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관 죽음이 부모 이혼 때문이라니…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진실들
▶ 글 싣는 순서 |
①채상병 어머니 편지 "아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②채상병을 그리워하는 이들, 우리 사회에 묻다 ③"예람이 스케치북이 증거잖아요!" 3년간 관사 짐에 있었다 ④윤일병 어머니 "아들 떠나보낸 10년, 군은 바뀌지 않아" ⑤홍일병 어머니 "살릴 기회 3번 있었는데…제가 무능한 부모예요" ⑥군의관 아들의 죽음, 7년간 싸운 장로 "하늘도 원망했어요" ⑦묻혔던 채상병들, 1860건을 기록하다[인터렉티브] ⑧부사관 죽음이 부모 이혼 때문이라니…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진실들 (계속) |
'부모 이혼으로 인한 가정불화'
지난 2015년 12월 7일 영내 독신자 숙소에서 숨을 거둔 상태로 발견된 정○○ 하사에 대한 군의 수사결과다. 사체부검을 통해 의사로 판단한 군은 정 하사의 사망원인을 부모 이혼으로 인한 가정불화, 전문하사 임관에 대한 가족 및 친구들의 반대, 보직 수행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가족에게 알렸다. 개인적 요인에 의해 사망했다는 군의 수사결과. 가족은 믿을 수 없었다.
정 하사는 지난 2014년 3월 모 대대 정보병으로 명령받았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정 하사가 항상 예의바르고 제 규정을 잘 준수하며 매사에 협조적인 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입대 후 생활지도기록부에도 남들에게 답답하게 보이지 않게 항상 빠르게 움직이려고 노력한다고 적혀 있다.
'진정 42호. 정○○, ○○보병사단 ○○연대 ○대대, 하사, 자해사망, 군 복무 중 법규를 위반한 보직변경 및 부대 내 병력관리소홀 등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음.'
4년이 지난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조사규명위원회가 다시 정 하사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사망 원인은 개인의 요인이 아니었다. 정 하사는 정보병과인데도 주특기가 아닌 K-4분대장이라는 보직을 부여받았다. 휴대전화를 살펴 봤더니 정 하사가 죽기 전 가족과 지인과 통화, 채팅, 인터넷 검색 기록이 확인됐다. 출근 첫날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건 보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전문가들의 심리감정 보고서에도 위규보직 발령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이 망인의 선택에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불안정한 기분이 고조되는 계기는 본인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직 변경과 관련이 클 것으로 판단됨'(P교수) '전문부사관 합격 후 가족의 반대, 전문부사관 보직에 대한 막연하고 강한 불안감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봄'(Y심리학 박사)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심리적인 불안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L교수).
부모가 이혼한 것은 맞지만 아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가족들은 아들이 죽고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순간 가정 불화로 자해 사망했다는 통고가 아픔과 분노로 다가왔다. 이 사건을 맡았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한상미 조사관은 "전남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가 저를 보시더니 '오늘 자고가면 안 되겠냐'고 얘기를 하셨다"며 "저희가 2019년도에 조사를 했으니 4~5년간 눈물 속에 사셨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처리한 1860건의 사건을 분석한 결과 1021건이 사망 원인이 다르게 규명된 경우였다. 당시 관성적으로 개인의 성격, 가정환경, 지병에 대한 비관이 사망 원인으로 판단됐다. 선임병과 간부, 지휘관에 의한 부조리가 드러나도 복무 부적응을 겪는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한 채 사건을 종결하기도 했다.
유형별로는 자해사망 사건의 대부분은 구타와 가혹행위 및 인격모독적 폭언, 비민주적 악습 등의 부조리에 대한 경험이 사망사고 발생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었고 그 배경에는 이러한 폭력을 방치한 소속대의 병력 관리소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력 관리 소홀 273건
진정 제680호 이이병은 신병훈련소 병사들 사이에서 '가면 죽는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인 특공연대에 일방적으로 선발된 망인이 심적 부담감으로 1986. 4. 6. 근무 중 목을 매어 사망했다.
진정 제798호 김이병은 신병교육대 및 자대 전입 인성검사에서 사고 위험이 반복 예측되었음에도 '관심사병'으로 식별·보고·관리 조치하지 않은 관리소홀로 2015년 추락 사망했다.
직권 제9호 김중사는 관제반장과 선임 관제사들은 초임 간부의 부대 적응을 돕기는커녕 '초임부사관의 조기 업무 숙달을 위한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과도한 관제사례 작성·발표를 지시하고 끊임없이 질책한 결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망인이 장기복무를 포기하는 등 군 생활에 회의감을 느낀 끝에 2019. 2. 28. 목을 매어 사망했다.
