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메이저리거’ 역대 최악의 해, 그래도 희망의 빛은 보인다
장현석·심준석, 마이너리그에서 지속 성장…KBO 평정한 김도영도 큰 관심
(시사저널=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의 지난 메이저리그 3년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든 3년이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규정타석(512)과 규정이닝(162)을 모두 달성하는 것으로 투타 겸업의 정점을 찍었다. 하루에 더블헤더 1차전에서 완봉승을 하고 2차전에서 홈런 두 방을 날리기도 한 오타니는 혼자서 타자 스즈키 이치로(50)와 투수 다르빗슈 유(38)의 뒤를 이었다.
올해 오타니는 다소 심심한 시즌이 예상됐다. 지난해 10월 팔꿈치 수술을 받아 투수로 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올해도 오타니는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1990년 세실 필더(디트로이트)는 51홈런 0도루를 기록했다.
최지만·배지환·고우석 등도 빅리그 못 밟아
1999년 루이스 카스티요(플로리다)는 50도루 0홈런이었다. 그런데 오타니는 타자에 전념한 올해, 최초의 '50-50' 기록(50홈런 50도루)을 앞두고 있다. 지난 3년이 투수와 타자의 통합이었다면, 올해는 홈런과 도루를 통합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타니는 역대 최초의 지명타자 MVP, 역대 최초의 3번째 만장일치 MVP(오타니를 제외하면 두 번을 차지한 선수도 없다), 역대 두 번째 양 리그 MVP를 차지한다. 일본 선수의 활약은 오타니뿐만이 아니다. 오타니의 절친인 스즈키 세이야(30·시카고 컵스), 일본에서 스즈키의 라이벌이었던 요시다 마사타카(31·보스턴)의 활약도 뛰어나다. 오타니의 고교 선배인 기쿠치 유세이(33·휴스턴)는 새로운 팀에서 에이스급 피칭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88년생이 황금세대였다. 다나카 마사히로(전 뉴욕 양키스), 마에다 겐타(전 LA 다저스),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남은 야나기타 유키(소프트뱅크)가 1988년생이다. 다르빗슈는 이들보다 한 살 많다. 그리고 오타니 세대가 그 뒤를 더 화려하게 이었다.
우리에겐 오타니 세대에 해당하는 베이징 세대가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영향을 받은 김하성(28·샌디에이고),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강백호(25·kt 위즈) 등이다. 이들이 추신수(42·SSG 랜더스)·류현진(37·한화 이글스)의 유산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김하성은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내야수로는 처음 골든글러브를 따내고 공격에서도 큰 성장을 이뤄, 1억 달러 FA 계약이 기대됐다. 출발은 좋았다. 2억80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잰더 보가츠(31)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가 됐다. 하지만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해 스윙을 바꾼 결과는 좋지 않았고, 진출 후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어깨)에 올랐다. 부상을 잘 당하지 않아 '철강왕'으로 유명한 김하성은 큰 부상을 피했지만, 1억 달러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올 시즌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이정후는 가장 화려한 계약과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어깨 수술을 받아 37경기 만에 시즌을 마감했다. 냉정하게 보면 첫 시즌은 완벽한 실패다.
맏형이 되어야 했던 최지만(33)은 뉴욕 메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승격에 실패했다. 메츠에서 방출되고 나서는 구직 활동을 포기했다. 최지만이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친 건 2016년 데뷔 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역시 베이징 세대라 할 수 있는 배지환(25·피츠버그)은 외야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타율 0.189에 그치며 제아무리 발이 빨라도 '1루는 훔칠 수 없다'는 격언을 증명했다. 마이너로 내려간 배지환은 로스터가 늘어난 9월에도 승격되지 못해 팀내 입지가 크게 나빠졌다.
샌디에이고가 450만 달러 계약을 줬지만, 유망주를 포기하면서까지 빠르게 내보낸 고우석(26·마이애미)은 마이너에서도 부진해 연내 빅리그 데뷔가 무산됐다.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둘렀지만 오클랜드의 부름을 못 받은 박효준(28)까지. 일본 선수가 72개의 홈런을 날린 반면, 한국 선수는 9월4일 현재 단 13개에 그치고 있다. 물론 승리를 기록한 투수는 없다.
포스팅 4년 남은 김도영에 벌써부터 눈독
코리안 메이저리거에게 최악의 해인 올해. 아직 희미하지만 점점 강해지고 있는 빛이 조금씩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다저스가 아마추어 계약을 준, 박찬호 이후 가장 기대가 큰 장현석(20)은 빠르게 루키리그(마이너리그의 가장 낮은 레벨)를 통과했다. 9이닝당 삼진이 루키리그 18개, 싱글A 14개에 달하는 장현석은 평균 이상의 플러스 피치가 세 개에 달해(패스트볼·커브·슬라이더) 제구만 잡으면 강력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장현석은 다저스의 17위 유망주다.
장현석보다 일곱 달 먼저 피츠버그와 계약한 심준석(20)은 부상으로 한 경기도 던지지 못하고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됐다. 마이애미의 27위 유망주인 심준석 역시 구위가 뛰어나 건강과 제구가 관건이다. 마이애미는 인기 팀도 아니고 전력도 강하지 않지만 투수에게 좋은 구장 환경을 가지고 있고, 투수를 길러내는 능력도 다저스 못지않다. 2018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데려와 2022년에 사이영 투수를 만든 샌디 알칸타라(28)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오타니 세대가 승승장구하고 있고, 사사키 로키(22·지바 롯데 마린스) 세대가 그 뒤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야구엔 세대라는 말이 불필요하다. 계속 좋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선수층이 얇은 한국은 한 명 한 명의 실패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한국 야구는 다음 한 명을 준비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3루수 김도영(20)이다. 김도영은 3년 차에 KBO리그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 김도영은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의 메이저리그 최연소 기록까지 경신했고, 트라웃이 성공하지 못한 3할·30홈런·30도루도 앞두고 있다. 김도영의 성장세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니 메이저리그 팀들은 포스팅까지 4년이 더 남은 김도영의 진출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반격이 기대되는 건 김하성·이정후·배지환이 아직 창창한 나이의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김하성은 수비 경쟁력이 확실하기 때문에 타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정후는 데뷔 시즌이 허무하게 끝났지만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최고의 스피드를 가진 배지환은 출루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전까지는, 박찬호 이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선배들이 있었다. 후배들은 그들의 도전을 보면서 꿈을 키웠고 그들의 계승자가 됐다. 지금의 한국 선수들도 저점을 돌파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어둠은 과연 황혼일까 여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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