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은 진짜 금리 탓일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한국은행은 8월에도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부터 1년7개월간 13차례 연속 동결이다. 금리 동결 이유로는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불안한 부동산 시장'을 꼽았다. 당연한 설명이지만 아쉽다는 반응도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5%로 낮추면서, 성장 둔화는 내수 부진 때문이고, 내수 부진의 주원인은 고금리 장기화라고 했다.
우리 경제의 내수 부진은 확실하다. 특히 민간소비가 나쁘다. 2021년과 2022년 민간소비 증가율은 각각 3.7%와 4.3%였는데 2023년에는 1.7%로 떨어졌고 2024년 상반기에는 0.9%로 추락했다. 심지어 지난 2분기의 소매판매액은 15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부진한 내수 탓에 성장률은 올 1분기 1.3%에서 2분기 -0.2%로 떨어졌다. 4.1%포인트였던 2021년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2.7%포인트와 1.4%포인트로 떨어졌고 올 상반기에는 1%포인트대 역성장을 기록했다. 내수 회복이 늦어지면서 성장동력이 약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높은 금리는 대다수 경제 주체들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최악이다. 물가가 뛰면서 자영업자들은 급등한 재료비와 공공요금에 맞춰 가격을 올리지만 치솟은 물가에 놀란 서민들은 지갑을 닫는다. 악순환이다.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98만648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11만9195명 증가한 것으로, 200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자영업자 숫자는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이후 6개월째 줄고 있다.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0%를 넘는다.
"금리인하와 경제성장 관련 없을 수도"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통화정책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부작용이 크다. 그러나 그 적절한 시기를 알아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흔히 금리 변경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을 말하지만, 이것도 정부의 정책 의지가 계수로 반영되기 때문에 자의적인 적용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의 '준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일단 물가 수준만 보면 금리 인하를 검토할 시기인 것은 맞다. 올해 들어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 증가나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2003년 이후에는 기준금리가 내려도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차를 계산에 넣은 1분기 직후의 성장 효과도 거의 없었다. 다섯 번에 걸친 박근혜 정부 시절의 기준금리 인하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이유는 예금 잔액이 대출 잔액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는 효과보다 예금자의 이자 수입을 줄이는 효과가 더 크면 소비가 증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금리가 내릴 때는 예금금리 인하 폭이 대출금리 인하 폭보다 큰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예금자의 이자 수입은 더 많이 감소한다. 높은 가계부채 수준이 미칠 영향도 있다. 상대적으로 부채 부담이 큰 가구들은 갚아야 할 이자가 조금 줄어든다고 해도 소비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내수는 결국 소비자의 지출이나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야 좋아진다.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이미 많은 부채의 부담을 안고 있거나, 경기 회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소비자와 기업은 소비나 투자를 늘리기보다 부채 줄이기를 선택할 수 있다. 설사 금리 인하의 긍정적인 효과가 다소 있다고 해도 금리 인하로 인한 회복의 속도나 수준이 금리 인상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정도에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정도로 파격적인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시기나 경기 불황 때처럼 금리 인하가 빠르고 급격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속도는 느릴 것이다. 최종 금리도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은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맞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한국은행이 내부적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중립금리는 1.8%에서 3.3% 수준이라고 한다. 최종적인 기준금리 수준은 지금보다 1%포인트 낮은 2.5% 수준이 한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립금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금리는 소비나 투자에 대한 효과가 별로 없다. 사실은 지금의 우리나라 기준금리 3.5%가 심각한 고금리 수준인 것도 아니다.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 3.5%에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6%를 빼면 실질 정책금리는 0.9%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 3%에 기준금리 5.5%인 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소비 증가 제약 근본 원인은 실질소득 감소"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은 경기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단기적인 대응책이다. 단기적인 경제 안정화 정책은 경제의 성장 능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전망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13년 3.5% 이후 계속 하락해 올해 1.7%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잠재성장률 저하는 금리 탓이 아니다. 일본은 지난 35년 동안 기준금리가 0.5%를 넘은 적이 없다. 금리가 높아서 일본이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구조적인 이유로 내수가 위축되고 성장률이 낮아지는 현상은 구조 개혁과 생산능력 확장으로 소득을 늘려 해결해야 할 장기적인 과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어느 나라나 소비 증가를 제약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같다. 실질소득 감소다. 부모보다 가난한 자식 세대가 현실이라면 소비는 늘어나기 어렵다. 양극화 현상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는 내수에 치명적이다. 자영업의 위기에는 구조적인 배경이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소비 습관 변화에 해외 직접구매는 급증하고 있고 중국 플랫폼 기업들의 저가 공세는 어려움을 더한다. 근로시간 단축 등 사회적인 여건 변화도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다. 현재 자영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지연된 구조조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31.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보다 약 18%포인트나 높다.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미뤄졌다. 금리 인하는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한계가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임박했다. 9월에는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 2022년 초 시작된 통화 긴축의 방향이 3년 반 만에 바뀐다. 한국은행도 마냥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는 없다. 시점이 문제일 뿐 우리도 금리는 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금리를 조금 낮춘다고 해도 내수가 기대만큼 활기를 되찾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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