'은 1902년 개관 이래 120년 넘게 이집트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한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전시물은 '투탕카멘 컬렉션'이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황금 관, 그의 왕좌와 수많은 보석과 장신구들을 실물로 감상할 수 있다.
발굴 비화도 흥미롭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아 온전한 생태로 발견될 수 있었던 건 행운이 따라준 결과였다. 발굴 팀에서 심부름을 하던 한 소년이 물을 나르다 땅에 걸려 넘어진 덕분에 무덤으로 이어지는 계단 통로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시행착오에 빠뜨리는 불확실성은 때때로 이렇듯 행운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이집트 문명 박물관' 역시 이집트인들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파라오 18명과 왕비 4명의 미라가 전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3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보존된 람세스 2세의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라화 기술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집트 정부는 2021년 4월 3일 고대 이집트 왕족의 장례 행렬을 본떠 '파라오의 황금 퍼레이드'를 열고 22구의 미라를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2017년 개관한 이곳으로 옮겨왔다.
불멸의 역사, 알렉산드리아
"당연히 바다, 그리고 이 도시가 품은 깊은 역사도요."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30대 여성 사미라 씨는 그가 나고 자란 이 도시의 매력이 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수도 카이로가 이집트의 서울이라면 차로 3시간 거리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부산이라 할 수 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은 여름철 많은 관광객을 알렉산드리아로 이끈다.
하지만 이 도시를 단순한 해변 휴양지라 여긴다면 오해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기에 걸쳐 수세기 동안 문명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코스모폴리스'이기 때문이다.
장장 18년간의 복원 작업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재개관한 '그레코-로만 박물관'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이집트인들의 열망이 투영된 공간이다.
이집트 양식과 융합된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들을 만나다 보면 먼 옛날 세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알렉산드리아의 전성기 시절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그레코-로만 박물관의 관장인 메르바트 사이프 엘 딘 씨는 "알렉산드리아가 이집트를 넘어 글로벌 문화와 역사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세계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기원전 3세기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수십만 권의 파피루스 문서를 소장하며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연구 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로마의 침략과 기독교의 국교화, 아랍의 정복 등이 불러온 여러 차례의 파괴와 화재로 고대 도서관은 결국 소멸했다. 현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집트 정부가 유네스코와 협력해 고대의 유산을 되살릴 목적으로 전 세계 수백만 권의 도서와 학술 자료를 모아 2002년 새로 개관했다.
현대와 미래에 이르는 번영의 문을 열려는 이집트는 이렇듯 그 열쇠를 과거에서 찾았다. 그 옛날 하늘에 닿을 듯한 피라미드를 지어 파라오의 불멸의 위상을 기린 것처럼, 숱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취재협조 = 에스마케팅커뮤니케이션즈
[이집트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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