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온상인데 쓰기는 편한… 텔레그램 딜레마 [視리즈]
텔레그램 규제가 상책인가➊
보안성 뛰어난 텔레그램
사용자 편의성도 뛰어나
그 탓에 범죄 용도로 쓰여
하지만 텔레그램이 문제일까
#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Telegram)'이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범죄의 상당수가 텔레그램에서 벌어지고 있어서입니다.
# 텔레그램은 뛰어난 보안성과 개방성 등 다른 메신저와 차별화한 기능이 많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즐겨 쓰는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장점을 악용하는 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텔레그램이 범죄의 근원지이니, 강력한 규제를 펼쳐야 할까요? 더스쿠프가 논란의 중심이 된 텔레그램의 이모저모를 살펴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텔레그램 규제가 상책인가' 1편입니다.
SNS 텔레그램을 향한 전세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텔레그램이 인기가 많아서냐고요? 아닙니다. "텔레그램이 각종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들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선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으로 텔레그램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2020년 횡행했던 'n번방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범죄자들이 불법 촬영물을 시청·공유하는 수단으로 총 8개의 텔레그램 채팅방을 활용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수만명의 사람들이 불법 촬영물을 시청했고, 그로 인해 74명의 피해자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deepfake·지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영상물) 유포 수단으로 텔레그램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넣으면 유료로 음란물과 합성해 주는 기능을 텔레그램 채팅방에 탑재해 수익을 내는 게 범죄자들의 수법이었는데, 이런 채팅방에 참여한 인원만 8월 기준 22만명에 달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지난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수단으로 텔레그램을 활용했습니다. 당시 구독자가 1400만명에 달했던 텔레그램 채널 '가자 나우(Gaza Now)'에서 이스라엘과의 전쟁 속 참상을 알렸는데, 이 과정에서 사실을 허위 조작한 '가짜뉴스'가 양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죠.
이렇듯 텔레그램은 가짜뉴스 전파나 디지털 성범죄 등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이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이 어떤 서비스이길래 매번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걸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텔레그램이 어떤 성격의 서비스인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장점➊ 보안성 = 텔레그램은 비영리를 추구하는 클라우드 기반의 인터넷 메신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3년 8월 23일, 러시아 출신의 파벨 두로프가 형인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2006년 SNS 서비스 '프콘탁테(VK)'를 출시한 경험이 있는 두로프는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에 빗대 '러시아의 저커버그'라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두로프 형제가 추구한 텔레그램의 강점은 '뛰어난 보안성'입니다. 이 서비스는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라는 독특한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발신원부터 수신원까지의 정보를 암호화해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전송하는 방식이 이 보안체계의 골자입니다.
이 방식 덕분에 외부에 있는 제3자는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중간 서버에서 암호화가 한번 풀리는 대부분의 메신저 서비스보다 보안성이 뛰어납니다.
본사에서 데이터를 축적하지 않는 것도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높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텔레그램에서 나눈 대화 내용은 전세계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분산해 저장하고, 지역별로 다른 법인이 관리합니다.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키'도 마찬가지로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보관됩니다.
따라서 제3자가 데이터를 받으려면 여러 관할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죠. 게다가 텔레그램은 론칭 이후 지금까지 어떤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데이터를 제공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텔레그램이 개인 정보 보호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밖에 사용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대화 내용을 삭제할 수 있다는 점, 대화 중엔 스마트폰 캡처 기능을 쓸 수 없다는 점도 텔레그램의 보안성을 높이는 기능들입니다.
■ 장점➋ 사용자 편의 = 다른 서비스보다 사용자 편의성이 높다는 점도 텔레그램의 장점입니다. '국민 메신저'로 꼽히는 카카오톡과 비교해 볼까요. 카카오톡은 크기가 300MB가 넘는 파일은 전송할 수 없지만 텔레그램은 최대 2GB(유료 구독 시 4GB) 크기의 파일까지 전송이 가능합니다. 파일 만료기한도 카카오톡은 2주인 반면에 텔레그램은 만료기한이 아예 없습니다. 먼 과거에 주고받았던 파일도 언제든지 다시 내려받을 수 있죠.
또 텔레그램은 다른 앱에 비해 동작 속도도 빠르고 더 안정적입니다.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안드로이드와 iOS 등 운영체제에 맞춰 별도로 앱을 프로그래밍한 덕분입니다. 또 광고가 없어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단순하다는 것도 빠른 동작 속도와 안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 덕분인지 텔레그램에선 대규모 인원이 한 채팅방에 모여도 원활하게 서비스가 돌아갑니다. 일반 텔레그램 채팅방은 200명까지 가능하고, 그 이상이 모일 경우 자동으로 '슈퍼 그룹'으로 전환돼 최대 20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 장점➌ 개방성 = 텔레그램은 누구나 채팅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plication Program ming Interface·API)와 소스 코드 등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라면, 채팅방 디자인을 바꾸거나 각종 편의 기능을 집어넣는 등 채팅방을 입맛대로 꾸밀 수 있죠.
또 텔레그램은 다른 메신저 앱에선 유료로 제공하는 스티커(이모티콘) 기능도 무료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스티커로 제작해 사용할 수 있죠. 이렇듯 텔레그램은 이용자 친화적인 기능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게다가 조금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유료 구독(4.99달러·약 6600원) 외엔 모든 기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같은 텔레그램의 장점을 악용하는 범죄가 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의 경우, 텔레그램의 API를 개조해 사진과 영상을 자동으로 합성을 해주는 봇(bot)을 채팅방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벌였습니다. 수십만명에게 가짜 뉴스를 실시간으로 퍼뜨릴 수 있었던 것도, 범죄자들이 서로 은밀하게 소통할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텔레그램의 뛰어난 보안성과 편의성 덕분이었죠.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문제의 원흉을 텔레그램에서 찾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텔레그램을 법으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정말 텔레그램만이 문제인 걸까요? 텔레그램을 잘 쓰고 있는 일반 이용자가 적지 않은 만큼, 이번 사건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텔레그램 규제가 상책인가' 2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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