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한국 와서 ‘사과하지 않는 일본’ 쐐기…장단만 맞춘 윤정부
퇴임 직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1박2일 방한은 의제도, 내용도 모호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더이상 사과하지 않는 일본’,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일 12번째이자 마지막 정상회담을 1시간40분 동안 하면서 “양국 관계를 더 발전시키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회담을 시작하면서 “저는 1998년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 관련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히 말씀드렸다”며 “저 자신은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 등에 포함된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 등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계승하고 있음을 말씀드렸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했고, 일본 총리의 사과가 아니라 ‘개인의 슬픔’으로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일 과거사나 일본의 책임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6일 청와대에서 한 만찬에선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책무”라며 “앞으로도 한일관계의 앞날에 예측하기 힘든 난관이 찾아올 수도 있으나 흔들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도 “한국 속담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며 “한일 양국이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여러 과제에 대처해 나가는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은 ‘일본은 더이상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는 ‘미래’라는 이름으로 한일·한미일의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일본의 의중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기시다는 한일 과거사에 대해 ‘일본은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을 재확인했고, 한국 정부가 거기에 동조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지금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지우고 친일적 역사관을 강조하는 데 대해 한국의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일본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한일관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불안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여론을 돌리기 위해 과거사 문제에서 조금은 전향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일본 정치권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한국이 과거사에 대해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과 현재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어떤 조치도 의미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했다고 한다.
남 교수는 “일본 정부는 지금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어내고 한일 군사협력을 되돌릴 수 없도록 ‘제도화’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바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등을 염두에 두고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만약 한국이 일본의 대중국 견제에 완전히 동조하는 길로 들어서게 되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시다 총리는 서울을 떠나기 전인 7일 오전 서울대를 찾아 한국과 일본 재학생들을 비공개로 만났다. 기시다 총리는 “차세대를 짊어질 학생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 기쁘다”며 “한일 교류로 얻은 배움, 친구와 우정은 미래 한일관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외무성은 밝혔다. 하지만 한일 학생을 몇명을 만났는지, 서울대에서는 누가 총리를 맞이했는지를 알 수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을 연구하는 서울대 교수들에게도 아무런 사전 통보가 없었고, 기자들의 취재도 전혀 없었다. 여론의 눈을 피한 듯한, 현직 일본 총리의 ‘기묘한’ 첫 서울대 방문이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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