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훔쳐봤다, 먹황새를 [임보 일기]

최태규 2024. 9. 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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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내성천이라는 강이 있다.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여 영주, 예천, 문경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모래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모래강이었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본류 강바닥이 낮아지고 4대강 사업 마지막 댐인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모래와 물이 흐르는 줄기를 틀어막는 바람에 모래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본류 바닥이 낮아진다는 의미를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의 강바닥이 더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낮은 곳으로 가려는 물살은 높은 곳에서부터 빨라진다. 빨라진 물살은 높은 곳의 바닥을 깎아낸다. 넓게 천천히 흐르던 모래강 내성천은 바닥이 깊어진 낙동강 바닥에 장단을 맞추며 좁고 깊은 강이 되었다. 4대강 사업은 세금 22조원을 들여 강을 고인 물로 만든 이명박 정권의 나쁜 짓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지 4대강이 흐르지 못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강으로 흐르는 수많은 지류의 생태계를 뒤흔드는 토건 사업이었다. 수문을 여는 정도로 재자연화를 기대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 경북 예천에 살게 되면서 나는 그 광활했던 모래강을 뜨거운 여름으로 만났다. 물론 개와 함께. 모래사장은 바다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야 누나야’ 같은 옛 노랫말에 강변의 금모래가 실재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 개가 놀기에 모래가 좀 뜨겁긴 하지만, 어차피 나도 발 벗고 다리 걷고 모래를 한참 걸어 물에도 들어가고 개는 수영하면서 데워진 발바닥을 식히곤 했다. 모래밭에는 물새들과 수달, 너구리, 고라니, 삵 발자국이 재봉틀로 박은 선처럼 어지럽게 줄지어 찍혀 있었다. 거기에 우리는 개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을 덧찍었다.

바닥이 부드럽고 얕은 내성천 모래강에서 멸종위기 1급종 먹황새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최태규 제공

내성천은 겨울이 되면 먹황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강이었다. 먹황새는 환경부가 정한 멸종위기 1급종이다. 둘도 아니고 딱 한 마리가 날아왔다. 예전에는 텃새로 살며 번식도 했다는데 나는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밖에 본 적이 없다. 여름엔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겨울이 되면 내성천을 찾는 새라는데, 암만 겨울에 번식하지 않는다 해도 친구도 없이 혼자 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성천 유역에 살면서도 그 새가 오는지도 몰랐다. 동네 사람들도 몰랐다. 4대강 사업이라는 만행을 여태 기록하고 있는 지율 스님은 나에게 그 먹황새를 소개했다. 먹황새는 강을 지켜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고, 나는 망원경을 사서 먹황새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태어났을 시베리아에서는 민가 근처에도 둥지를 짓고 살지만, 한국 땅에 도착하면 사람과의 거리를 더 멀리 두었다. 200m나 떨어진 곳에서도 조금만 움직임을 크게 하면 이내 날아올라버렸다. 나는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숨어서 먹황새를 하염없이 훔쳐봤다. 다리가 다 잠기지 않을 정도로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아 먹다가 배가 차면, 풍성한 청록색 광택의 목깃에 붉은 부리를 파묻은 채 한참을 쉬었다. 바닥이 부드럽고 얕은 모래강에서 먹황새는 부리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너른 모래사장을 사방으로 살피면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댐이 들어서자 그 모래강은 굵은 자갈과 키 큰 풀로 뒤덮였다. 물에 발을 담그고 먹이질을 하기에는 물살이 깊고 빨라졌다. 내가 내성천을 떠나고 몇 해 지난 겨울, 발가락이 하나 없던 그 먹황새는 다시 내성천을 찾지 않았다. 그는 어찌 되었을까?

내성천 제비 숙영지 6년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내성천 하늘을 날아오르다>의 한 장면.

내성천의 허리를 자른 영주댐에 물을 가두기 시작하자 논밭이 잠겼다. 농사짓던 사람들은 먹황새처럼 고향을 잃고 떠났다. 강바닥을 파고 물을 막아 지형과 식생이 변한 곳은 누군가에게 폐허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영주댐은 완공 후 7년이 지나서야 환경부로부터 준공 승인을 받았고 준공 후에도 물을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자본이 무식하고 무모하게 자연을 파괴하려다 주춤거리자 사람이 떠난 곳에 또 다른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사가 끊겼다는 것은 농약이 끊긴 것이기도 했다. 요 몇 해, 늦여름이 되면 영주댐 수몰 예정지에는 제비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찾아온다. 봄부터 번식을 끝낸 제비들이 둥지를 떠나 남쪽 나라로 가기 전에 모이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전국 최대의 ‘제비 숙영지’다. 지율 스님은 제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중이고, 댐으로 물을 가두고 싶은 사람들은 제비를 없는 셈치려 애쓰는 중이다. 8월25일 ‘내성천 제비연구소’ 발족식이 열린다.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제비처럼 모여 강에 내린다.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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