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삼성·LG, 중국과 정반대 ‘AI 혁신’ 행보…IFA의 승자는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초, 최고, 최대 이런 걸 갖고 많이 소구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삼성전자의 한종희 부회장)
“우리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PC)를 한 데 합쳐 ‘매직V3’라는 업계 최고의 인공지능 기기를 만들어냈다.”(중국 전자기업 아너의 조지 자오 최고경영자)
유럽 한복판에서 한판 붙은 한국과 중국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행보가 엇갈렸다. 중국 기업이 저마다 ‘혁신 제품’을 내세우며 “업계를 선도한다”고 선포한 반면, 삼성과 엘지(LG)는 최첨단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난 것이다. 파격보다는 안정성과 실효성에 무게를 둔다는 취지다. 다만 소비자의 시선이 여전히 첨단 제품에 쏠리고 있는 만큼 이번 전시가 향후 소통 전략에 과제를 남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 한종희 “최초·최고로 소구하는 시대 지났다”지만
7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가전전시회(IFA). 전시회에서 가장 큰 6017㎡(약 1820평) 규모의 삼성전자 부스에서 유난히 한산한 곳이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 가전을 연결해 제어하는 플랫폼 ‘스마트싱스’의 보안 체계를 전시한 공간이다. 삼성은 “초연결 시대의 필수 요소는 보안”이라며 부스 입구 쪽 자리를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기능 설명에 할애했지만, 관람객은 크게 호응하지 않은 셈이다.
좀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엘지전자도 상황은 비슷했다. 엘지는 일부 플래그십 신제품 전시를 과감히 포기하고, 전시 주제로 내세운 ‘공감지능’의 실제 사용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데 무게를 뒀다. 스마트홈 허브 ‘씽큐 온’에 적용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듯 가전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삼성과 엘지 부스에서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건 아직 출시되지 않은 가정용 로봇 ‘볼리’(Ballie)와 ‘큐나인’(Q9)이었다. 첨단 신제품에 초점을 두지 않겠다는 두 회사의 전략이 엇나간 것이다.
삼성과 엘지가 이런 전략을 택한 배경에는 일종의 딜레마가 있다. 기술 경쟁이 과열되면서 기업들이 상용화하기 어렵거나 현실적인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제품도 공격적으로 내놓다보니, 당장 이목은 끌더라도 소비자의 실질적 호응은 점차 시들해졌다는 것이다. 제품이 충분히 안정적인 성능을 갖췄을 때 자체 행사를 통해 출시하는 쪽으로 기운 이유다.
류재철 엘지전자 가전(H&A)사업본부장(사장)은 “과거에 너무 컨셉추얼(conceptual)하게 미래를 가불했다고 할까”며 “이번엔 세상에 없는 개념을 가져오기보다는 고객 손에 잡히고 실제로 전달할 수 있는 걸 갖고 담백하게 소통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종희 부회장도 “신제품은 (삼성의 자체) 출시 행사 때 기대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문제는 대안으로 내놓은 메시지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부스를 둘러본 한국 대학생 권영진(24)씨는 “집에 있는 가전이 모두 삼성 비스포크인데, 오늘 보니 가전도 참 안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질 출신인 마이클 산토스는 엘지전자 부스를 본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요리 쇼”라고 했다.
설익은 혁신도…“일단 써보라”는 중국 기업들
중국 기업의 풍경은 180도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폴더블폰 ‘매직V3’를 출시하며 “업계를 선도한다”는 표현을 반복해 쓴 아너가 대표적이다. 자오 최고경영자는 “보통 폴더블폰은 두께나 무게 등에서 바(bar)형 폰과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기술과 혁신으로 그 사고방식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안정성이 떨어지는 신제품도 공격적으로 선보였다. 중국 텔레비전 제조사 티시엘(TCL)은 이번에 인공지능 증강현실(AR) 안경 ‘레이니오(RayNeo) X2’도 함께 전시했다. 주기능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눈 앞에 자막으로 보여주고 다른 언어는 번역까지 해주는 것이다. 기자가 안경을 쓰고 티시엘 직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니 꽤 정확한 수준의 자막이 달렸다.
다만 번역 기능의 안정성은 확연히 떨어졌다. 중국인 직원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어달라고 하자 수초 뒤 “비가 오지 않을 것”(It will not rain)이라는 자막이 떴다. 직원은 멋쩍은 듯 웃으며 “아름답다고 했는데, 아마 와이파이 연결이 불안정해 잘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미 895달러(약 12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의 이런 전략이 빠른 성장에 도움이 돼왔다고 본다. 설익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브랜드 신뢰도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시행착오를 미리 거치고 소비자 반응을 빨리 확인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류재철 본부장은 “중국이 더 이상 가격으로만 경쟁하던 그런 브랜드가 아니란 건 다 알 것”이라며 “우리보다 오히려 앞서가는 부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어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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