구타·가혹행위 243건
진정 제28호 김일병은 훈련이 끝난 휴식 시간에 후임병들을 집합시켜 얼차려를 주면서 발로 신체 부위를 폭행하는 소위 '차수기합'이 부대 전통이었고 지휘관 또한 이를 부대 적응을 위한 적절한 자극 정도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선임병의 군홧발 가격으로 정강이에 부상을 입는 등 구타를 당하다 1985. 7. 8. 총기를 이용해 사망했다.
진정 제169호 이이병은 중장비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병장에서 상병, 일병으로 이어지는 장시간의 '내리갈굼'과 "제대로 좀 하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수차례 때리는 등의 폭행 및 가혹행위, "너 이제 군 생활 끝났어"라는 비난을 당하다 신병 위로 휴가 마지막 날 귀대하지 않고 유서를 남긴 채 2009. 6. 1. 본가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진정 제1259호 박일병은 선임병 10여 명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해오다 다른 생활반에서 수건을 가지고 나온 일로 도둑으로 몰리고 거짓말은 쓰레기 같은 행동이라며 질책과 구타를 당하자 "나 같은 XXXX는 더 이상 살 필요 없는 것 같다"는 유서를 남기고 2010. 7. 29. 목을 매어 사망했다.
공무 중 사고 162건
행위의 고의 또는 중과실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데 따른 쟁점화의 대상으로 대법원은 "중대한 과실이란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 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판시 한 바 있다.(2017. 3. 30. 선고 2014다68891)
아래의 사건은 공무와 연관된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서 망인의 행위가 대법원 판례에서 제시한 기준에 의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진상규명으로 결정됐다.
직권 제45호 김일병 외 32명은 1956년 군에서 기동훈련, 작업, 불발탄 처치, 연대 자활농장 경작, 화목·산채물 수집, 취사 등의 임무 수행 중에 또는 원인불명으로 인한 폭발물로 사망했다.
진정 제890호 최상사는 건설공병단 소속으로 복무 중 부대 외부에서 건물 짓기 작업 수행 후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군용트럭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트럭이 급출발하면서 땅에 추락해 1961. 4. 28. 사망했다.
진정 제1136호 박하사는 소속대 인근 ○○산에서 벌목 작업에 동원되어 작업하다 발생한 사고로 후두타박상을 입고 뇌진탕으로 1956. 12. 14. 사망했다.
협박·욕설·인격모독 등 폭언 63건
진정 제33호 변상병은 잘못된 부대 편제로 인해 고참병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선임병의 폭언과 질책을 겪던 중 후임병 전입 이후로 후임병 교육을 구실 삼아 "야! 너는 상병이면 제일 빨리 결속하고 일, 이등병 봐줘야 되는 거 아니냐?", "XX, 상병 달았다고 끝나냐? 대답도 잘 안하고 갑자기 왜 변했냐, 니가 그 XX하고서 인정 못 받는다고 하지 마라"라는 등 욕설과 질책이 더욱 심해지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2006. 10. 18.경계근무 도중 총기를 이용해 사망했다.
진정 제111호 윤이병은 후방부대 특유의 병력편제로 인한 불균형한 계급 구조 속에서 생활관 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선임병들의 괴롭힘에 시달렸고 특히 말꼬리를 잡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이게 끝인 줄 알지, 이제 시작이야", "XX하려면 오늘 밤에 해라"라고 비아냥대는 등의 폭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자기비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2010. 6. 8. 목을 매어 사망했다.
진정 제166호 이하사는 선임 부사관들의 폭언과 사적 심부름 강요, 욕설과 괴롭힘을 당하다 부대원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기고 2013. 8. 27. ○○대교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진정 제730호 최소위는 소속대 전입 후 운영통제담당(행정계장) 장교로 보직되었으나 업무 인수인계과정에서 전임 행정계장의 몰아세우듯 가혹한 질책과 다그침. "사병한테 배워라"라는 등의 인간적 무시를 며 칠간 끊임없이 당하며 스트레스가 급격히 가중되어 2018. 1. 19. 숙소 건물에서 목을 매어 사망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상미 조사관은 "대부분 군과는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이유로 치부되는 경우들이 많았다"며 "이는 나약한 군인으로 치부를 해버리기 때문에 사망한 당사자나 유족에게 상당한 불명예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은 한 병사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지 의문을 계속 갖게 된다"며 "내 동료, 부하가 사망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다면 이렇게 종결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게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참 안타까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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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남승현 기자 ns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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