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붕괴 아냐" 정부, 단언했지만…내년 응급실 '씨' 마른다
진료 제한 응급실이 늘고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빗발치는 가운데 내년 새롭게 배출돼야 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급감해 내년 응급실 현장은 지금보다 더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응급실 위기가 기존에도 있던 위기"라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전국 응급실에서 '진료제한' 메시지가 지난해보다 많게는 50%(월별 기준) 가량 늘어났단 통계결과도 나왔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27개 중증응급질환별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평균 88개소로, 평시 평균 109개소 대비 21개소 줄어들었다. 409개 응급실 중 405개소가 24시간 운영하고는 있지만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은 응급실 운영을 부분적으로 중단했다. 진료 차질이 우려돼 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응급의료기관도 25개소가 있다.
이런 응급실 현황을 놓고 의사집단과 정부의 시각차가 크다. 의사들은 "응급실이 이미 붕괴됐다"고, 정부는 "어려움이 있으나 붕괴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을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게 근본적으로 문제다. 제가 지방에 종합병원이나 공공병원을 가 보면 응급실 응급의학과 의사가 거의 없다"며 " (응급실 의사 부족은) 의료개혁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원래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도 지난 5일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현재 응급의료가 어려움을 겪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기존에도 있던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전공의가 대거 떠난 이후, 전국 응급실에서 '진료제한' 메시지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구급대원이 확인하는 응급실 실시가 현황 시스템)에 표출한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응급실 진료제한 메시지 표출 현황' 18만695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의대 증원 발표로 인해 전공의가 사직한 지난 2월부터 지난달 26일까지 표출된 응급실 진료제한 메시지는 총 7만2411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3407건(22.7%)이나 더 많은 수치다.
심지어 의정갈등이 길어질수록 응급실 진료제한 건수도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전국 응급실에서 띄운 진료제한 메시지는 총 1만61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39건(52.2%)이나 더 많았다. 이 가운데 전문의 부재 등 의료 인력 사유로 진료제한 메시지를 표출한 건수는 총 3721건(3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메시지의 대부분은 '불가능', '응급수술 불가', '진료 불가', OO학과 사정상 진료 불가' 등이었다.
응급실 의사 부족의 원인을 두고 정부와 의사집단 간 해석은 다르지만, 내년 응급의학과 신규 전문의가 거의 배출되지 않을 것이란 건 기정사실이다. 매년 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따는 약 3000명 중 70%가량이 전문의를 따기 위해 전공의 수련의 길에 들어섰는데, 의정갈등이 시작된 올해는 전공의가 대거 사직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의 전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출근율은 8.9%(1민3531명 중 1199명), 그중에서도 레지던트의 출근율은 10.4%(1만463명 중 1085명)다.
대한응급의학회는 현재 전국 응급실에 남아있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인원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학회 관계자는 "응급실에 남은 전공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사전에 막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정해본다면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1년 차 모집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지원한 인원은 152명(정원은 164명, 지원율은 79.6%)이었고, 모든 진료과의 레지던트 평균 출근율이 10.4%인 점을 미뤄보면 내년 배출될 신규 응급의학과 전문의(현 레지던트 4년 차)는 기껏해야 15명 안팎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대(代)가 최소 1년간 끊기는 셈이다. 대표적인 기피 과인 흉부외과의 경우 내년 신규 전문의 예정자(레지던트 4년 차)는 6명에 불과하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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