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대기 5만명인데···기증은 6년째 400명대
2014년 이후 기증 희망자 수 감소
韓, 100만명당 기증인 수 하위권
"면허증 발급때 기증희망 등록 등
생전 서약 위해 사회적 독려 절실"
“장기기증 권유를 받았을 때는 ‘절대 안된다’고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았던 남편을 떠올리며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자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생명나눔 카페 ‘에필로그’에서 만난 공점덕(69) 씨는 “2013년 11월 4일을 잊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 후 30년 간 함께 국수 장사를 하며 동고동락하던 남편 고(故) 정동수 씨를 떠나보낸 날이기 때문이다. 공 씨는 “남편이 뇌사 상태에 빠진 지 3일째 되는 날, ‘가망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고 말했다. 공 씨는 고민 끝에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정 씨는 3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 씨가 남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공 씨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증을 결정하긴 했지만, 3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이후 3명의 환자가 남편의 장기를 받고 살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어디에선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뿌듯해졌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의 날(9월 9일)’을 앞두고 공씨는 딸과 함께 남편의 유지를 기리고 생명 나눔에 동참하기 위해 장기기증 희망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서울시는 장기기증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장기등 기증등록 장려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매년 9월 9일을 서울시 장기기증의 날로 지정했다. 장기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구(9)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날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국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수는 줄곧 제자리걸음이다. 2014년 10만 명을 기록한 이후로 2019년을 제외하고 9만 명을 넘어선 해는 없었다. 특히 실제 장기기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지난해 483명으로, 6년째 400명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올들어 상반기까지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3만782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65명) 보다 2200여 명 줄어 5.6% 감소했다. 상반기 실제 뇌사 장기기증은 226명, 생존시 신장 기증인은 474명에 그쳤다.
반면 이식대기 환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4년 2만4607명이었던 대기자는 올해 6월 기준 5만2000명을 넘어섰다. 이 중 65%에 해당하는 3만4254명은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식대기와 장기기증의 불균형 속에 매일 8명 가량의 환자가 목숨을 잃는다.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문화는 초라하다.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2023년 말 기준 178만 3283명으로 인구의 3.44%에 불과하다. 인구 100만 명당 뇌사 장기기증인 수를 나타내는 PMP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는 7.88명으로, 주요국 중 하위권이다. 스페인(46.03), 미국(44.50), 영국(21.08)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는 “2017년께 장기기증자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라는 지적이 나온 뒤로 등록자 및 기증자가 대폭 줄었다”며 “외국의 경우 장기기증자에 대해 극진히 예우하는 문화가 자리잡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적 관심도 적어 기증 희망자가 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장기기증 등록 장려를 위해 9일 ‘생명나눔, 나누고 더하는 사랑’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서울시는 장기기증자 유가족 50여 명을 초대해 감사패를 전달한다.
김 이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개선이다. 생전에 장기기증을 약속하면 기증 당시 유가족들의 결정에 영향을 크기 미치기 때문에 생전에 서약에 참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며 “운전면허증 양식에 장기기증 희망 등록 의사를 묻는 등 장기기증을 독려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장기기증 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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