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1989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PC라는 새로운 기계 때문에 세상이 들썩이고 있었다. PC를 제대로 다루려면 책으로 공부해야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인터넷’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 일반인들은 아직 인터넷이 뭔지 알지 못했다. 곧이어 ‘윈도’라는 새로운 PC 운영체제가 세상에 나왔고, ‘마우스’라는 낯선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머지않아 정보를 얻거나 게임하는 장소였던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야후’가 독점하던 검색시장에 ‘구글’이라는 새로운 검색엔진이 등장했다. 당시 구글이 이렇게 큰 회사가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이후로 휴대폰, 스마트폰, 유튜브, 카카오, 네이버, SNS, 인공지능 등 불과 30년여 만에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했다.
그렇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다. 모두가 변화에 대해 말한다. 즉 변화된 미래의 모습을 미리 알기 원한다. 사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생각은 인류 역사에서 생소한 개념이다. 15세기 조선에 살았던 농부는 미래 자신의 일상이 부모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리라. 원래 세상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 변하더라도 서서히 변한다. 지금같이 빠른 변화가 일상이 된 것은 바로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가 지금과 다르다면 그 차이는 대개 과학기술이 만든 것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인간과 같은 기계, 화성 식민지 같은 것이 그 예다. 변화된 미래를 알려면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눈앞의 신기술, 스마트폰이라는 ‘뇌’
1933년 영국의 한 화학회사에서 폴리에틸렌이라는 물질이 우연히 합성된다. 폴리에틸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비밀 물자로 쓰였다. 각종 전자장비의 절연 피복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 물질은 민간에 풀리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 물질을 ‘플라스틱’이라 부른다. 플라스틱이 이토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줄 개발자들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 사랑이 지나쳐 온 세상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일 걱정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폴리에틸렌의 원료는 석유다. 석유를 발견한 사람들도 이 물질이 연료 이외에 석유화학공업이라는 거대한 산업을 촉발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더구나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라는 미래를 불러올 것은 알았을까?
1906년 미국의 리 디포리스트는 3극 진공관 발명 특허를 취득했다. 1913년 세계 최대 통신기업 AT&T는 전화에 사용하기 위해 이 특허를 5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 거래는 윈윈이었는데, AT&T는 50만 달러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었고 디포리스트는 5000달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술을 두고 미래에 대한 가치평가에 100배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AT&T는 라디오를 제외하고 전화에 대한 특허의 독점사용권을 구매했다. 당시 라디오는 아마추어 호사가들의 취미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0년대가 되자 라디오 붐이 일기 시작해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되는데, 라디오에 들어가는 3극 진공관의 특허는 디포리스트의 소유였다. 오늘날 우리는 디포리스트를 라디오의 아버지라 부른다. 라디오의 아버지도 세계 최대 통신기업도 기술의 미래 가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신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스마트폰을 한동안 구입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기계는 인터넷이 연결된 소형컴퓨터와 무선전화를 합친 거였다. 휴대전화는 이미 있었고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는 집과 직장에 있으니 이동 중에도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가 필요한지가 관건이었다. 이동 중에는 컴퓨터가 아니라 책을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스마트폰을 사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보다 주변에서 난리였다. 내가 스마트폰이 없어서 그들이 더 불편했다는 뜻이다. 결국 주위 압력(?)에 못 이겨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내 예측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두 번째 뇌였고, 전화보다 다양하고 강력한 소통 수단이었다. 신기술은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존재하지 않는 신기술의 모습을 제대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00년 전의 사람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예측했지만, 인터넷 같은 것을 예측한 적은 없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긴밀히 연결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SNS, 유튜브, 메신저는커녕 스마트폰이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플라스틱 개발자가 그랬듯이 예기치 못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그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몇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책을 지금 읽어도 얻을 것이 존재하는 이유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사회이지만, 우리는 그 작품 속의 사람들이 왜 고통받고 고민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3극 진공관, 라디오는 그것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우리가 교훈을 얻을 역사는 없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그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가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다면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할까? 물론 불확실하더라도 예측해야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다. 다만,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너무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가운데 하나는 ‘에너지보존법칙’이다. 에너지는 그 형태를 바꿀 뿐 창조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카오스와 같이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운동의 경우에도 에너지는 변하지 않고 보존된다. 화학자는 화학반응 전후 원자의 수, 질량, 전하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많은 것을 알아낸다. 변화를 예측하기 전에 당신 분야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 무엇일지부터 찾아보면 어떨까?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현재 CEO인 제프 베이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5년 후나 10년 후 무엇이 변할 것인지는 묻지만,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는 분야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 10년쯤 후를 대비해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이 중요하다고 하니 코딩을 주로 공부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일차적 답은,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에서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역사’는 타임머신이 나오지 않는 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 역시 지금도 유효하다. ‘예술’은 어떤가. 10년 후에도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림 그리지 않을까?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것이다.
수학·물리·화학·생물은 10년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과학기술은 모두 이것들을 토대로 할 테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우선 배우면 되지 않을까? 짐 켈러는 인텔과 AMD에서 부사장을 하고 애플·테슬라에서 중책을 맡기도 한 ‘멀티코어 프로세서의 아버지’이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AI의 시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예술과 기초과학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에서는 프로그램을, 대학에서는 캐드(CAD·컴퓨터 지원 설계)를 가르치는데 이건 미친 짓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예술하고 연극하고 악기를 배우고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역사를 배워야 한다. 기본이 항상 최고다.”
변화의 시대다. 잠시 한눈팔면 따라가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변화는 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다. 변화를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아니, 과학기술의 미래 예측이 옳았던 적은 거의 없다. 변화의 예측이 어렵다면 변하지 않는 것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물리에서도 가장 먼저 할 일은 변하지 않는 물리량들을 찾는 것이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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