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러운 대출 규제, 계획된 조치일까 정무적 판단일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9. 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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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는 다른 집값 상승 기조…가계부채도 크게 늘지 않아  
대출 중단→전세 수요 확대→주택가격 상승…집값 안정은 가능할까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은행권에 수개월 빠르게 겨울이 다가왔다.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2일 은행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및 전세대출이 중단되기 시작했고, 이튿날엔 제2금융권에 해당하는 삼성생명도 유주택자에 대한 주담대를 제한하는 등 대출 중단 조치가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월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은행에 대출 포트폴리오 관리를 요구했다. 금융감독원은 7월 시중은행 부행장을 불러 대출 관리를 강조한 이후 은행권이 시장금리 흐름과 관계없이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 관리에 나섰는데, 이 원장은 이보다 강한 직접적인 조치를 요구하면서 대출시장에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당국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한 배경엔 서울 아파트 가격의 급등이 있다. 2022년 말 진행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여파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중반까지 아파트 가격은 전국적으로 고점 대비 20~30%씩 급락했다. 하지만 같은 해 하반기부터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반등하기 시작한 아파트 가격은 올해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금융 확대와 더불어 상승기조로 변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철저히 실수요자에 의한 집값 상승 기조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은 과거와 몇 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은 처음에는 실수요자에 의해 시작되지만 본격적인 상승은 다주택자에 의한 수요 확대로 나타난다. 지역적으로 보면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고가 주택 상승세가 인접 지역으로 확대돼 전체 시장을 끌어올리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올해 아파트 가격 상승은 기존 공식과는 많이 다르다. 철저하게 실수요자에 의해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수요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지역으로의 주거 상향 이동을 추진하면서 철저하게 1주택을 유지하고 있다. 세제 혜택을 최대한 받으면서 생활 편의와 미래 투자수익을 누리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강남권과 한강변 일부 지역 중심의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지난해 중반 이후 잠실과 마포, 성동 지역에선 하락세가 멈추고 상승세가 시작됐다. 많은 중산층이 선호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강남권으로 상승세가 확산됐다. 이에 따라 반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3.3㎡(1평)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선 거래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84.9㎡(34평형) 매물이 55억원에 거래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승세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강남·서초구에서도 철저하게 개별 단지 단위로 상승세가 나타날 뿐 과거와 같은 전체적인 상승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체적인 주택 통계를 보면 상승세는 과거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 신고가 거래 소식이 SNS 등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전파되고, 평당 1억원을 넘는 고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인식은 본격적인 상승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 당국으로서는 이런 상승세를 막기 위해서는 대출을 조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조치라고 간주하고 급작스러운 대출 축소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앞서 과거와 다른 패턴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이 나타났음을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담대로 대표되는 가계부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즉 금융 당국이 창구 지도를 통해 급박하게 대출을 관리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일각의 인식과 달리 최근 수년간 가계부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2015년 117조원, 2016년 139조원, 2017년 108조원 등 연간 100조원씩 늘어났던 가계부채 증가 규모는 잠시 둔화되는 듯하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2020년 112조원, 2021년 107조원으로 다시 증가했다. 가계부채의 본격적인 변화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2022년에는 8조8000억원 감소했고 지난해에도 10조원 증가에 그치면서 장기간 이어진 가계부채 상승 흐름이 멈췄다. 그 결과 2021년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하던 가계부채는 올해 1분기 92% 수준으로 하락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게시된 매물 정보 ⓒ연합뉴스

'주거 욕구 vs 주택가격 안정' 대결 재시작

2022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아파트 가격 급락은 이런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을 기준으로 연간 66조원, 제2금융권 등을 모두 합할 경우 연간 100조원 정도의 부채 증가를 관리 가능한 범주로 간주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흐름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준에서 지난 3년간의 가계부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급격한 대출 축소 움직임은 거시경제 흐름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급작스러운 대출 중단 카드를 꺼내든 것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가격 상승이 전체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져 정치적 불안요소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는 상황에서 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부채 총량의 증가, 빠른 증가 등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의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적기에 강력한 대출 규제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못했던 것을 부동산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듯이 한발 느린 대응이 정권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정무적 판단이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대출 중단 조치가 지속적인 아파트 가격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다. 대출 중단은 잠재적 수요자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옴으로써 가격 안정 및 하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주택 수요자들이 구매를 포기하고 전세로 돌아서면서 전세 수요 확대가 나타나고, 이는 다시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대출 중단에 따라 움츠러들었던 구매 수요가 누적되면서 약간의 변화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오히려 급격한 가격 상승을 가져올 요인이 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대출 중단을 넘어 전세자금대출 축소, 월세 전환 시 부담 경감을 위한 기업형 임대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서울 부동산에 집중되고 있는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지방에 대한 취득세 인하 등 인센티브 부여도 병행돼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출 중단 조치가 이런 일련의 계획과 정책을 염두에 두고 잘 조율된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등장했는지, 아니면 다급한 마음에 급작스럽게 시행되었는지에 따라 2025년 이후의 주택가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와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요구의 대결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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