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임영웅이 동시에 인기를 얻는 문화시장

한겨레 2024. 9.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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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l 가치와 가격의 괴리 ② 학습과 시차
음악적 취향은 사춘기 무렵에 생겨 평생 지속하기 때문에 뉴진스와 임영웅이 동시에 인기를 누린다. 연합뉴스
음악적 취향은 사춘기 무렵에 생겨 평생 지속하기 때문에 뉴진스와 임영웅이 동시에 인기를 누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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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미술이 어렵고 미술에도 시장은 쉽지 않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미술품의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해 가격을 책정하고자 하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조절에 따라 가격은 얼마든지 가치와 무관하게 결정될 수 있다. 미술전문가들은 이런 시장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도외시한다. 그러면 시장과 미술계의 거리, 즉 가격과 가치의 괴리는 더욱 심해진다.

가치를 가격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면, 애초에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질적인 감정을 균질적인 양으로 환산하는 것은 합리적인지 한 번쯤 의심해볼 수 있다. 특정 대상을 향한 미적 쾌감을 균질적인 단일 수치로 계량화하려면 먼저 그 수치에 대한 모든 이들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마치 과일의 당도나 귀금속의 순도처럼 질이 균질적인 양적 척도에 의해 측정이 가능한 것처럼, 예술의 아름다움이나 와인과 음식의 맛도 모두가 동의할 양적 척도가 마련돼야 한다.

일찍이 철학자 칸트는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감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음악에서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구분되고, 도형의 비율에는 황금비율이 있으며, 색에는 보색과 명도와 채도가 있어 이를 통해 다양한 색채조화의 이론이 나온다. 이는 인간의 감각에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의 성질이나 크기 및 색의 성질이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한 사회 안에서 잘생긴 얼굴이나 예쁜 옷에 대한 판단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그런데 시대와 지역이 다른 경우에도 동일할까?

미적 판단 기준은 학습되는 것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는 쌍꺼풀이 없는 눈과 다소곳한 콧날, 그리고 앵두같이 붉은 입술의 동그란 얼굴형에 가늘고 긴 흰 목과 좁은 어깨를 가져야 미인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쌍꺼풀이 있는 커다란 눈에 오뚝한 코와 날렵한 턱선을 가진 계란형의 갸름하고 작은 얼굴형에 긴 다리와 전체적으로 날씬한 체형을 가져야 미인이라고 한다. 서구문화가 도입되면서 우리의 미인에 대한 기준이 서구의 기준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 차이는 곧 서구와 조선 미인의 기준이 달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미적 판단의 기준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적 판단 기준의 변화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유행이다. 패션계의 유행은 해마다 계절마다 변하며, 그 변화에 따라 예쁘고 멋진 옷의 기준도 달라진다. 자연스레 유행에 민감한 이들은 새로운 패션이 멋지다고 느끼고, 이에 둔감한 이들은 철 지난 것들이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새로운 패션 동향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간에 미적 판단이 다른 것은 결국 미적 판단 기준이 일정 부분 학습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지역과 시대에 따른 기준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학습의 영향은 음악에서 더욱 뚜렷하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뉴진스에 열광하고, 이 곡들이 세계적 인기 순위에 오른다고 해도 구세대는 이들의 음악에 빠지거나 즐길 수가 없다. 음악을 향한 취향은 사춘기 무렵에 생기며, 그때 각인된 취향은 평생 지속한다고 한다. 노년 인구의 증가로 1960~1970년대 유행하던 철 지난 트로트가 최근 다시 붐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음악 취향이 한번 학습되면 쉬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미술도 꾸준한 노력과 학습 없이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굳어진 취향을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다.

칸트는 미적 판단에서 학습의 효과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학습에 의해 판단이 달라지는 아름다움의 또 다른 영역을 ‘숭고’라는 이름 아래 마련해놓은 바 있다. 숭고란 거대한 파도나 태풍, 산 등과 같이 압도적 광경이나 사태를 보고 놀라 경탄하고 동요하는 감정이며, 이런 동요를 거쳐 인간은 비로소 그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의 강화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파도나 태풍을 생계를 위협하는 재난으로 여기는 어부나 농부, 고산준령을 이동의 불편으로 여기는 산골 주민에게 이런 감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숭고는 공통감각이 아니라 학습과 여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미적 감정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대중에게 난해하게만 보이는 현대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다양한 설치와 미디어 작품으로 구성된 현대미술은 사실상 작품 제작의 맥락을 모른 채 작품만 보고서는 전문가도 이해하거나 감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작품에 공통감각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극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공유하는 감각으로만 미적 평가가 이뤄진다. 대중은 이 판단을 사후적으로 학습할 뿐이다.

임영웅과 뉴진스

조선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회화의 양식이 변치 않고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오랜 기간 학습된 기준이 거의 동일하므로 미적 판단의 공통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다. 반면 오늘날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학습된 내용은 신속하게 진부화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작가의 문제의식도 달라져야 하고 기존의 양식을 답습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작품의 평가 기준도 빠르게 바뀐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변화 속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소수의 전문가 몫이고, 대중은 철 지난 상투적 기준에 계속 안주한다. 이때 전문가와 대중 간의 시차 내지 지연은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초래한다.

시장에서의 가격은 구매자가 지불하는 돈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구매력, 즉 그 가치에 부응하는 가격을 지불할 돈이 없고, 구매력이 있는 고객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볼 안목이 없다. 그래서 뉴진스와 트로트 가수가 동시에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미술관에서는 난해한 현대미술이 주로 전시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반세기가 지난 단색화가 거래되며, 철 지난 작고 작가들의 전시가 블록버스터 전시로 기획된다. 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결국 전문가의 평가를 대중이 학습하기까지의 시간적 거리다. 그런데 구매자와 이해가 상충하는 작가 및 갤러리가 이 학습에 개입할 경우 이야기는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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